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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토트네스 전환마을

지난 1월 24일부터 2월 9일까지 밝은누리와 삼일학림 학생 19명이 함께 유럽 한몸살이 순례를 떠났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고 연대했다. 우리가 방문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영국에서는 필스돈과 프라이어리, 토트네스, 지저스아미, 브루더호프 한몸살이에 갔고, 프랑스에서는 떼제 한몸살이에 가서 쉼과 안식을 누렸다. 독일에서는 우파파브릭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각 한몸살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보고, 또 우리 삶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준 여행이었다. 다녀온 곳들을 소개하는 시간 마련했다. 매호마다 각 한몸살이에 가서 연대하고 서로가 주고받은 대화들을 나누려 한다. <편집자 주>


필스돈과 프라이어리, 두 공동체로 흩어져서 첫 사흘을 보냈던 우리 19명은 두 번째 방문지인 토트네스 전환마을로 가기 위해 다시 만났다. 이리도 반가울 수가…. 버스 안에서,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난을 신조로 삼는 프란체스코 수도원(프라이어리)에 묵었던 우리들은 곧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필스돈에서는 울력도 많이 했지만, 농장답게 각종 요리를 풍성하게 대접받았다는 것. 음, 여행은 이런 것이지….

토트네스 전환마을과의 만남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어떤 만남이 있을지 예상이 잘 안 되었다. 토트네스가 생태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워낙 알려진 곳이기에 실제 모습이 어떨까 싶고, 우리와 다른 점이 많은데 과연 깊이 있는 만남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순례 전체가 낯선 이들과 만나는 모험 아니었던가.

숙소 생활안내에서 본 마을의 철학

점심때쯤 토트네스에 도착하니 마을활동가 ‘할’이 맞아주었다. 할이 이웃 손님숙소 두 곳과 친구집, 본인의 집까지 총 동원해서 우리 19명의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그 중 한 곳이 홀리 님네 손님숙소인데, 여행자들에게 마을의 철학이 녹아 있는 숙소에 묵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곳이다.

집안 곳곳에는 매우 상세한 숙소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사용하는 세제부터 전기제품 수건 등에 작은 부분까지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이 집에서는 채식만 가능합니다. 환경적인 관점에서 이산화탄소를 1/4 정도 줄일 수 있답니다. 아침식사를 제공할 때 식재료를 구매하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50킬로미터 내 지역의 제철 농산물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포장이 없거나 단순한 것을 삽니다.
그것이 없을 경우, 유기농 중 지역의 작은 가게에 있는 것을 삽니다. 대형마트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일부 예외가 있습니다. 현재 귀리와 밀은 지역에서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개월 내 가능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사회 꿈꾸는 이들이 모여들다

짐을 풀고 다팅턴 지역 산책을 나섰다. 토트네스마을은 ‘다팅턴’이라는 지역의 일부이다. 다팅턴에는 우리가 곧 방문할 슈마허 대안대학도 있다. 어떻게 이 지역에 이런 이들이 모이게 된 것일까? 마을활동가 할은 우리에게 다팅턴 지역 역사를 들려주었다.

영국의 청년 ‘에머스트’는 1차 세계대전 때 징집을 피해 사회봉사를 택하고 인도에 간다. 인도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타고르’를 만나는데, 그는 농촌의 재건을 통한 사회변혁 운동을 하고 있었다. 타고르의 비서로 수년간 일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배운 운동을 지속할 곳을 물색한다. 그 와중에 도로시와 만나 결혼하고 다팅턴지역에서 완전히 망가져 있던 성과 마을을 재건한다. 세계대전과 경제공황 직후에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다팅턴으로 대거 모여들게 된다. 프로이트, 버나드 쇼, 버트란트 러셀 등이 이곳에서 살았다. 이 역사가 지금의 슈마허와 토트네스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녁밥상은 토트네스 마을 창업의 사례인 시마 님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오랫동안 요리사로 일하던 시마님은 식당에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고,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오래 준비 끝에 마을 친구들 도움으로 출장요리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기 전날 사무실이 문을 열었고,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새 가게 문을 열자마자 우리 19명에게 큰 밥상을 차려준 시마 님은, 다음날 농산물 공급하는 생산자들과 회의가 있다고 한다. 올해 하늘땅살이를 함께 계획하는 회의이다. 무엇을 얼마나 심을 것인지를 같이 결정한다. 또한 결혼식이나 행사에 밥상을 차리는 일을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일회용기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옥수수 전분으로 된, 썩을 수 있는 접시를 쓴다.

