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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구석구석 녹아 있는 가치
브루더호프 공동체 탐방 이야기…규칙에 매이기보다 체화된 삶으로

순례 오기 전에 방문자들에게 브루더호프에 대한 소개와 당부하는 글을 보내주셔서 읽었다. 브루더호프는, 형제를 의미하는 브라더와 집이라는 뜻의 호프가 합해진 말이다. 산상수훈에 담긴 예수 정신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기독교인의 믿음과 실천을 매일 영감을 주는 믿음의 기초로 둔다. 또한 사유재산을 갖지 않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방문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보았는데, 사진 촬영과 휴대전화 사용을 삼가달라는 것과, 그리고 이곳은 사랑만이 유일한 법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짧은 글에서부터 브루더호프를 느낄 수 있었고,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영국 브루더호프는 다벨과 비치그로브 두 곳에 있는데, 우리는 비치그로브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얼굴들과 그림과 맛있던 밥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브루더호프에 도착하여 원충연 님을 만났다. 충연 님은 2002년부터 브루더호프에 함께하며, 아이린 님과 아이들과 가정을 이루어 살고계신 분이셨다. 충연 님 안내로 들어간 건물 안에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태극기, 태권도 겨루는 그림, 부채춤 추는 그림들이었다. 비치그로브에 있는 학생들이 한국의 부채춤을 배웠고, 공연했다고 한다. 그 그림들을 보니 아주 짧은 시간의 만남이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환대해주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점심밥상에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는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등학생이 앉았다. 여성들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왜 두건을 쓰는지 여쭤보니 성경에 여성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주로 18살이 되면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고 한다. 남성에게도 옷에 대한 규칙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남자도 남방셔츠와 바지를 입는다고 했다.

한몸살이 분들이 다함께 노래로 기도한 후에 밥을 나누었다. 그날 밥상은 카레였는데, 쌀이 우리 쌀과 같이 통통하고 끈적끈적한 밥이었다. 그 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맘껏 먹었다. 우리 쌀밥 같아서 반갑기도 했고, 카레 맛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아 아주 좋았다.

밥을 먹고 차례차례 식기와 자리를 정돈했다. 그 넓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정돈하는데 순식간에 의자와 책상이 옮겨지고, 저녁에 있을 모임 대형으로 의자가 채워졌다. 서로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밥을 먹고 나서 청소년들은 브루더호프 고등학생들과 함께 한데놀이를 하였고, 성인들은 충연님과 함께 브루더호프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브루더호프에서는 직업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한 사람이 출판 일을, 어느 때는 공장 일을 하기도 한다.

출판소

충연님은 출판소에서 일하고 계셨다. 브루더호프 출판소에서는 영성 고전, 명상집, 절기별 책 등을 펴내고, 기도, 병과 죽음, 용서, 자녀교육, 성과 결혼, 경제정의,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을 만든다. 브루더호프 잡지는 1920년 브루더호프가 시작할 때부터 전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발간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예수의 복음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공동체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서로를 사랑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을 형제로 생각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출판 사업은 받은 소명의 표현이다.

어린이가구 제작소

브루더호프 공장에서는 주로 어린이가구 만드는 일과 장애인 보조기구 만드는 일을 하는데, 이곳 비치그로브에서는 어린이가구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가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과 품질이다. 무해한 나무코팅제를 사용하고, 이곳에서 만든 어린이가구는 보증기간이 10년일 정도로 튼튼하게 제작한다. 한 곳의 나무를 수십 그루 베고 나면 그곳의 생태계가 한 번에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는 곳에서 나무를 가져온다고 한다. 공장에서는 기계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 사람을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도록 살핀다고 한다. 공장을 둘러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나무공장이라 톱밥이나 먼지가 많을 줄 알았는데, 바닥도 기계도 깔끔하고, 공구는 누구든 금방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알아보기 쉽게 벽에 정리되어 있었다.

