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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어둠 속 서로를 빛 삼으며 살아가길 

생동중 봄 들살이 다녀온 이야기

 

 

 

동백꽃은 추운 겨울에 홀로 깨어 꿋꿋이 화려하고 강렬한 꽃망울을 터트려 피지만, 한겨울 하얀 눈 밭에 어느 날 툭! 통꽃으로 지는 꽃이기도 합니다. 이번 들살이 주제는 제주 4.3입니다.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동백꽃은 4.3의 상징입니다.

 

4.3‘항쟁, 4.3‘사태, 4.3‘운동, ‘학살, 어떤 것도 ‘4.3’ 뒤에 붙이기에는 시원하지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세 번 나누어서 앞선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역사 공부는 시대를 꿰뚫는 힘입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이어져야 참뜻이 살아납니다. 먼저, 해방과 미국, 소련의 영향력, 좌우 대립과 4.3 발발 등 전반적인 배경과 흐름을 살폈습니다. 어려운 주제, 잘 모르는 내용일수록 차근차근 살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문할 곳 중 하나인 동광리 큰넓궤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지슬도 관람하고 다큐멘터리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머물 곳은 제주 4.3평화공원입니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백비(비문 없는 비석)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4.3은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에, 무어라 쓸 수 없어서 백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백비는 누워 있습니다. 4.3이 참으로 해결되는 날, 이 백비도 세워질 것이라 합니다. 2014년에는 제주도 4.3유가족회와 경우회(경찰 가족 모임)가 화해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화해는 그냥 마음 풀고 악수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역사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반성, 용서를 구하는 진심이 먼저입니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 아픔의 상처가 아물 때에야 비로소 화해가 가능합니다.

 

 

 

 

둘째 날에는 제주 4.3연구소에 계시는 오화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4.3길 걷기에 앞서, 안덕면 동광마을을 한눈에 담아봅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혼백만 모셨다는 헛묘에 먼저 들렀습니다. 제주에는 어디에나 돌담이 길게 이어진 곳이 많았는데, 이렇게 무덤 둘레에 울타리처럼 두른 담을 산담이라고 합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듯, 생활터 곳곳에 산담과 무덤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무등이왓 마을 첫 학살터 자리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졌고, 동광마을 학교(개량서당)였던 광신사숙 옛터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가 넘실넘실 춤추고 있었습니다. 아픔과 상처가 있던 자리에 자라난 생명이 이곳에 있었던 일들 다 헤아리기 힘든 우리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했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큰넓궤입니다. 동광리 주민들이 194811월 중순, 마을이 초토화되고 나서 두 달 정도 숨어 지냈던 작은 동굴입니다. 몸을 작게 만들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입구, 이곳을 지나면 기어가야 하는 곳도 나오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곳도 나왔다지요. 안전모를 쓰고, 한 손엔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레 들어가봅니다. 동굴 입구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하나둘 쌓기 시작한 돌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평화를 비는 마음 담아 돌을 쌓았습니다.

 

 

 

 

셋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 한껏 들이켭니다. 비바람 몰아치던 엊그제 날씨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파란 하늘이 반갑습니다. 11시까지 백록담에 다다라야 하는 일정이어서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었습니다. 우리가 오를 길은 성판악-속밭 대피소-사라오름 입구-진달래밭 대피소-백록담인데 올라가는 데만 네 시간 반이 걸린다고 합니다. 가파른 길은 많지 않지만 현무암 돌길과 나무 계단이라 느긋하게 경치를 둘러볼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럿이 함께 산에 오르니 하하”, “호호웃음소리 끊이지 않습니다. 첫소리 자음 두 개를 아무렇게나 정하고 서로 돌아가며 알맞은 낱말 대는 말놀이하며 한 시간 만에 속밭 대피소에 다다랐습니다. 저마다 챙겨간 참 꺼내 먹고, 물도 마시며 숨을 고른 뒤에 진달래밭 대피소로 길 나섭니다. 되도록 흩어지지 말자고 했지만 부러 속도를 맞추려다 서로 힘들어질까 봐 앞선 이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더운 숨 가쁘게 내쉬며 한발 한발 정직하게 오르고 또 오를 뿐입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 다다르니 10시입니다. 안내판에 적혀 있기로는 백록담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데 남은 시간은 한 시간뿐이네요.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평화를 비는 기도 함께 드리고픈 마음에 서둘러 발걸음 옮깁니다. 그렇게 얼마쯤 가니 답답했던 시야도 트이고, 청정한 하늘과 바다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꽤나 가파른 산길을 마주하지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쉰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둥글게 서서 지난 세월 억울하게 죽임 당한 생명들 헤아리며 기도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물줄기가 한라에서 백두 넘어 동북아와 온누리에 흐르기를 염원했습니다.

 

 

넷째 날부터는 광주로 이동해 5.18민주묘지에서 기도회를 드리고, 늦은 저녁 지리산 작은학교로 이동해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우리가 자는 사이, 새벽에 비가 꽤 많이 내린 덕분에 운동회와 음악회 시간이 바뀌어 음악회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 었습니다. 작은학교와 생동중학교, 삼일학림 학생들, 선생님들이 준비해 간 공연을 펼쳤습 니다. 모든 공연은 각자의 일상에서 연마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했고, 노랫말에는 학교에서 지내는 이야기들 담았습니다. 음악회 후에 그 자리에 함께 모여 서서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회를 이어갔습니다. 이 땅 생명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함께 기도했습니다.

 

작은학교 공양간 선생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점심 밥상 맛있게 나눈 뒤 운동장으로 이동해 전략 줄다리기, 여성 축구, 남성 축구, 그리고 이어달리기까지 마음껏 뛰었습니다. 태어난 달을 기준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둠으로 나누어 뛰는 이들이나 응원하는 이들이나 모두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햇빛은 쨍쨍했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고, 운동회 중간에 잠시 쉬며 참도 나누었습니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 꽃피우며 충분히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에는 모둠을 지어 간담회를 했습니다. 서로의 학교생활에 대한 궁금함, 관심사를 나누기도 하고 놀이를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교제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5.18민주묘지에서
작은학교와 생동중학교 학생들이 가진 간담회

 

 

다음 날 아침. 머문 자리를 정리하고 둘레길을 걸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루를 함께 지내서인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산행을 마친 후에는 함께 둘러서서 12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함께 김밥을 나눠 먹으며 들살이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67일의 긴 여정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오히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신선한 기운을 받았습니다. 이 기운 타고 일상을 더욱 힘 있게 살아가는 생동이 될 것입니다! 작은학교 친구들이 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환송해주었습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 뒤로한 채 떠나왔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더 잘 삽시다!

 

정재우, 정대영, 이한영, 김요한 | 밝은누리움터에서 푸름이(청소년)들 이끌고, 가르치며 지냅니다. 푸름이 손잡고 함께 자라며 나날이 슬기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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