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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아픔 나누며 '중독' 뛰어넘다
공동체 생활로 새롭게 살도록 돕는 '라파공동체'


14년째 중독자들 치료에 힘쓰는 공동체가 있다. 충북 옥천 시골 마을에 있는 라파공동체다. ‘시설 격리는 안 된다. 공동체 생활로 중독 치유가 가능하다.’ 이런 굳은 믿음으로 공동체가 2002년 출발했다. 중독자들은 1년간 치료 과정을 밟으면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같은 정황에 있는 동료들과 문턱 없이 만나며 치료 과정을 함께한다.

라파공동체에는 주로 알콜중독자들이 온다. 알콜중독이 술을 마시다가 쓰러지고, 병에 걸리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많다 보니 그렇다. 심한 경우에는 보름 정도 밥을 한 끼도 안 먹고 술만 마신다. 술 자체에 열량이 있다 보니 밥을 먹지 않아도 몸이 견디기는 한다. 하지만 식도에 문제가 생기거나, 심장마비 같은 쇼크사가 오기도 한다. 라파공동체는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도록 알콜중독자들을 붙잡는다.

10월 15일 청년아카데미 한국 공동체 소개 강좌에서 라파공동체 윤성모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는 여러 계기로 중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나는 본인이 과거에 몸담고 있던 교회에 알콜중독자 한 명이 왔다. 그런데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 윤 대표는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독자들이 전신 마비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때 많은 중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이들의 생활은 정말 비참했다.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중독을 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윤성모 대표는 장 바니에가 프랑스에서 설립한,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에 주목했다. 라르쉬에서는 장애인이 단순히 도움만 받는 대상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공동체의 주인으로 함께한다. 중독자들에게도 이 같은 공동체가 필요했다. 근원적인 중독 치유는 ‘공동체 삶’과 ‘관계’로 가능하다 확신이 들었다.

중독자들을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게 우선이었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고, 문턱 없이 마음을 열고 만나는 게 치료의 시작이었다. 더 나아가 중독자들끼리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라파공동체 일상은 자기를 돌아보는 기도, 운동, 함께하는 노동, 공동생활 등으로 이어나간다.

그동안 공동체에는 200명 정도가 거쳐 갔다. 치료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1년의 치료 기간을 수료한 사람이 40명이다. 알콜중독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이제 술을 아예 한 잔도 안 마신다는 것을 뜻한다. 수료자 중 단주를 지키는 사람은 20명 정도다.


“20명은 적은 숫자가 아니에요. 중독으로 고단하게 살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중독자들에게 동료 공동체가 참 중요합니다. 여기에선 모두가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서로 속 얘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 나도 너와 같아. 나도 너와 비슷한 상처가 있어. ’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뛰어넘는 관계로 나아가야 치료의 길이 열립니다. 공동체 삶 자체, 함께하는 동료들의 존재 자체가 자기 과오나 허물을 직면하게 해 줍니다. 공동체 치료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술에 중독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어요. '술을 뭐 하러 먹나, 안 먹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중독은 어쩌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 자체가 이미 우리를 중독에 빠지게 만듭니다. 스마트폰을 끊어야지 해도, 끊는 게 어렵지 않나요? TV를 안 봐야지 마음먹어도 참 쉽게 되지 않습니다. 중독 환경을 차단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공동체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

윤성모 대표, 조현경 님 부부 둘이서 주로 중독 치료 활동을 이어 왔다. 둘이서만 이 일을 해 가기에는 힘이 부칠 때가 있다. 중독 치료에 뜻을 둔 동료들이 생긴다면, 이들과 함께 농촌 생활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한다. 두 사람은 중독에서 회복한 이들, 동료들과 함께 농사짓고 서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삶을 꿈꾸며 지금도 묵묵히 중독자들을 만난다.

임안섭 | 청년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마을공동체 삶으로 풀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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