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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뗏골 고려인너머에서 마주친 질문


안산의 어느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고려인너머’는 썰렁한 주변 주택가와 달리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고, 학생들부터 아기들까지 옹기종기 다녀서 그런지 좀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 같았습니다. 센터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한글과 한국말을 보고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온 고려인들이 모여서 사는 이 마을을 ‘땟골’이라고 부른답니다. 떼를 지어 살아간다고 해서 땟골일까요? 이 동네의 옛 이름일까요? 마을은 밝은 분위기로 한껏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녁에 센터를 방문했기에 어린아이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지만 서울에서 대학생이 온다고 잘못 전해 들은 고려인너머의 청소년 봉사단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려주었습니다. 대학생 아닌 얼굴들을 보고 잠깐 놀랐을 뿐 이내 까불까불 밝은 분위기가 센터에 감돌았습니다. 동포이지만 이주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지친 흔적이 남아 있을까 생각했던 것은 저의 편견이었습니다. 고려인너머에서 준비해주신 카자흐스탄풍 식사를 나눠 먹으며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센터에서 청소년봉사단으로, 마을지킴이로 활동하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툰 학생들이 많아서 깊은 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로 한국 생활이 어떤지 묻게 되었는데요,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다”, “한국어로 공부하기 어렵다”, “부모님이 한국어 사용을 자꾸 자기에게 부탁한다”는 이야기부터,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들의 적응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지도하는 한 선생님의 질문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적응 못하기는 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동포 → 미적응 → 도와야 한다”는 뻔한 공식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고려인너머’ 센터에 사회선교학교라는 이름으로 방문했습니다. 사회선교학교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설명할 틈도 없이 그들의 삶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러한 물음을 묻는 것조차 얼마나 무례한 일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탐방이라는 이름으로는 부족한 무언가를 느끼며, ‘나야말로 이 땅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는가?’ ‘적응을 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등을 생각했습니다. ‘다문화’, ‘동포’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재러시아, 재카자흐스탄, 재우즈베키스탄 한국인인데 ‘동포’가 되는 순간 왠지 한국어가 서툴고, 인상착의가 달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회선교는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입장의 차이를 깨닫는 것,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 차이를 모른 채 거리감 없이 다가선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오만하고 폭력적인 행동이 되는지 깨달았습니다.


“적응 잘하고 계신가요?”라는 고려인학교 선생님의 한마디가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제가 속한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을 ‘위한’ 일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노조를 지원하고, 노동자들의 쉼터가 되고, 많은 노동자들을 교육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얼마나 많이 도움이 되었나?’, ‘이렇게 하는 게 진짜 힘이 될까?’라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단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내가 그들과 같은 노동자일까?’라는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곁에 있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드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는 해고된 처지도 아니고, 농성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무책임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와 너라는 이분법의 장벽을 넘어 한 인간됨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인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선교학교 참가생, 사회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이 너머의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인가 봅니다.

송기훈 | 당산동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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