자기 지역에서 나는 밀가루 구하려는 노력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바로 옆 사무실. 들어가니 바닥에 밀이 가득하다. 우리가 묵는 손님숙소의 주인인 홀리 님이 하는 제분소이다. 역시 문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영국에서 자기 지역에서 나는 밀가루를 구할 수 없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홀리 님이, 주변의 농부들을 설득해서 밀 재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가장 가까운 제분소가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 제안으로 제분소 사업을 스스로 시작하게 되었다. 홀리 님 집 안내자료에 나온 “지역 밀가루 공급이 몇 개월 내로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이 뜻이었다.

다음 날은 토트네스의 강둑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강 어귀에 엘리자베스여왕 때 스페인함대를 물리친 역사적 해전이 있었다. 스페인을 제치고 영국 제국주의가 패권을 차지한 사건이다. 그 해전에 쓰인 배가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배 모형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주석 광산이 많이 있었다. 깊이 갱도를 팠는데 물이 차서 광부들이 죽곤 했다. 이 지역 과학자가 물을 빼내는 기술을 발명했는데, 그것이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증기기관의 시초라고 한다.


할은 이 지역이 창의성이 풍부한 곳인데 그 결과가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이라는 파괴적인 문명을 잉태했다는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는 그 창조적인 역량이 지구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쓰이기를 원해서 전환마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항구에는 한 때 큰 배들이 드나들었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일했다. 당시에 드나들던 큰 배 사진을 보여주자 우리가 “우와” 하며 놀랐다. “지금은 작은 항구처럼 보이지만, 이런 대단한 시절이 있었다는 게 놀랍죠? 큰 것은 좋은 것인가요?” 질문을 던진다. 항구는 한때 번성했지만, 차츰 배가 아닌 기차가 물류를 담당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회사가 문을 닫자 마을 전체가 휘청거렸다. 다시 묻는다. “큰 것은 좋은 것인가요?”

지역 경제 복원력이 핵심

지금 토트네스의 상권에는 수많은 작은 지역 사업과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를 통해 ‘복원력’이 큰 지역 경제를 만든다. 경제적인 활동 주체가 다양하고,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생태학적으로 상호관계를 많이 맺는 지역 경제를 만드는 것이 복원력의 핵심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강한 것이다.

점심은 토트네스 시장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이정도 규모이면, 지역 유기농 농산물을 쓰는 가게가 한 개 정도 있는 것이 영국 시골마을의 평균이라고 하는데 토트네스에는 무척 많다. 토트네스에서 이런 방식으로 지역에서 연대할 수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듯했다.

이곳에 ‘코스타’라고 하는 대형 커피체인점이 가게를 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대형 커피체인점이 들어왔다가 수익이 안 나자 문을 닫아버리고는, 경쟁사도 들어오지 못하게 가게를 팔지도 않고 빈 상태로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토트네스에서는 몇 년간 끈질기게 싸웠고, 결국에 ‘코스타’커피가 못 들어오게 막았다.

함께 공부하다 이웃을 얻는 골목길사업


오후에는 전환경제센터에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마을에서 사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이들을 돕는다. 경제는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날을 정해서 여러 사람이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투자할 자본이나 전문적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사업에 참여하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여러 대안적 가치를 품은 사업이 지역에서 생겨났다. 홀리의 제분소, 마을 맥주 양조장,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유기농 초콜릿, 마을의 청년여성들이 만든 농장 등 여러 가지이다.

전환경제를 위한 이행전략이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 수 있는 생태계 차원의 접근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역에서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교육하고 지원하면서 생태계가 자라나는 ‘촉매’ 역할을 자기 운동의 초점으로 삼은 것이다.

