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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숨결을 느끼며
나는 지금 벗들과 함께 살고 있구나

요즘 20대 청춘에겐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 있다.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 구체적으로 풀자면 혼자 살 것인가, 함께 살 것인가의 문제. 나 또한 겪었다. 두어 달만 더 있으면 내가 공동체방으로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살아온 지 꼬박 2년을 채운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의 순간이 참 많은 걸 바꿔놓았다.

함께 살게 되면서 처음 마주한 건 불편함이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분명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다. 예상치 못한 소음,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리듬. 익숙해지기엔 시간이 걸리고, 배려엔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러나 불편함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혼자 있다보면 비교할 상대가 없어 내가 사는 삶이 전부인양 생각하기 쉬운데, 누군가의 행동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를 안다는 건, 거꾸로 나를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함께 사는 이들이 종종 지켜보고 해주는 말이 있다. “너 어제 유난히 뒤척이며 자더라?”, “너 평소에 휘파람 많이 불더라?” 등등. ‘내가 요즘 피곤하게 지내고 있나?’, ‘내가 이렇게 흥이 많은 사람이었나?’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은 지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걸 짚어주는 말들은 일상을 환기시키고 몰랐던 내면을 비춰준다. 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모르고 지냈던 감각이 새롭게 깨어나기도 한다. 언젠가 퇴근하고 집에 와선 텅 빈 거실을 바라보는데, 신비롭게도 함께 사는 이들의 숨결을 느낀 적이 있다. 빨래건조대에 널려있는 빨래, 가지런한 신발장, 정갈하게 정리된 주방, 접시에 차곡차곡 담긴 주전부리. 마음 담은 손길들이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사실 그게 다가 아님을, 흔하디흔한 풍경이 실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함께 사는 축복을 몸으로 느낀 체험이었다.

어울려 사는 건 새로운 감수성을 더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문학을 좋아해서 종종 시 읽는 걸 즐기곤 하는데, 그걸 보곤 함께 사는 형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좋아하는 시를 나누어주면 좋겠다고 제안해준 일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방에선 매주 하루 ‘시가 있는 밤’이 열렸다. 뽑아온 시들을 낭독하고 각자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었다. 감상은 제각각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은 못 보던 곳까지 멀찍이 볼 수 있게 해주는 기쁨이 있다.

종종 뜻 모아 하는 일들이 있다. 보통 주말엔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곤 한다. “이번 주엔 뭐 만들어 먹을까?” 던져진 질문, 오가는 대거리는 활기를 샘솟게 한다.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동네에 사는 벗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오가는 발걸음, 더해지는 마음들은 일상을 풍성하게 메워준다. 얼마 전에는 오래된 거실 벽지를 천연벽지로 도배하는 일을 했다. 그냥 그러려니 무심하게 살 수 있지만, 더 밝고 기운차게 살고자 애쓰는 마음 모았다. 함께 마음 모으니 ‘다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정성껏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매번 새롭게 배운다.

돌아다보면 함께 지낸 시간만큼 세계가 넓어진 것만 같다. 흑백영화만 보다가 컬러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밑그림만 보다가 색채까지 더해진 그림을 보는 느낌이랄까.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해방감이 있다. 행복을 여러 말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삶의 감각과 감정이 더 선명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기쁜 만큼 슬픔의 크기 또한 더 클 수 있겠지만, 그건 그만큼 삶이 깊어진다는 뜻일 게다. 말 못할 인생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간 기분이다.


공동체방에서 매일 정해서 하는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늦은 밤 10시, 함께 모여 정성껏 방을 닦고 이부자리를 펴는 일이다. 잠자리를 다 펴고 난 후엔 때때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묻고 답한다. 함께 호흡 맞추고 마음 나누는 이 시간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일상을 지켜주는 중심축이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았니’라고 물으며 울리는 마음 속 종소리다. 평소엔 잘 잊고 무덤덤하게 지내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순간이다. 나는 지금 벗들과 함께 살고 있구나, 일깨워주는 순간이다.

이계진 | 문학청년. 요즘엔 클래식 기타 치는 재미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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