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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이름으로 다시 찾은 일본
단바망간 기념관, 마이즈루항, 우토로 마을에서
 
 
20년 전 출장 등으로 자주 오갔던 일본을 ‘생명평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은 것은 내 인생에서 놀라운 전환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본을 만났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동원되어 ‘생명’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노역을 해야 했던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단바망간 기념관과 마이즈루항, 우토로 마을에서 지나온 걸음 들으며 알게 된 것은, ‘기억’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시모사바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아름다운 배가 마을 앞바다에 들어서더니 갑자기 폭발하는 장면을 보았다. 놀라움도 잠시, 각자가 가지고 있던 작은 고깃배를 타고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들을 구조하기에 바빴다. 해가 져서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구조를 쉬지 않았다. 집으로 데려와 옷을 갈아입히고 먹이고 하는데 마을이 부족할 정도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 하나 손을 놓았던 사람은 없다.”
 
마이즈루항에서 만난 분의 증언이다. 우키시마호 사건 기념동상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추모행사를 41년째 이어오고 계신다. “당시 (일본은 전쟁 중이었는데) 일본 사람은 행복했을까? 전쟁 중이라 모두가 어려웠다.” 역시 같은 분의 증언이다. 함께 사시는 분은 그림과 책 등으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리고 계셨다. 순난자비는 조선옷 차림의 어머니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고, 고통 혹은 결의에 찬 모습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형상이다. ‘쓰러지고 죽어가는 이들을 안고 멀리 조국 땅 부산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생명이 생명을 만나가는 이분들만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생명평화를 노래하러 갔다가 진정한 생명평화를 경험했다.
 
 
우리가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밤새 한국어로 자료를 만드셨다고 한다. 이런 열심을 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드러나지 않은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분들이 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더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 이곳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공부, 교류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방문한 우토로 마을은 순례 전에 아이들과 함께 《우토로의 희망노래》를 읽은 덕분인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선택해서 이곳에 온 것처럼 오도되지만,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분들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해방 후의 생활이 더 어려웠다는 증언에, 어떻게 전쟁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토로 마을이 특별한 것은, 법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시민 사회의 힘으로 지금의 마을을 지켜낸 것이다. 일본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한국에도 마을이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는 걸 보며,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찾은 기분이라고 하셨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고,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수많은 차별과 억압, 수치, 공포를 참아내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희망’이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노래하는 희망이기에 더 값진 것이겠다. 이 또한 생명이기에 가능한 거겠지.
 
사람이 누려야 할 마땅한 생활, 인간존엄, 희망이 되는 우토로가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계신다. 일상으로 돌아온 내가 할 일은 이분들의 삶 기억하며 생명과 평화, 희망을 전하는 하루하루를 꿈꾸며 살아내는 것이리라. 그것이 하늘땅 온 생명을 살리는 하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 감이리라. 나에게 일본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기억에서, 이제 나와 너를 넘어 ‘우리’라는, 서로를 살리는 생명이라는 땅으로 기억될 것이다.

 

 
 
강소연 | 따뜻하고 건강한 밥상 차려내며 찰진 일상 누리고 있는 ‘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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