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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공순이가 아니야, 하나님의 딸이야!”
삼일학림 푸름이, 10월 순례 길에서 조화순 목사님 모셔배움


지난 10월 19일 쇠날, 기도순례길에 오른 삼일학림 학생들과 교사들은 서울 용산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지배당했던 한반도이지만 해방의 내일을 꿈꾸며 동북아를 중심으로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음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보았습니다. 변절과 분열을 반복하며 현세에 안주했던 친일파들의 모습도 돌아보았습니다. 1980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분들을 고문한 곳입니다. 끔찍한 현장에서, 뜻을 위해 고통을 받은 원통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식민지 역사, 항쟁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폭력 앞에서 동지와 신념을 배반하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현장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조화순 목사님을 뵙고 모셔배움 시간 가졌습니다. 목사님은 인천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하셨고, 동일방직 노조 사건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분입니다. 이 땅의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신 목사님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찾아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셨습니다. 이야기를 열며 목사님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1938년생이신 목사님은 실제로 몸도 불편하시고,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더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목사님은 농촌 목회를 하시다가 조지 오글 목사님을 만나 산업선교회에 함께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인생이 바뀐 사건이지요. 1,200명이 일하는 대형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셨는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목사님은 낯선 노동 경험을 하게 됩니다. “노동을 배운다고 생각해라. 선교하러 간다는 건방진 생각은 버려라”라는 조지 오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점차 열악한 노동 환경, 노동자들의 아픔을 알게 됩니다.

여성 노동자가 1,000명, 남성 노동자가 200명이었는데 노조 집행부는 전부 남성으로 구성된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의 장을 엽니다. 일곱 명씩 공부 모둠을 만들었는데 목사님이 가장 먼저 한 말은 “너는 공순이가 아니야! 하나님의 딸이야!”였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공장에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배우지 못한 서러움, 직업에 대한 부끄러움, 남성 노동자의 차별로 열등감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목사님의 첫 마디는 그런 여성 노동자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깨치도록 돕는 말이었고 결국 최초의 여성 지부장, 여성으로만 구성된 노동조합 집행부가 생기고 이 사건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안기부는 조화순 목사님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최초의 여성 노조 집행부가 생긴 배후로 목사님을 지목하고 노동자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구속시켰습니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셨고,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장소에서 조사와 고문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 형사와 마주하자 형사가 대뜸 “너 빨갱이지?”라고 물었다 합니다.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왜 목사가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냐? 왜 노동자들을 선동하냐? 왜 박정희 유신정권을 반대하냐?”라고 계속 추궁한다 합니다. 목사님은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유창하게 답변하는 대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목사에게 절대자는 하나님인데 왜 유신정권을 반대하지 못하게 하냐?”라는 이야기만 하셨다 합니다. 나중에는 형사가 “목사님은 성격상 이번에 나가면 또 들어올 테니 계속 성경만 가지고 대답하세요”라며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5.18 당시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이야기, 최근 촛불집회 참석까지 역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피하지 않고 함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며 하셨던 말씀, “나는 이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학생들이 삼일학림 안내지를 들고 목사님께 다가가 보여드리자 “이제야 기억난다. 내가 여기 뒷간 갔던 게 생각이 나! 너네 참 특별한 아이구나.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 하시면서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눈시울 붉어진 학생들도 “목사님이 살아오신 삶, 우리가 잘 이어서 살아갈게요”라며 다짐의 말 나누었습니다. 갈등과 대립의 현대사에 온몸으로 맞섰던 목사님의 당당한 인생길 이야기 들으며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는 경험을 했습니다. 삶으로부터 나온 샘물 같은 이야기 새기며 당당히 살아가렵니다.

이민호 | 삼일학림에서 공부하고 마을밥상에서 밥 지으며 지내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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