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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갇히지 않고 자유해지는 일상
본연의 삶 찾아가는 길 찾아, 프라이어리

지난 1월 24일부터 2월 9일까지 밝은누리와 삼일학림 학생 19명이 함께 유럽 한몸살이(공동체) 순례를 떠났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고,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필스돈과 프라이어리, 토트네스, 지저스아미, 브루더호프에 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떼제에 가서 쉼을 누렸습니다. 독일에서는 우파파브릭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각 한몸살이가 지닌 고유한 특징을 보고, 서로 삶을 나누며 힘을 준 여행이었습니다. 한몸살이에 가서 서로 주고받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편집자 주>


열다섯 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영국은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다. 지구 자전방향을 거슬러하는 비행은 해를 놓치는 게 아쉬운 듯 반복해서 해 지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마치 하루에 몇 번이고 지는 해를 봤다는 소설 속 어린왕자처럼 우리도 지는 해를 실컷 보며 앞으로 만나갈 사람들을 마음에 그려보았다.

공항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또 몇 시간을 달려 첫 목적지인 ‘필스돈’과 ‘프라이어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첫 목적지 ‘필스돈’과 ‘프라이어리’는 서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두 모둠으로 나누어 각각의 한몸살이를 방문했다. (필스돈을 방문한 이야기는 75호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마음 담아 반겨준 프라이어리 식구들


프라이어리는 영국 남부의 사우스햄튼이라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남쪽으로 해안을 접하고 있어서인지 겨울임에도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았다. 우리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분 안내를 따라 숙소를 배정받고 길었던 첫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8시 45분에 시작하는 아침모임에 참여했다. 프라이어리에서는 매일 아침 기도와 밥상 나눔 뒤 하루를 여는 모임을 한다. 이 모임에서는 저마다 오늘 하루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각 작업별로 담당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혹시 조율이 필요한 상황들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밥상, 텃밭, 가축, 난방 등등 각 역할을 맡은 이들이 오늘 어떤 작업을 진행하는지 얘기하고 사람이 더 필요한 경우에는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모임을 시작하면서 손님인 우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열다섯 명 정도의 한몸살이 가족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 소개에 귀 기울이고 마음 담아 반겨주었다. 영국의 프라이어리에는 여섯 명의 수사와 열 명 정도의 장·단기 피정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젊은이들과 접점 만들려 변화되는 중


프라이어리는 13세기 초 성 프란치스코와 그 뜻을 따라 살기 원하는 이들이 시작한 수도회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 수도회가 세워졌는데 영국에는 20세기 들어서 수도회가 생겼고 영국국교회인 성공회와 함께하고 있다.

수도회에는 세 종류의 성직이 있는데, 종신서원을 한 수사와 기도의 소명을 받고 살아가는 수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이다. 현재 영국에는 40명의 수사와 8명의 수녀, 2천 명 정도 재속 프란치스코회원들이 있다. 수사들의 경우 40명의 수사들 중 6명이, 우리가 방문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수도회에는 가난, 독신, 순종의 세 가지의 신조가 있는데 수사들은 이 신조에 대해 종신서원을 한 이들이다.

프라이어리는 1984년 독신 수사들만으로 시작되었다가 10년 전 새로운 이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명의 수사들과 8명의 중독자 및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신서원을 하는 수사들 수가 줄어들었고 처음부터 함께했던 수사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시설을 유지하고 사역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젊은이들과 접점, 지속가능한 사역 방법을 찾으면서 예전 규약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일부 제도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고 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장기 피정자들과 가정들은 그 과정에서 함께하게 된 이들이다.

음식부산물로 거름 만들어 하늘땅살이 하고

아침모임을 마치고 나서 오전 작업 시작 전 넓은 마당에 모여 다같이 차를 마셨다. 영국은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는데, 홍차에 우유를 탄 밀크티를 마치 물 마시듯 식후에, 작업 전후에 자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 마시고 나서 그곳에 1년 정도 머물고 있는 젊은 부부의 안내를 받으며 한몸살이 터전을 둘러보았다. 함께 갔던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밭과 가축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한 때가 겨울이어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약간의 허브 종류와 비닐집에서 키우고 있는 푸성귀 몇 종류만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밝은누리와 같이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하늘땅살이(농사)를 하고 음식부산물을 모아 거름을 만든다. 빨간 벽돌로 칸을 나누어 발효 정도에 따라 꼼꼼하게 거름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축은 소와 양, 돼지를 키우고 있는데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목적으로 키우는 것이어서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양들은 일정 구역에서 키우다가 풀을 다 뜯어먹으면 다른 구역으로 이동시키며 키우고 있었는데 때마침 우리가 방문한 때가 양들을 이동시켜야 하는 때가 되어 함께 양들을 몰아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시키는 울력을 했다.

