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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제 갈 길 갈 거예요"
마을 벗들 격려 받으며 생기 있는 삶 찾아가는 청년 이야기


백수로 지낸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실업자로 살 꺼냐” 핀잔을 줍니다. 대학교 다니며 시작한 청년 교육활동을 그만둔 것입니다. 아버지 보시기에는 그것도 직장이 아닙니다. 후원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지요. 그만두게 된 계기가 돈 때문은 아닙니다. 함께 사는 이들의 비춰줌과 충고 덕분입니다. 당위에 매여 생기 없이 지내는 모습을 걱정해주었습니다. 해왔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을 수 있었죠.

마을공동체에는 직업을 전환한 사례가 많이 있어요. 목사였다가 마을목수가 된 형, 간호사였다가 마을찻집을 열게 된 누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마을학교 선생님이 된 누나, 활동가였다가 목수가 되었다가 다시 마을밥상 요리사가 된 형…. 이들이 있었기에 옛 직장에 대한 미련과 사회적 안정을 놓을 수 있었죠.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생기있게 지내고 싶고 그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지난가을 밝은누리 으뜸잔치가 열렸어요. 각자 받은 장기를 펼치는 시간이었죠. 저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종목은 어릴 적부터 해왔지만 지금은 쉬고 있었던 태권도였어요. 석 달 간 열심히 준비해서 온 힘 다해 펼쳤어요. 실수도 많았지만 도리어 그 실수 때문에 더 크게 환호해주고 즐거워해주는 소리 들으며 ‘그래, 인생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맘 커졌어요. 세상 많은 사람들의 환호보다 함께하는 이들의 격려가 훨씬 든든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잘하는 게 없다는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저를 사로잡곤 하던 때,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분명 신께서 나에게도 주신 재능이 있을 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시작해보자” 되뇌였어요. 다른 이의 그 무엇을 탐하고 따라가려고 했었지만 이미 내게 있는 것 귀하게 생각하며 계발하지 못했어요.

뜻 맞는 친구들과 ‘마을, 건축, 농민’이라는 주제로 매달 한 번씩 사람들도 만나요. 지난 주는 제주에 다녀왔어요. 생태건축으로 마을 일구는 이재우 님, 자연농 실천연구가 박성인 님, 자연주의 요리사 원종훈 님을 만났지요. 각자 영역에서 실험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온몸으로 쌓은 기술역량이 주목되었어요. 이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막연한 흥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간절한 필요와 역사의식 같은 것이 숨어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공동체 선배들이 공동체의 필요와 자기흥미를 연결시켜 직업 전환을 힘차게 해왔던 것과 비슷해 보였죠.

앞서간 선배들의 삶은, 저의 백수시기를 불쌍하고 불안하게 보내지 않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에요. 돈이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삶의 실제 필요를 채우는 기술 찾고 배우려 해요. 내가 즐겨할 수 있는 기술을 만나고 연마해서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고 싶어요.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삶에서 백수는 불쌍하고 형편없는 실업자 신세가 아니에요. 백수시기는 가장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신이 주신 기회랍니다.

아버지의 핀잔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꺼에요. 이미 그 길 가고 있는 이들이 곁에 있고 전국방방곳곳에 외롭지만 철저하게 옳다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이들 있으니까요. 이들과의 만남과 연대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제게도 사명 같은 일 찾아오겠지요. 제게도 새로운 일 주어질 거 생각하니 벌렁벌렁!

김두영 | 새로운 일을 만나 신명나게 연마할 날 기다리는 2개월차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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