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큰일은 힘 모으고, 맛난 음식 나눠먹고
김장 일손 보태러 갔다가, 잔치에 초대받다


한 해를 갈무리하며 크게 추워지기 전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겨울철 김장입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김장이라고 하면, 엄마가 속 버무리실 때 넣어달라고 하는 양념 넣고, 간 보는 게 일이었습니다. 배추 속에 뭐가 많이 들어가긴 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고 어렵게 보였습니다. 3년 전부터는 뜻 모아 함께 사는 친구들과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에 들어가는 양념을 알게 되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만 품이 많이 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올해는 인수동 북한산자락으로 터전을 옮겨서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김장철을 맞았습니다. 주로 마을밥상에서 함께 밥 먹기에 올해 김장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절인배추에 갓 버무린 속 넣어 먹는 맛, 함께 김장하고 먹는 밥상, 속 넣으며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김장에 담겨있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공동체방 김장을 한다고 초대 받았습니다. 공동체방에서 먹을 김장인데, 다른 집에서 사는 친구들도 초대 받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김장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12월 첫째주 해날 오후, 함께 밥 먹는 밥상에 자매들 여럿 모였습니다. 주방에서는 찹쌀풀 쑤고, 김장할 방에는 물 빼놓은 배추와 채썬 무, 파와 갓 등 밑재료가 하나씩 놓입니다. 전날, 함께 사는 친구들 방에서 갓, 파, 무 등 속재료 씻고 다듬어 준비해놓았습니다. 김장할 친구들 모이자 둥그렇게 모여앉아 밥상기도 함께하고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양식되어주는 생명, 함께 김장하는 자매들 생명에 감사하며 김장합니다.


이 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온생명 기운 깃든 밥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어우러져 살아가는 해, 물, 바람, 흙, 벌레와
땀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과
하늘은혜 떠올리니 고맙습니다.
천천히 온마음으로 먹고 서로 살리는 밥으로 살겠습니다.

김장은 네 모둠으로 나누어 모둠별로 속 만들고 버무렸습니다. 입맛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니 다양한 속이 만들어졌겠지요? 모둠별로 맛이 다르니 한 번에 김장하는데도 다양한 김치 먹겠다는 생각에 재미있습니다. 모둠별로 고춧가루와 생강, 마늘, 액젓, 새우젓, 찹쌀풀, 갓과 파, 채썬 무를 버무려 속 만들고, 버무립니다. 속 넣는 양도 서로 달라 어떤 모둠은 속이 남고, 어떤 모둠은 속이 부족합니다. 서로 이야기하며 배추와 속 오가며 김치통에 채우니 한 시간도 안 되어 끝났습니다. 시간 보고 ‘벌써?’ 했지요.

김장한 자리 정리하고, 고무장갑과 양념통 씻는 것도 함께하니 금방입니다. 찬물로 설거지하다 손이 너무 시릴 때, 다른 자매가 와서 하는 새 손 녹이고, 또 함께합니다. 김장 마치고 함께 먹는 밥상은 그야말로 잔칫상입니다. 잔칫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 모여 밥 먹었듯이 김장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도 밥상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밥상에 온 친구들과 함께 밥상기도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겨울 저녁에 함께 밥 먹습니다.

갓 버무린 겉절이와 따끈한 된장국, 보쌈고기와 굴, 그리고 고기와 굴을 못 먹는 사람을 위한 두부까지 풍성합니다. 굴은 많지 않다는 얘기에 뒤에 먹는 사람 위해 앞사람이 조금씩 먹으니 밥 다 먹을 때까지 계속 굴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풍성하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손을 보태달라는 초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잔치에 함께하고 싶다는 초대였습니다. 함께하니, 힘들고 어려울 수 있는 김장이 잔치가 됩니다. 그 풍성한 잔치에 초대해주어 고맙습니다.

박미정 | 인수마을에서 함께 밥 먹는 일상을 감사하며 지냅니다. 도토리어린이집 산책 이모로, 마을밥상 하루 밥상지기로 두루 만나며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