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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하늘, 하늘은 하나다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란 마치 기계회로 속을 헤집고 다니는 전자와도 같은 생활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침에 대개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서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싣고 나면 오늘도 기어코 회로 속에 진입했구나 싶다. 회로는 언제나 여지없이 똑같아서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곳을 통과하며 길을 안내한다. 지난주와 오늘이 비슷하고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빌딩숲으로 출근한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좁은 빌딩에 갇혀 눈앞의 일들 해치우다 퇴근하면 ‘아 오늘은 하루 종일 하늘을 한 번도 못 봤네’라며 푸념하는 날도 생기곤 한다. 그나마 해가 길고 미세먼지 덜한 여름은 낫다. 찬바람 불어 해가 빨리 숨어버리는 날들이 시작되면 일상에서 환한 하늘 바라볼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굳이 하늘 이야기를 꺼낸 건,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함께하는 길벗들과 공부하고 있는 ‘묵자’란 선생 때문이다. 묵자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지도 거의 반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때부터인가, 왠지 이유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짐작컨대 아마도 묵자가 한 말들에 ‘하늘 天’, 이 글자가 유독 많이 등장하기 때문일 게다.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묵자>에는 마음 울리고 가슴 뜨겁게 하는 구절들이 꽤나 많다. 하늘 아래 남이란 없으니(天下無人)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겸상애(兼相愛)’, 서로 이롭게 하고 살라는 ‘교상리(交相利)’. 이 뜨거운 말들을 좇아가보면 대개 ‘하늘(天)’이란 단어가 새겨져있다. 묵자는 왜 이리도 하늘을 좋아한 걸까. 생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가 쉴 새 없이 전쟁이 일어나던 전국시대였다고 하는데, 차마 혼돈에 가득한 땅을 바라볼 순 없으니 하늘이라도 봐야했던 걸까. 묵자가 바라본 하늘은 한결 같아서 언제나 변함없이 높고 푸르며, 모든 것 드러내어 누구에게나 평등했던 하늘이었다. 묵자에게서 나온 뜨거운 말들은 그가 고개 들어 바라보았을 저 하늘에서 내려받은 것 아니었을까.

지난 8월 말, 60명이 넘는 길벗들과 중국/러시아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를 다녀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북간도의 명동마을에서 시작한 여정은 장장 십여 일을 거쳐 시베리아대륙 바이칼의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순례에서 일정의 끄트머리에 있던 바이칼호수를 가장 기대했다. 사실 한 3개월 정도 전까지만 해도 ‘바이칼’ 하면 떠올랐던 건, 어릴 적 읽었던 소설 속 영웅의 ‘바이칼’이란 근사한 이름 정도였다. 그러다가 순례 자료집 만드는 작업에 함께하게 되었고, 바이칼지역을 맡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막상 이러저러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바이칼은 이름만 멋진 게 아니었다.

바이칼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풍요로운 호수’ 혹은 ‘샤먼의 호수’라는 이름의 뜻을 말해줄 수도 있겠고, 지구에서 가장 물이 많으며 깊은 호수라는 사실, 남한 면적의 1/3이나 될 만큼 넓다는 크기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아니면 바이칼의 귀여운 상징이기도 한 바다표범 네르파나 고유 특산물인 연어과 어류 ‘오물’이 자라는 곳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바이칼을 수식하는 말들은 이토록 많지만 공부하며 가장 매력적이었던 설명은 샤머니즘(무속신앙)의 성지라는 점이었다. 시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천신사상이 우리의 전통 무속신앙과 유사하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신목들이나 장승목, 돌무더기 따위를 통해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생명력에 마음이 끌렸다. 얼마나 영험(?)한 곳이기에 샤머니즘의 성지라고 불리울까. 태곳적부터 있던 풍경을 지금도 똑같이 볼 수 있으리란 사실이 놀라웠고, 그 풍광 통해 고대인들이 자연스레 느꼈을 하늘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설 렜다.

설레는 마음 한켠에 밀어놓은 채 순례 아흐렛날, 드디어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알혼섬에 도착했다. 육지에서 20여분 배를 타고 들어간 선착장에서 온몸 흔들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부르한바위’. 이곳은 오래 전부터 신성하게 여겨진 곳이었는데, 과연 한 눈에 봐도 묘한 신비감이 느껴졌다. 바위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 하고선 길벗들과 생명과 평화 염원하는 노래 불렀다. 주변에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더러는 우리가 준비해간 러시아어 노랫말 책자를 받아들고 함께 마음 보태기도 했다. 노래하며 바라본 하늘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하늘 향해 우뚝 솟은 ‘부르한바위’의 자태를 보아하니 이곳이 바로 하늘과 땅이 완벽하게 만나는 곳이 아닐까란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부터 알혼섬 최북단 ‘하보이곶’까지 다녀왔다. 신들이 회의하는 장소라고 전해지는 ‘하보이곶’은 바이칼의 서쪽바다와 동쪽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과연 그곳에 서니 호수란 명칭이 초라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찬연한 물결들, 저 멀리 겨우 눈에 그려지는 수평선, 하늘과 구름, 바다의 완벽한 어우러짐. 감흥을 조금이나마 담아보고자 카메라를 갖다대보기도 했지만 무용한 짓이었다.

그렇게 바이칼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육지로 돌아왔다. 멀어져가는 바이칼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보고 만나고 온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곧 끝맺을 여정 후에 펼쳐질 일상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집 문 열기만 하면 바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바이칼에 한동안 머물고도 싶었으나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건 너무 게으른 생각 아닐까 하여 바로 거두어들였다.

바이칼에서 만난 하늘과 내가 살아가는 인수마을의 하늘이 매일 출근하는 일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과 다르지 않을 텐데, 본디 하나인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누군가 노래했던 것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은 탓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속에서 받은 상처 때문일까. 아아 헛된 것들은 물러가라. ‘껍데기는 가라’. 마음속에 하늘님만 모시고 싶어라.

이계진 | 북한산자락 인수동에 살며 매일 송파구로 출퇴근하는 3년차 직장인입니다. 어디에 있든 하늘 들여다볼 여유 잃지 않으며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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