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관계 속에서 몸과 마음 자라나요
더불어 사는 일상에서 자라나는 도토리집 아이들

아이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 나갑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신발 정리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방 정리하고, 화장실 가고, 놀고, 밥 먹고, 싸우고, 울고, 웃고, 달리고, 구르고, 물놀이하고, 눈썰매타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이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반복하면서 꾸준히 배우고 있습니다. 도토리집에서 아이들 만나며 지켜본 선생님이 들려주는 아이들 이야기입니다(편집자 주).


몸이 자라요

어느 날 아침, 도토리집에 들어서는 네 살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두꺼운 바지 안 입고, 부츠 안 신겠다고 해서 한참 실랑이했다고 부모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따뜻하게 입히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손가락 힘이 부족한데, 두꺼운 옷 입고 벗는 것, 부츠 신고 벗는 것이 힘들었을 아이의 마음도 공감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직은 손에 힘이 없어서 부츠 신고 벗는 게 어렵지만, 연습하다 보면 손가락에 힘이 생겨서 쉬워질 거라고 말이에요. 힘이 세지면 무거운 것도 잘 들게 되고 다른 사람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말이에요. 마음 내서 조금씩 연습해보자고 하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니 무거운 부츠를 씩씩하게 들어 신발장에 넣었지요. 다음 날부터 부츠를 신고 벗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선생님과 한 약속을(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해요) 지키려는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했지요.

처음 도토리집에 온 아이들이 산책을 힘겨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책하려고 나서면 집에 가고 싶다거나,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그냥 힘들다고 산을 째려보며 버티기도 해요. 하지만 몇 번 산책을 가면 언제 싫어했냐는 듯 먼저 뛰어나가곤 합니다. 산책하면서 놀이를 경험하기 때문이지요. 봄에는 흩날리는 꽃비 맞으며 꽃잎 주워 놀고, 오디, 산딸기, 보리수, 앵두도 따먹고요. 여름에는 계곡 물놀이 하고, 가을에는 도토리 깍지 주워 소꿉놀이하고, 밤 주우러 온 산을 뒤지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고드름 따다 놀고,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 눈썰매 타기도 하니 재미난 놀이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지요.


실내에서 펼쳐지는 수업과 놀이도 즐거움과 몰입의 연장입니다. 그림 그리고, 가위질, 풀칠, 종이접기, 블록 쌓기에서 생각과 몸을, 눈과 손을 일치시키며 모든 움직임을 놀이로 풀어냅니다. 처음에는 되는 대로 하다가 점점 질서가 잡힙니다. 놀이는 정교해지고, 손과 발의 움직임에는 섬세함이 묻어나지요.

이렇게 놀이 삼매경에 빠지는 중에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자라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놀면서 근육을 두루 사용하다 보니 등, 배, 팔, 다리부터 손가락·발가락의 작은 근육까지 힘을 기르게 되지요. 처음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되지 않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임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생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기 힘을 길러나가며 할 수 있는 것들을 넓히고, 그런 경험이 쌓이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됩니다.


생각이 자라요

도토리집에는 종이 재활용 상자가 있어요. 생협 소식지, 구겨진 이면지, 휴지심, 종이 상자 등 그날그날 생기는 폐지를 모아두었다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한 번에 내다 버리곤 하지요.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종이 재활용 상자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버린 종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거예요! 분명히 방금 버렸는데, 뭔가 확인할 게 있어서 다시 찾으면 텅 비어 있지요. 어디로 갔을까 찾아보면 아이들 손에서 종이가 새롭게 창조되고 있어요.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면 오려서 카드처럼 모아두기도 하고, 종이접기도 하지요. 휴지심이 망원경으로 바뀌기도 하고, 종이 상자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조각난 지끈은 팔찌가 되기도 합니다.

한복 멋 짓는 마을 이모로부터 도안이 인쇄된 종이를 받은 일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한창 종이인형 놀이에 빠져 있던 시기였는데, 너나 할 것 없이 도안을 자기만의 색깔로 칠하고, 선 따라 오려서 종이인형에 한복 입히며 놀았지요. 원래는 인쇄물 뒷면 활용하라고 나눔 받은 것인데 아이들은 인쇄물 자체를 활용해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것에서 재미를 발견하며 빠져 노는 아이들을 보면, 창의력이 연결 짓는 능력과 맞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대상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대상이 나와 연결되는 순간 기쁨을 누리지요. 모든 감각을 열고 세상과 온몸으로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생각이 싹트고 연결 짓는 힘이 솟아납니다. 자신의 감각을 다양하게 느끼고, 쌓이는 감각을 믿으며 세상을 향해 더욱 뻗어나가지요. 이런 힘이 쌓이면 어른이 되어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도 넘어설 줄 아는 유연함이 생기겠지요.


관계 속에서 자라요

“선생님은 엄마 있어요? 선생님 엄마는 이름이 뭐예요?”, “(옷에 그려진 사람 그림을 가리키며) 선생님, 이게 누구예요? 선생님이에요?”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이따금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뭐 이런 게 궁금할까 했는데 여러 차례 질문을 받고 나서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다른 존재와 관계 맺고 싶은 심성이 있다는 것을요. 그림책을 볼 때에도 “난 얘 할래! 넌 누구 할래?” 하면서 그림에 자신과 친구들을 대입시키며 놀기도 하고, 역할놀이를 하면서 엄마, 아빠,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을 따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놀아야 한다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관계망을 놀이로 가져오고 놀이로 구현하면서 자라지요.

반면 어떤 날은 자신을 속상하게 한 친구의 잘못을 이르려고,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선생님이 숨도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찾아오기도 합니다. 관계 맺고 싶은 마음은 큰데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마음은 아주 크게 보이는 반면 상대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내 말이나 행동으로 친구가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헤아려보게 도와주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면, 사과를 받은 친구는 언제 서운했냐는 듯 바로 마음을 풀곤 하지요. 자기표현을 힘겨워하거나 부끄러워했던 아이들도 짜증내거나 울지 않고 “네가 이렇게 해서 힘들어!”라고 씩씩하게 표현하는 법을 익히게 돼요. 어느새 내면의 힘을 쌓은 것이지요.


작은 곤충을 보고 짓궂게 장난치던 아이들도 어느 날 곤충을 관찰하며 다정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실수나 장난으로 선생님을 아프게 해놓고 어찌할 바 몰라 했다가 “선생님 미안해요”라고 다가와 사과하기도 합니다. 유연하게 변화하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관계는 가르치기보다 서로 연결될 때 자연스레 형성됨을 느낍니다.

생기 있게 뛰노는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보이지 않는데요. 아이들은 온몸으로 생명의 기운이 이런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서슴없이 다가가 관계 맺고,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 지으며 새로운 것 만들고, 몸과 마음 어우러져 씩씩하게 오늘을 누리면서 말이에요. 분절되고 파괴된 세상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아이들은 나뉜 것들을 연결 짓고 감싸 안으며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고운 마음결을 지켜보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온몸으로 희망을 뿜어내는 희망의 증인이자 미래의 주인공들을 마주할 수 있으니 고맙고 행복할 뿐이에요.

신진영 _ 아이들 사랑 듬뿍 받으며 날마다 산과 숲으로 모험을 다녔어요.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익힌 것 되새기며, 또 다른 모험 떠날 준비를 하는 청년입니다.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