건물은 지은 지 200년 이상 된 것이 대부분으로 수리 및 개조해서 쓰고 있는데, 오래된 건물이 지역의 자연환경과도 잘 어울렸고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다니면서 몇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 건물의 연륜(?)과 어울리지 않게 건물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최신 전기차, 시설이 잘 갖춰진 화목난방 시스템이 그것이었다. 나중에 수사님 한 분과 대화 나누며 그런 시설들을 갖추게 된 이유를 물었다. 수사님은 질문에 답하시면서 프라이어리의 소명이 새로워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다.

빈곤문제와 밀접한 환경문제에 주목


1990년대 말까지 수도회에서 주목했던 시대적 과제는 가난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영국에서는 가난과 중독이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프라이어리에서는 집 없는 이들과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쉼터와, 치유 과정으로써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거의 매 주말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쉼을 얻고 돌아갔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파푸아뉴기니 같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자립을 돕고 교육활동을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 정부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프라이어리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가난한 나라들을 다니며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그들이 주목했던 빈곤문제는 환경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 산업화된 나라들로 인한 기후 변화는 문제를 만들어낸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정도로 인식될 수 있으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변화로 찾아온다. 자연조건에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갖춘 나라들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의 피해는 그들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으로 기후 변화는 빈곤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깨닫고 프라이어리에서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실천을 시작했다.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화목 난방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석유화학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하늘땅살이를 비롯해 지역 학교와 연계한 환경교육 등 다양한 활동들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그렇게 프라이어리는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받아안고 새로워지는 과정에 있었다. 걸어온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 있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것이고 자기 삶을 기꺼이 바꿔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라는 부름


이곳에서는 하루 네 차례씩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도 시작 전에 큰 종이 울리면, 각자의 자리에서 일에 몰두하던 이들이 종소리를 듣고서 자연스레 하던 일을 멈추고 예배당으로 모인다. 수사님 한 분은 “우리 인간은 늘 무엇엔가 빠져들고 몰두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는 어떤 자극이 필요한데, 종소리는 그렇게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라는 부름입니다”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렇게 자기로부터 빠져나오는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도회는 수사님들이 돌아가며 진행을 하는데 이때는 작업복을 벗고 수사복을 입는다. 수사복은 광목천 비슷한 투박한 가운인데 밧줄로 된 허리띠를 두른 것 외에는 장식이 전혀 없는 매우 소박한 옷이었다. 허리띠에는 세 개의 매듭이 있는데, 그들의 신조인 ‘가난’, ‘독신’, ‘순종’을 의미한다. 세 신조 모두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인간이 창조된 본연의 삶을 찾아가는 길이다.

‘가난’은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탐내지 않는 ‘물질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독신’은 관계가 그 어떤 것에도 제한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소유,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순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는데, 순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는 순종을 주체적이지 못한 것으로 연결시켜 부정적으로 이해할 때가 많은데, 순종은 자기 판단에 갇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 바깥에 자기를 맡겨보는 경험은 또 다른 차원의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세 가지의 신조는 뭔가를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더 충만하고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라고 한 수사님은 얘기해주었다.

단순하게 사는 삶이 주는 정화의 힘


넉넉하고 차분한 사람들과 푸근한 환경 속에서 시간 정해 기도하고 함께 일하는 동안 낯선 곳에 왔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뭔가 모를 편안함과 정겨움이 깊게 찾아왔다. 단순하게 사는 삶이 가진 정화의 힘, 치유의 힘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들, 소박한 건물과 장식, 간소한 옷차림과 밥상, 잘 정돈된 방과 작업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든 공간에서 이들이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새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새 과제에 주목하며 새로워지고 있는 이들이 이후에는 또 어떤 모습들로 변해갈지 크게 기대되었다. 순례의 첫 시작을 프라이어리에서 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자기 속으로 깊게 빠져들어갈 때 함께한 친구들이 서로에게 종소리가 되어주면 좋겠다. 이후 순례의 여정에서도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소중한 만남들 마음에 잘 새기자 다짐하며, 짧지만 풍성했던 프라이어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박영호 | 홍천 밝은누리움터(중등 대안학교 생동중학교+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에서 삼일학림 학생으로 공부하고, 교사로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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