빨래터

한몸살이의 모든 빨래는 한곳에서 가족단위로 요일별로 나눠서 한다. 물을 절약하고 집집마다 기계를 들여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모든 빨래를 모아서 한다. 가족별로 한 가방에 넣어 빨래를 하는데, 그 빨래 주머니에 무늬가 예쁜 도톰한 천이 달려있다. 가족마다 서로 다른 무늬의 천이 달린 주머니에 빨래를 담는다. 그 주머니를 두는 사물함에 주머니와 같은 종류의 천 조각을 붙여놓아서 빨래가방이 섞이지 않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했다.

보일러실

이곳에서도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데, 화목보일러실이 너무 깔끔해 놀라웠다. 보통 화목보일러실에는 장작에서 떨어진 잔 나무껍질이 바닥에 깔리고, 재와 휴지가 떨어져 있거나 목초액이 차기 마련인데, 그곳은 화목보일러실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하고 기계도 깔끔했다. 화목보일러실이 아름다운 공간일 수 있다는 사실에 도전받았다.

교육

비치그로브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나서, 다과시간을 가졌다. 차와 직접 만든 쿠키를 내어주셨다. 지난 미국순례 때 브루더호프에 만났던 킴이라는 분도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브루더호프는 1920년 시작할 때부터 교육을 해왔다. 공동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이 많았다. 당시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함께했다. 아이들은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이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소명을 받았다.

교육의 주체는 학교뿐 아니라, 가정, 공동체 전체이다. 교육과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이곳의 삶을 언어로 다 담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과 가족들과의 상호관계에서 삶으로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에서는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 뿐 아니라 손으로 하는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린 학생들은 밭에서 하늘땅살이하며 노동을 배우고, 고등학생들은 도제교육을 받아 앞으로 일하게 될 것을 배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봉사를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에 참여한다. 그 일을 통해 학생들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사회적인 일에 대해 자각하고,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 외에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성서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수업에서는 초대교회 역사를 중요하게 가르치는데, 초대교회 역사가 이 교회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마구간에서 조랑말과 돼지를 보살피는 일을 도맡아서 한다. 매일 아침 일찍 아이들이 마구간과 우리로 가서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똥을 치워준다. 아이들은 이 일을 통해서 한몸살이의 일원으로서 일을 맡아 참여하며 노동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더러운 것을 꺼리지 않고 당연하게 똥을 치운다.

브루더호프 학생들은 자기 집을 떠나 다른 가족의 집에서 새로운 공동체 일원이 된다. 기숙사 형태로 지내지 않는데, 다른 학교의 일반적인 기숙사 형태보다 공동체 가정 기반으로 사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기 집을 떠나 공동체 집에 들어가 가족을 이루며, 생물학적 가정을 넘어서 한 몸 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졸업 이후 학생들의 삶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졸업 이후의 삶은 아주 중요한 고민거리이지만, 브루더호프의 학생들은 이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것이 나와 맞는지. 이 삶을 내 삶으로 선택할 것인지를 더 중요한 질문으로 갖고 있다. 학생들은 우리 삼일학림처럼 독립학습기간을 갖는다. 독립학습기간에 한몸살이를 떠나 지내게 되는데 그 때 한몸살이는 독립에 필요한 것, 어떻게 은행을 사용하고, 집을 어떻게 구하는지 도움을 준다. 독립학습기간을 갖고 여기 함께 사는 삶에 대해 소명을 받는다면 함께 살게 된다.

여러 물음과 답을 주고받으며 브루더호프 사람들이 말과 글로 가치를 다 정리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답해주시는 분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 답들은 고정된 게 아니라 각 사람들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르고, 말로 한순간 다 표현하기에는 아주 풍성한 것이다.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여러 규칙들은 고정된 게 아니고, 그곳에서 그때에 필요한 것을 정한 것이다. 그 규칙들에 담긴 의미를 각자 자기 마음에 새기며 일관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들었다. 그리고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들과 마음에 품으며 살아가는 뜻과 지혜들을 작업장에서, 마구간에서, 잠시 보았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오직 사랑만이 유일한 법이라는 브루더호프의 소개가 떠올랐다. 브루더호프에 짧게 머물렀지만 브루더호프가 받은 소명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성스러운 환대와 따뜻함이 기억에 남는다.

신은진 | 주중에는 인수동 공동체방 둥지에서, 주말에는 홍천 삼일학림에서 행복하게 공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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