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을 이해하면 화해 길 보인다
사람과 사람으로 잇는 평화
2017년 10월 6일, 성지에서 온 교회 손정열 목사님과 평화를 꿈꾸는 5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탈북 새터민이기도 한 손정열 목사님은 70여 년간 분열된 남과 북이 화해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준비해야 할지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나누어 주셨어요. 숱한 질곡을 몸으로 겪어 낸 목사님의 삶이 우리 역사의 아픔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중요하게 나누어진 이야기는 새터민의 고충을 알아야 평화를 일구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남녘에는 이미 3만여 명의 새터민이 있고, 이들은 곧 북녘을 이해하는 창구이자 화해의 밑거름이라는 것이지요. 새터민을 잘 이해하려면 그들이 영향을 받은 주체사상과 반기독교 교육, 90년대 이후 북녘의 사회·경제·정치적 흐름, 고향에 대한 향수와 남한사회 정착 후 느끼는 심리적 압박 등을 알아야 한다는 구체적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주체사상의 본질은 ‘사랑과 희생’을 강조하고 있었어요. 모두가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적 존재로 살되, 물적·정신적 토대 위에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고자 하는 사상이지요. 다만 지금의 주체사상은 처음의 정신을 잃고, 지도자 한 개인으로 수렴되어 왜곡·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기독교 등 새로운 가르침들은 자연스레 탄압받고 배척될 수밖에 없었어요. 더욱이 90년대 중반을 넘어 시작된 선군정치와 공포정치는 300만 명의 아사자를 만들고, 생명을 가혹하고도 무참히 대했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탈북민은 목숨을 걸고 중국과 남한 등지로 넘어가야 했지요.
새터민들은 새로운 터전에서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생활 현장에서 겪는 문화충돌과 정치적 공격, 편견의 시선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북녘에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에요. 그중에는 북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도 있고,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해 늘 마음 한 켠에 죄책감과 슬픔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도 있지요. 그들의 삶의 역사와 지금의 고충을 알지 않고서는 3만여 명의 새터민 너머 2,400만의 북녘 겨레와 화해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평화도 새터민들과 더불어 사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강의가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강당에 모인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도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구쳤어요. 저 눈물과 이 뜨거운 마음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시간 강의 끝자락에 마음에 남은 것은 단순히 화해 통일을 이루는 지혜가 아니라, “저기에 사람이 있다”라는 간결한 메시지였어요. 저 북녘에,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 우리 겨레의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생명감수성을 회복하고 서로를 품어 안아 더불어 사는 실천, 거기에서 화해의 통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통일 아니겠습니까!”라는 목사님의 외침이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정성혜 | 책 만들고 가꾸는 일 하며 지냅니다. 북한산 자락 인수마을 오가며 기쁘게 한몸살이 배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