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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뜻 모시며 살아가는 삶
동학과 21세기

사람이 지금껏 살아오며 이어져 온 가르침이 있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생명을 사랑하라 입니다. 이는 모든 문명, 종교, 철학이 동일하게 깨달은 바이기도 하지요. 이 가르침과 깨달음을 이 땅 조선반도에서 이루어가고자 하였던 것이 동학東學입니다.


유학은 조선을 지탱하는 철학, 이념이었습니다. 그것이 조선 말기에 명분과 허례의식에 사로잡혀 더 이상 사회의 지도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들어온 서학은 새로운 이념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수운 최제우 선생은 서학이 개인적 기복을 빌 뿐 참으로 하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느꼈습니다. 동학은 조선의 유교적 체제의 붕괴와 서구 열강의 침략이라는 대내외적 위기의식에 대한 주체적 대응이었습니다.

수운 선생이 깨달은 것은 천도天道입니다. “도는 천도이나 학인즉 동학”이라고 했지요. 천도는 하늘의 길, 대자연의 법칙을 말합니다. 우주의 운행원리, 만물 생성의 이치라고 할 수 있지요. 옛 성현들은 천도를 깨달아 그것을 자기 인격과 삶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도를 체득한 사람이 얻은 내면의 힘, 또는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는 것을 덕德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모두 도와 덕을 추구하였으며,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지요. 그런데 도는 우주운행의 법칙임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본체이기도 하므로 말글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습니다. 표현된 글은 도의 궁극적 의미와 전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달은 현자는 부득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말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학學이 되었지요. 옛 성현들이 깨달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잃어버린 천도를 조선 땅에서 다시 회복함으로써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수운 선생은 동학을 창도하였던 것입니다.


천도를 표현하는 용어로 등장하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입니다. 천지운행, 만물생성의 모든 작용이 자연 본래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창조와 생성이 외부의 어떤 초월적 존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원리와 힘에 의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무위이화를 자각한 사람은 우주 운행의 자연한 법칙에 따라 조화로운 삶을 살며, 일의 핵심을 알아서 결단하고 마음이 굳건해져 외부의 힘에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보았습니다.

무위이화가 우주와 신에 대한 형이상적 답변이라면, 인간과 생명에 대한 답변이 시천주侍天主입니다. 시천주는 모든 사람 안에 하늘이 모셔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영과 기로서 존재하는 우주에 내재한 궁극실재입니다. 시천주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인간은 내면에 무궁한 한울을 모신 거룩한 존재이며, 인간은 우주적 기운과 모든 생명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존재이며, 한울의 영기를 안팎으로 모심으로 고유한 개체 생명으로서 자기의식, 주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천주의 자각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합니다. 자기 안에 하늘의 신성을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낡은 자기로 있지 않고, 의식 너머 마음의 깊은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초월적 차원을 열게 되는 동시에, 다른 존재 속에서도 하늘의 신성을 발견합니다. 이는 천지를 부모처럼 섬기는 실천과 더불어 다른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깊이 존중하는 자세가 일상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동학에 대한 맥을 짚어주신 김용휘 님은 시천주 가르침을 따라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연을 위하여 한울연대라는 이름의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을 공부한 연구자이시기도 한데, 제도권 학계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한울연대에서의 활동에서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환경단체 활동이 주로 대항운동인데, 동학을 공부하며 대안을 만들어 가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주목한 것이 교육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몇몇 사람들과 함께 얼마 전 경주에서 방정환한울어린이집을 시작하였고요. 방정환 선생은 동학의 가르침을 따라 당시 천대받았던 어린이들에게 한울님이 깃들여 있음을 외치며 어린이들을 하늘로 모시며 함께 지냈던 분이죠. 어떻게 하면 동학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많은 강의를 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싫어져, 수운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가정하고 그 후 일상을 어떻게 살아갔을지를 상상하며 청소년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동학의 가르침은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요.

저 스스로는 올해 초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동학을 주제로 연구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학을 공부하며 이 땅의 어려웠던 시기에 새롭게 일어난 창조적/역동적 운동의 놀라움을 금치 못했더랬죠. 늘 깨어 하늘 뜻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고자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이 공부를 하는 즈음에 지금은 9개월이 된 딸을 잉태했어요. 이름을 ‘하늘’이라고 지었어요. 어린 생명을 하늘로 모시고, 갈라진 이 땅의 질곡의 현실에서 하늘 뜻 받들고 창조적이고 힘 있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하늘이를 부를 때마다 하늘 뜻 새기고 기억하게 되요. 새기고 기억한 하늘 뜻 오늘의 삶에서 충실히 이루어가렵니다.

장철순 | 대학생들과 배운대로 살고자 함께 공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 태어난 하늘이를 돌보며 생명의 성숙을 이루는 시간 보내고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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