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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오늘날 억울함 지고 가는 이들
종로 전봉준 동상, 고 김용균 씨 분향소
 

 
평화라고 말하면 왠지 삶에 요원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이야기라 더러 생각한다. 그러나 평화는 삶이고 여정이다. 모진 삶, 견디기 힘든 짐 어깨 매고 평화로 살아온 선배들 만나러 보신각종 사거리에 위치한 ‘전봉준 동상’을 찾았다. 전봉준 선생은 최후진술로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 몰래 죽이느냐’라는 최후진술과 <운명>이라는 유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구나/ 백성 사랑하는 정의나 실수 없다/ 나라를 위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주리’가 그 내용이다.
 
종로에 자신의 피를 뿌려 달라는 전봉준 선생의 유언은 123년 만에 그 자리에 동상이 서는 것으로 지난여름 이루어졌다. 동상은 최종 목표로 삼았던 한양 경복궁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길벗 13명은 전봉준 동상 앞에 동그랗게 모여서 생명평화 기도문을 낭독했다. 종로가 근처인 한 길벗은 이 거리를 자주 거닐었지만 동상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고 했다. 일본군에게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 모습이 결코 처연하지만은 않았다. 백성의 짐, 멍에 헤아리는 마음, 비통함이 눈빛에 서렸지만 마땅한 싸움에 당당하고 의연한 입모양이었다.
 
조선 말, 수탈과 억압을 당한 이들이 농민이었다면, 2019년 오늘날 같은 억울함을 몸소 지고 가는 이들이 김용균 씨와 같은 도처의 청년 노동자들이다. 전봉준 선생을 뒤로하고 광화문 광장 김용균 씨 분향소를 찾았다.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 늦은 밤, 석탄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서 홀로 근무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업무 매뉴얼의 기본인 2인 1조 규정만 지켰어도 용균 씨의 목을 죄어오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출 수 있었을 거라 한다. 소속 회사인 서부발전은 인력수급 문제를 핑계삼았다 하는데 생명보다 귀한 것이 과연 뭘까 마음이 먹먹했다.
 

 
 
어제 찾아뵌 분들 기억하는 것 이외 내가 할 도리가 별로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기도순례 길벗들과 분향소에서 헌화 올리고, 해원의 노래를 불렀다. “이 땅 생명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소서.” 두 분의 삶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어지니 빚진 마음으로 두 손 모은 벗들과 함께 하루를 천년같이 여겨 소중하고 부끄럽지 않게 오늘 살아가자 다짐의 눈빛 주고받았다.
 
심지연 | 두살배기 아이 키우며, 씩씩하게 직장생활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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