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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평화시대에 돌아보는 백두산, 시베리아, 바이칼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는 아직 낯선 곳이며 그중에서도 시베리아지역은 더욱 더 알려지지 않는 곳입니다. 아주 소수의 한국인들이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고 한국인들의 방문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 이르쿠츠크를 찾는 한국인들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경우인데, 한 부류는 선교 목적을 가진 기독교인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한민족의 기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시베리아와 바이칼호수를 찾아가는 여정이 쉽지 않지만 그곳의 의미를 탐색해가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나봅니다. 고대 영성문화를 현재 종교 경험으로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표현방식을 성급히 규정하려고 드는 것은 편협한 태도일 것입니다. 역사라는 범주에서도 현재 자신의 관점에 갇혀 인식의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 짓는 방식을 소유권으로 환원해버리는 경우입니다. 백두산을 우리만의 산으로 보려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역사를 현재 특정 국가나 민족이 독점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탓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종교적, 역사적 탐색은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를 요청하는 여정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중국·러시아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하바롭스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3일 밤낮을 달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시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바이칼 호수로 향했고,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알혼섬으로 들어갔습니다. 8월 23일부터 시작한 기도순례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순례 초기에 방문한 동북지역(또는 만주)과 연해주 지역에서 주로 우리의 근현대사 흔적을 찾았다고 하면,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는 우리의 고대사, 상고사에 관한 역사적 경험을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번 순례를 떠나며 품은 주제가
‘동북아평화시대에 돌아보는 백두산, 시베리아, 바이칼의 의미’였기 때문에, 바이칼로 향하는 걸음마다 설레는 마음 가득했습니다.

시베리아 초원을 버스로 가로지르는데, 길 좌우엔 경작하지 않은 땅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또한 소떼는 자유롭고 한가로이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의 의도적인 손길이 최소화된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평화였습니다. 바이칼 호수에 도착해 20여 분 배를 타고 알혼섬에 도착하니, 시베리아보다 더욱 원형에 가까운 자연이 펼쳐져있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소들이 알혼섬 모레사장에 앉아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인간만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나봅니다. 인간과 다른 생명이 자연을 함께 향유했던 먼 옛날을 그려보고 또 새로운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곳곳에 세워진 ‘세르게’(오색 천을 묶거나 감은 기둥)였습니다. ‘세르게’는 신의 임재를 소망하거나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이는 하늘을 숭상하고 하늘뜻 살펴 살아온 북방 영성의 흔적입니다. 현재에도 바이칼 주변에 살고 있는 브리야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전해온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세르게’ 앞에서 묵상하거나 기도합니다. 이들은 어쩌면 현재에도 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신을 우리 일상에서 지웠거나 혹은 종교 시설에만 가둬두는 요즘 시대에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는 ‘과거’와 현재가 해석되지 못한 채 섞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수영복과 물안경을 챙겼습니다. ‘호수 물이 차가워서 들어갈 수 없다’라고 했지만, 평생 두 번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바이칼 호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이칼 호수 물에 들어갈 때 첫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맑고 깨끗함이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수영을 즐기기에 적당했습니다. 물안경을 끼고 바이칼 호수의 물 속 세계를 탐사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만 산다는 물고기 ‘오물’, 아주 먼 옛날부터 바이칼 호수에 산다는 바다 물개 ‘네르파’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바이칼 호수에 손을 씻으면 5년, 세수를 하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했고 목욕을 하는 이는 30년이 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속의 찌든 때를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 살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기도순례 여정은 우리 안에 두려움과 체념을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명평화라는 소중한 가치가 우리 일상과 한국사회, 동북아에 뿌리내리기엔 너무나도 많은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영세중립 생명평화의 땅 운동’을 소개하고 제안할 때에 돌아오는 답변은 ‘뜻은 좋은데, 그게 가능할까?’였습니다. 백두산을 거쳐 시베리아를 달리고 바이칼 호수를 온 몸으로 만난 이번 기도순례는 참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기도순례를 통해 생명평화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저온 철학이자 종교이고 문화였다는 진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명평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을, 역사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했었습니다. 이제 일상에서 생명평화 더욱 곱게 울리는 길벗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정인곤 | 몸도 마음도 둔했지만 기도순례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청년. 동북아 평화시대를 위해 새로운 길 모색하며 즐겁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주중에는 서울, 주말에는 홍천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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