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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노동
슈마허대학 아름다운 둥근 밭에서 보다


풀과 양과 안개만 보이던 버스 밖 풍경이 어느새 집, 마당, 골목 같은 정겨운 마을 풍경으로 바뀌었다. 토트네스 마을의 여러 가정집에서 우리가 머물 곳을 내어주셔서, 그곳에 짐을 풀고, 슈마허대학으로 갔다. 모나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시며, 학교를 소개해주셨다.

슈마허대학은 1990년 사티쉬 쿠마르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에른스트 슈마허의 뜻과 가치대로 살고 교육하기 위해 영국 토트네스 다팅턴 지역에 세운 학교이다. 학생과 선생님이 교실, 밭, 부엌에서 함께 공부하고 노동하며 서로를 키워주고, 마음을 나눈다.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통전적인(holistic) 교육을 하며, 벗하고 있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적 배움의 터이다.

슈마허대학은 온 생명이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고민하는 전 세계의 선생님들을 모셔 대화하고 질문하며, 지혜를 나눈다. 학교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자원봉사자, 방문 연사와 학교에서 머물며 함께 밥 짓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다. 학교 주변에는 숲과 야생 들판과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산책하고 묵상하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슈마허대학에서는 점심부터 저녁까지 반나절 동안 짧게 머무르며 점심밥상을 함께하고, 밭과 학교 연구 공간 여러 곳을 둘러보며 이야기 나누었다.

음식 전체에 깃든 생명 모시는 밥상


이곳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을 때, 이곳의 밥이 맛있다고 칭찬이 많았다. 다녀간 사람들의 글과 학교를 소개하는 글에도 밥이 맛있다고 적혀 있어서 기대를 하며 밥상에 갔다. 그날 밥상차림은 렌틸콩 스프, 당근과 푸른 잎 샐러드와 빵과 볶음밥이었다. 순례 떠난 이후, 먹는 밥은 느끼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는데, 간이 약하고 기름이 적게 들어가 속에 부담이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맛과 풍부한 향이 나서, 순례 떠난 후 오랜만에 혀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슈마허대학에서는 재료를 손질할 때, 뿌리 하나 버리지 않고 통째로 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먹는 이유는 생명이 음식 전체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이 되어준 생명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정성껏 차린 밥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위에 밥상기도문이 놓여 있었다. 밥상기도를 읽으면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밥을 먹으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다.

이 밥은 땅과 하늘과 무수한 생명과 사랑을 담아 열심히 일하는 손길이 준 선물입니다.
진중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이 밥을 귀히 여기도록 해주세요.
우리가 탐욕과 같은 나쁜 마음을 깨달아 바꾸고, 중용의 마음으로 먹는 법을 알게 해주세요.
우리 마음속에 긍휼이 있어서, 생명들의 고통을 줄이고,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을 멈추고,
이 소중한 별을 치유하고 보존하며 밥을 먹게 해주세요.
우리의 자매 형제 된 공동체를 돌보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한 꿈을 키우기 위해 이 밥을 모십니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도움 주고받는 농사


슈마허대학에서는 땅을 만지고, 생명을 기르는 하늘땅살이(농사)를 유익하고 소중한 노동으로 가르친다. 18년 전,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적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농사법을 고민하고 연구한다. 이곳에서도 밭을 갈지 않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자연에 나는 것으로 밭을 덮어준다.


하늘땅살이 선생님인 제인이 오셔서, 밭을 둘러보며 슈마허대학의 하늘땅살이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데, 하늘땅살이 선생님이어서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함께 갔던 이들 대부분이 하늘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궁금한 것이 많았고,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말씀을 들었다. 재밌었던 것은 슈마허대학의 농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이 잘 통역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모두가 무슨 맥락인지 알아듣고 소통이 되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삶으로 뜻이 통하고 마음이 전해지는 경험이었다.

제인 선생님이 슈마허 하늘땅살이의 정수가 담긴 밭을 보여주셨다. 이곳에서 씨앗을 받을 작물을 기르고 여러 다양한 농법을 시도해 기른다고 한다. 밭 한가운데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주변을 밭이랑이 둥글게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밭을 원모양으로 만든 이유가 뭘까 여쭤보니, 아름다워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모두들 그 단순한 대답을 듣고 “아~ ” 하고 탄성을 질렀다.

홍천에서는 주로 28점 무당벌레나 노린재 때문에 고생을 한다면, 이곳에서는 민달팽이 피해가 많다. 밭 가운데 작은 연못에 오리를 기르는데, 그 오리들이 이곳에 사는 민달팽이들을 잡아먹는다. 그 연못은 좁은 곳에 고인 물이라 오리 똥으로 금방 썩는데, 그 연못물을 모아 거름을 만든다고 한다. 선생님의 민달팽이에 대한 감정이 우리가 노린재를 대하는 감정과 비슷했다. 선생님이 민달팽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모두들 웃으며, 공감했다.

이곳은 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작물이 마르고 쓰러진다. 그래서 앞으로 밭 주변에 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나무가 큰 바람을 막아주고, 그 주변에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해서, 물을 잡아주고 양분을 풍성하게 해준다.


슈마허대학에도 생태뒷간이 있었다. 서양이라서 쪼그려 앉는 좌식이 아니라 입식 뒷간이었다. 똥을 눈 통 안에 휴지도 함께 넣고 나서 변기 옆에 톱질하고 나온 고운 가루들을 한 삽 퍼서 덮어준다. 밭에서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밭과 뒷간을 보니 슈마허대학이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하늘땅살이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졸업 이후 연대하는 삶을 꿈꾸며


학교 돌아보는 일정을 마치고, 슈마허대학의 선생님과 학생들과 둥글게 모여 앉았다. 먼저 우리를 소개하는 순서로, 지난 학기 학림에서 춤 수업을 배운 학생들이 장구반주에 맞추어 고성오광대 기본무를 췄다. 춤을 마치고 우리 한몸살이와 학림에 대해 짧게 소개하는 시간 갖고 서로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았다.

슈마허대학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배움을 자신의 삶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다고 한다. 슈마허대학에서,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노동을 하며 자기 규모에 맞게 작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 이후, 학생들의 개인적인 가치나 삶의 결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배운 가치를 힘 있게 구현하며 연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학비가 비싸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데도, 학교 재정이 어렵다고 하셨다. 삼일학림은 마을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더 다양한 것을 꿈꾸며 실현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점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반나절의 짧은 시간동안 학교를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곳이 생명과 생명이 서로를 더 잘 살도록 이끌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을 돌볼 때, 퇴비를 써서 양분을 해결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밭의 생명들 서로와 사람들이 서로 어울러져 생명을 고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작게 살아야 한다, 혹은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나 필요로 접근하지 않고, 생명과 생명이 서로를 돕고 살리는 장을 그 곳에서 만들어가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슈마허대학에서 지키고, 가르치는 뜻과 삶을 보며, 동지를 만난 듯이 반가웠고, 한국에서의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힘을 받았다. 앞으로 슈마허대학과 더 활발히 연대하며 서로의 삶과 고민의 흔적을 나누며 더 풍성해지는 그런 동지의 관계를 잘 이어가면 좋겠다.

신은진 | 주중에는 인수동 공동체방 둥지에서, 주말에는 홍천 삼일학림에서 행복하게 공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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