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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철조망이 없구나


11월 기도순례는 강화 마니산, 판문점, 임진강과 오두산 전망대에서 이어졌다. 드디어 조선 땅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가 되었다. ‘판문점’이나 ‘개성’, ‘평양’ 이런 말들을 들으면 무언가 조심해야 할 비밀을 마주한 듯한 긴장이 생긴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두운 기운이 묻어난다. 대학생일 때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운동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붙잡혀 갈 일이 없었지만 사복경찰들 앞에 서면 태연한 척하느라 애를 썼다. 국가 공권력은 그 자체만으로 20대의 나를 주눅 들게 하고 자기검열하게 만들었다.

11월 18일 남북출입사무소로 가는 길. 사진 있는 신분증을 준비하고 버스에 탄 인원수를 체크하고 버스를 바꿔 타면 안 되고 사진을 찍으면 헌병이 휴대폰을 빼앗아 하얗게 만들어버린다는 버스 기사의 농담을 들으면서, 민통선을 지나는 검문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헌병을 보면서, 사복경찰 앞에 긴장해 서 있던 20대의 나를 다시 발견했다. 남북출입사무소 주차장에서 기도하기 위해서 모였을 때도 누군가 내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민통선. 민간인 통제선은 또 얼마나 생경한가? 모두 같은 사람인데, 민간인이라 이름 붙여 열려 있는 길을 막는 저 권력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남북한의 경계를 만드는 차량 통행소 위의 하늘은 내가 홍천에서 늘 보던 하늘이었다. 경계도 없고, 감정도 없어서 무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하지만 청명한 바로 그 하늘이었다. 누가 저 하늘에 경계를 세울 수 있을까? 누가 저 하늘을 더럽힐 수 있을까? 하늘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 싸늘한 11월의 바람을 느끼며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면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두려워할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슬픔을 아시고 함께 고통 받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생명들의 죄와 고통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땅에 묻은 슬픔과 절망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마음을 모아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로 기도하고 있다. 세상을 뒤덮은 권력과 욕심을 생각하면 우리의 기도는 마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겠다는 철모르는 몸짓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몸짓에서 지금 이곳에 담긴 영원을 묵상한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평화의 따스한 기운을 느낄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남북출입사무소에 와서 기도회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이제 저 두꺼운 불신의 장막이 걷고 개성과 평양에서 기도회를 할 그때를 생각해본다.

이상국 | 강원도 홍천으로 이사한지 1년. 푸른 하늘 맑은 공기 마시고 도시의 찌든 때 벗겨내며 새로운 삶 꿈꾸는 마흔아홉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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