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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대화 - 공동체 지도력]
세상에서 신앙을 택할 수 있는 힘, 공동체
고독한 투쟁길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따뜻한 일상 같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웅성거렸는데도 그것은 평화롭고 고요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공동체운동이란 세속과 대결하는 고독하고도 돌출된 투쟁이라고 이해되고 있었다. 공동체를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 교회의 왜곡된 신앙 지향을 거절하고, 그 대안을 추구하는, 피곤하고 긴장된 자기 소외의 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녀온 공동체교회 한마당잔치는 나에게 이미 오래 사귀고 만나온 친구들의 일상적 만남처럼 평안한 멍석모임이었던 것이다.

비록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그 다름은 이 모임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마땅한 공동의 상식이었다. 그 다름은 성공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사랑의 공생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아니라 관대한 포용이며, 결과에 대한 야박한 평가가 아니라 그 깨달음과 진정성에 대한 따듯한 격려였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소박한 평화로움이 있었고, 가만히 있을 때도 미소가 느껴졌다. 그런 이유에서 각박한 세속사회에서 발견한 피난처와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최철호 목사님의 공동체 지도력에 대한 강의는 매우 통렬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오랜 공동체 운동의 경험으로 내공이 견고하게 다져진 최 목사님 강의는 공동체 초년생인 나에게는 큰 감격과 부러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토록 부드럽게 대화하고 친밀하게 소통하시는 분이 강의에 들어가니 아주 견고한 논리와 지적 개념들로 무장한 용사 같았다. 그에게는 세상과 맞장 뜨고자 하는 결기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며 존재의 방식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설명해나간다. 그는 현실 교회들과 신앙인들의 왜곡된 문제들을 예리하게 집어내고 그 변형된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이유들을 들추어내었다. 그리고 그 이론이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선택과 실천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특별히 뇌리에 새겨진 내용은 세상이 만든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는 게임이라는 말씀이다. 세상이 설정한 삶의 방식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그 구조 속에 갇혀버릴 때 우리는 신앙적인 가치와 선택을 실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이 그 안에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훌륭한 삼성맨 현대맨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우리는 흔히 목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그 세속의 구조 속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영적 경계를 설정한 작은 진지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거대한 세속의 구조 속에 있지만 그래도 이 작은 공간 안에서는 혼자서가 아니라 공동의 힘으로 영적 전투를 싸워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된다. 이런 공동체들이 많아져서 네트워크를 이루고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면 보다 큰 범위에서의 전략적 싸움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공동체의 영적 구조 속으로 신앙의 사람들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강사님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의 판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표현하셨다. 공동체적 삶을 용기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젊은 식구들의 우유부단함에 대하여 절망하며 좌절해왔던 나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판을 간다는 것은 일거에 구조 속으로 들어올 것인지 아닌지 결단하게 하는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런 시도를 할 경우 사람들을 많이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데 그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그리고 점진적으로 설득하여 변화되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강사님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잘 분별해야 하지만 세상 정사와 권세에 항복한 사람들에 대해서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생명은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으므로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응답을 하셨다. 세상을 거절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의 마음에 큰 위로와 격려로 다가왔다.

주제가 있는 대화가 끝난 후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았던 디아코니아자매회의 이영숙 언님께서 조용히 찾아오셨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주시고,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끝까지 사랑으로 보내면 늘 그리워하고 고향처럼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과분하고 따듯한 위로의 말씀이었다. 마지막 예배에서는 왜 그렇게 눈물이 솟구치는지….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응어리져 있었던 초기 공동체의 시행착오와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다시 힘을 내어라” 반복되는 찬양과 말씀 그리고 강렬한 성찬의 감동이 내 영혼을 해갈시켜주었다.

이곳에 오니 전설 같은 우리나라 공동체의 스승들이 다정하게 격의 없이 맞아주셔서 정말 큰 호강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그분들 얼굴을 한 분, 한 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온다. “그래, 이런 분들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 역시 공동체로 살아야 돼”라고 새삼스럽게 다시 결심하게 된다.

유장춘 | 샬롬공동체교회는 포항 외곽지역에 위치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는 생활공동체입니다. 3년 전에 시작되어 이제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생태적이며 자연순환적인 농업을 꿈꾸며 양계장과 산양 농장 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네 가구와 비혼을 비롯하여 15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비전을 공유한 10여 가정이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섬기는 유장춘 교수는 현재 한동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또한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입니다. 영성과 사회복지가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되는 삶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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