토트네스운동에 지역의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참여하는지 궁금했다. 토트네스는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노후된 집들에 태양광 패널 설치하는 사업을 하게 되었다. 보통 이러한 지원을 받으려면 수혜자가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교육받았다고 해서 삶의 변화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이 아닌 마을 차원의 접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들끼리 공부 모임을 조직해서 신청하도록 했다. 골목길 사업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한 모둠당 6~7개 가정이 결합해서 에너지, 먹거리, 물, 쓰레기, 자동차 5개 주제를 공부했다.


여기에 참여하신 조 할머니를 만났다. 아홉 가정이 모였는데 나이도 다르고, 가족 구성원도 달랐지만, 모임에 참여한 이는 모두 여성이었다. 2주에 한 번 만났고, 지금도 끈끈한 관계로 지낸다. 처음에는 에너지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혼자 살고 있던 조 할머니에게는 이웃을 만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크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의사가 12시간 동안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혼자 살고 계셨기에 함께 공부한 이들에게 부탁했고, 서로 돌아가며 돌봐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마을 이웃과의 관계 덕분에 세상에 대한 소속감이 생겼다고 하셨다.

경제 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생태계

오후 4시쯤 되니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밤이 빨리 시작되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다음으로 ‘앳모스(ATMOS)’사업체에 방문했다. 기차역 옆에 유제품 공장이 있었는데 문을 닫게 되었다. 2008년부터 5년을 협상을 해서 그 공장을 1 토트네스 파운드에 마을공동체가 인수받게 되었다. 주민 투표를 하고, 유제품 공장과 끝없이 협상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곳에 이제 전환 경제를 위한 사무실과 공장 공간, 지역 청소년을 위한 공간 등 여러 지역의 공간이 생겨날 것이다. 인터뷰 기사에서 사업 담당자 중 한 명의 말이다. “유로화의 침체나 경제불황에 대한 뉴스가 많다. 우리는 그런 소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마을의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다른 방식으로 번영해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토트네스 둑이다. 오래전에 둑이 있던 곳에 조그마한 수력발전소가 세워졌다. 옆에 1,500명 규모의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규모이다. 이 수력 발전소가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둑이 갖고 있던 생태적 문제점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철마다 산란하러 올라오는 연어 떼가 둑 때문에 막혀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고 잡아먹히곤 했다. 수력발전에는 아르키메데스 수차가 쓰였는데, 이는 물고기들이 통과해갈 수 있는 구조이다. 수력발전소 옆에 물고기들이 다닐 수 있는 물길도 만들었다. 개발이 생태계에 오히려 도움이 된 사례이다. 이 일은 지역의 에너지문제 공무원이던 분과 토트네스 운동체가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분은 늘 지역에서 에너지 생산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토트네스 전환 운동체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고, 의기투합하여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개인을 넘어 연대하는 생태계로


토트네스 전환마을 운동이 지역 내 연대운동을 하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있다. 첫째, 생태계적인 접근이다. 사업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촉매를 제공하고 재생산 구조를 만드는 지역 생태계적인 접근을 한다. 현재의 문제가 개인 의식의 문제를 넘어서서 구조적 문제임을 공부하며 자각한 것 같다.

둘째, 지역에서 끈질기게 연대하는 모습이다. 공동체회관을 만드는 사업을 위해서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을 5년간 설득했다. 또 활동가들이 다양한 수위로 이웃들과 만나고 있다. 그 지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주민들, 상점 주인들도 할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함께 밥 먹고 아이들 기르는 일상 속에서 마을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기 어려웠다. 사업과 활동 중심으로 마을이 구성되는 것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할은 우리 한몸살이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했고, 함께 생활하는 우리 방식이 대안을 만들어가는 데에 장점이 많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서로의 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충분히 나눌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 마지막 날 저녁 늦게 아이들 재우고 나서 연락할 테니 더 이야기 나누자고 했는데, 네 아이를 키우는 그를 며칠 동안 늦게 집에 보낸 것이 미안해 괜찮다고 했다.

토트네스와 어떤 만남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후 여행 내내 토트네스를 기억할 때마다 따스함이 되살아나는 애정 있는 만남이었다.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었다.

신원 | 함께 사는 데 쓸모있는 공학을 배우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주중에는 서울의 직장에서 신재생 에너지 기술자로 일하고, 주말에는 강원도 홍천 삼일학림에서 과학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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