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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사이' 멋지음 회사 창업 이야기
삶을 함께 그려가는 관계 속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새와 나무를 보며 무얼 느끼시나요? 저는 올해 들어 새와 나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새는 하늘을 무대로 살며 땅에 있는 존재들과도 친구가 되지요. 나무는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며 하늘을 향해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나무를 잘 아는 새는 나무에서 쉼을 얻습니다. 그 모습이 함축된 것이 바로 ‘솟대’라고들 하지요.

그런 새와 나무가 하늘과 땅 사이(새)를 이어주는 그 사이의 존재들입니다. 저는 ‘예술’이 이 사회의 새가 되고 나무가 될 거라고 확신했어요. 화려한 문명 이면에 어그러져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 자연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회복시키는 것이 ‘예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요. 그래서 미술영역에 몸을 담고 있던 저는 올해 ‘그리는사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름을 지으면서 삶을 함께 그려가는 관계 속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생겨날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했지요.

농촌에서 멋지음회사를 만들다


강원도 홍천에 내려와 산지 벌써 다섯해 째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마을 여러곳에서 그림 그리고 멋지음(디자인을 우리말로 다시 부르는 말)하는 일들 해오면서 농촌에도 예술하는 청년들이 많이 와서 활력을 더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에는 문화를 만들고 향유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자연스럽게 어린이들도- 없기 때문에 문화, 예술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낙후된 부분이 참 많거든요.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에 둘러싸인 서울에서만 살다가 대자연 속에 살다보니 온 생명들의 창조적인 모습에 예술욕이 자극되더군요. 그래서 자연을 닮은 멋지음을 만들어가고 싶다, 농촌 마을에서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뭘 하냐 물으시면 사실 평소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젠 회사인 ‘그리는사이’ 이름으로 더 책임있게 한다는 것이고,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영역을 확장해갈 계획이 세워진 것이죠.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다


첫 삽을 떴다고 하지요. 창업하고 가장 먼저 들어온 일이 면에 있는 서석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제안을 받아 운동장에 있는 차고 벽화를 그리는 것이었어요. 수업의 일환으로 하루는 학교 고학년 학생들과 그렸는데 4년전 이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만났던 꼬꼬마들이 듬직한 모습으로 변해있더라고요. 모두가 반갑고 기분좋게 그렸던 기억이 나요. 옆면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이 어우러진 조각보 이미지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동물들을 그렸어요. 앞면에는 어린이들이 숲을 이루며 사는 다양한 나무들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지요. 다 끝내고 보니 커다랗고 투박한 차고가 노을지는 운동장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마무리된 차고를 보시고 매우 흡족해 하셨던 교장선생님은 여름에는 병설 유치원 놀이터옆 낮은 콘크리트 담벼락의 벽화를 해달라고 하셨지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의 눈으로 본 관점에서 커다란 자연을 놀이터 삼아 풍요롭고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그려넣고 싶었어요. 약 30m 정도 되는 꽤 긴 길이였는데 제 벽화작업 이야기를 듣고 면에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러 응원도 해주고 손길 필요한 곳에 색칠작업도 함께 해주었지요. ‘이 동물은 내가 한거야.’ ‘저 헤어스타일은 내가 만든거야.’ 라는 대화를 듣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구경하러 오는 학교 어린이들과 대화도 나누고 허옇던 팔도 거뭇해지는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밝은누리움터에서는 청소년 학생들과 수업을 포함한 많은 시간에 함께 누리는 문화를 미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생태 뒷간을 꾸미고 같이 쓰는 방석을 염색해 만들고 닭장을 꾸며주는 등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규정될 수 없다해도 창조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바꿔내면 그런 과정자체가 예술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는사이에서 시작한 또 하나의 활발한 활동은 그림책모임입니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육아하고 있는 부모들은 집안에만 붙어 있어야 하지만 무능력한 사람들은 절대 아니죠. 사실은 할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사람들이란걸 마을에서 함께 살며 알았어요. 생명을 낳고 기르며 극대화된 생명감수성을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하니 마을의 애기엄마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세 살 또래 아이들과 그림책도 읽고 놀면서 그림도 그려보고, 육아하는 이야기 서로 나누며 마음의 쉼을 얻었지요. 그러다 자연스레 이 홍천 마을에서 함께 키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같이 한권으로 직접 만들자 했습니다. 더불어 살다보니 벌어지는 풍경도 다양하고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거든요.


막상 시작하려니 그림책 작가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말 그림책이 나올 수 있을까, 난 그림에 정말 소질이 없는데, 라며 자신 없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오는 그림책을 직접 읽어줄 상상에 다들 맡은 부분들을 정성껏 곱게 색칠해가고 있답니다. 완성되면 작은 공책처럼 엮어 2월 말 즈음 선보일 계획이에요. 매주 한번 하는 그림책 모임을 통해 새로운 소통방식을 알게된 즐거움과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다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리는사이가 꾸는 꿈

그리는 사이는 장기적으로 색깔있는 멋지음(디자인을 우리말로 다시 쓴 말)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요즘 유행이나 대세를 무조건 따르거나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우리네 삶에 있었던 고유의 결과 정신을 녹여내 눈에 보이는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한글보다는 영어를 우선시하고, 서구 풍경을 맹목적으로 차용하는 시각문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운치와 고운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런 멋지음을 해나가면 얼마나 멋질까요. 기술적으로도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동시에 인문학과 철학, 우리 문화를 계속 공부해가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는 마을의 예술 공부하는 친구들과 충북에 짚풀공예와 한지장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 듣고 오는 시간도 마련했답니다.


제 성격일수도 있지만 한 영역만 파기보다는 우리 손의 재능을 통해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영역이라면 다양하게 뭐든 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마을에서 펼쳐가는 다양한 일들이 그리는사이만의 영역이 되겠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마을밥상과 마을복덕방, 마을 누리집도 예쁘게 단장해줄 계획을 갖고 있고요, 시간이 날때마다 그림을 많이 그려두어서 우리가 사는 뭉클한 이야기들을 공책과 엽서 등 다채로운 창작물에 담아내고 싶어요. 이곳 5일장에서도 사람들이 참여한 그림이나 제품을 전시·판매하면서 침체된 전통시장에 활기를 북돋는 상상을 하기도 해요. 사업을 하려면 수익도 계산해야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마을의 어르신들과 지난 인생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일도 언젠가는 하고 싶고요. 우선 열심히 상상하고 기획하고 꿈꾸는 중입니다.

올 한해 창업과 강원문화재단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행정 업무와, 예측과 전망에 따른 구체적인 기획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아직도 부족한 점 많이 보이지만 크게 두렵지 않은 이유는 옆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언제든 도움줄 수 있는 수많은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 삼일학림에서 공부하고 있는 18살 소녀가 지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우린 새 길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지. 호랑이 한 마리 입 벌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알 수 없는 그길로 당당히 걸어나가지. 나의 옆엔 날 믿어주는 수 많은 이들이 있지… 마음만 앞서고 몸은 내 맘대로 안 움직일 때 잠시만 앉아서 쉬었다가 또 가면 되잖아"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 가까이 있어 겁을 먹기 보다 더 잘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습니다.

황지영│새로운 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덕분에 요즘 창업과 한몸살이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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