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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힘으로 부딪쳐보는 세상
험한 산 함께 오르며 몸, 마음 힘 기르는 생동중 들살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거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 놓였을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상황에 휩쓸리다보면 ‘사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주체적 삶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 나아가 마음의 힘을 꾸준히 길러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오늘날처럼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이 많은 시대엔 더더욱 이런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

또한 마음은 몸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한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두 측면이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마음이 만들어지고, 좋은 마음은 몸을 더 생기있게 이끌어준다. 지난 6월 생동중학교에서는 ‘몸, 마음 힘 기르는 봄 들살이’라는 주제로 한 주간 생존기술도 배우고, 텐트 치고 산자락에서 자고 치악산도 오르며 보냈다.

생존기술 배우는 시간에는 불 피우고 밥하는 것부터, 자연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물을 얻는 법, 지도를 보고 산길을 찾아가는 법, 나무 오르고 임시대피소를 만드는 법, 부상을 당했을 때 응급조치 하는 법 등을 배웠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배움을 넘어


사실 살면서 이런 기술들을 사용하게 될 날이 있을까 싶은 것들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 중에서도 이런 기술을 어디다 써먹을 수 있는지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 어쩌면 어느 때보다도 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필요한 물건들뿐만 아니라 필요한 기술도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때에 이런 원시적(?) 기술을 익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들살이를 마치고 나서 나눈 한 학생의 소감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생존기술을 배울 때는 자기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문명사회에서는 모든 자원이 풍족하고 나대신 해주는 이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물도 구하고 움집도 짓고 나물도 캐고 불도 피워보고 나니 정말이지 옛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에 오르는 과제를 할 때에는 정해진 한계를 잘 넘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한 단계 높이는 느낌이 들었다.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땀이 났지만 막상 내려오면 이걸 해냈다는 사실 덕분에 힘든 것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 생동중 1학년 진



“들살이 하면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밥을 한다는 게 얼마나 노력이 들어가고 힘이 드는지 느끼고 엄마한테 고맙고 미안했다. 뒷정리를 하면서는 내가 잘 못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열심히 해서 미안했다. 치악산 오르며 다리가 부서질 것 같았는데, 나에게 끈기가 있다는 걸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를 생각하면 힘을 받을 것 같다.” - 생동중 1학년 연우

“배운 것과 즐거웠던 게 많았다. 나무 타기 할 때는 정말 많이 떨어졌다. 계속 떨어지니까 꼭 올라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포기 안하니까 성취감이 있었고 덕분에 상품으로 김치만두를 먹은 건 너무 좋았다. 같이 밥 만들어서 먹은 것도 순간순간 행복했다.” - 생동중 1학년 성유



어떤 것의 가치를 그것의 상품화 여부로 판단하기 좋아하는 요즈음에는 그것이 바로 쓰일 수 있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본다. 쓰임은 곧 ‘상품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말로 ‘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배움이란 어떻게 써먹느냐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생명과 세상을 어떻게 만나느냐와 관계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만나는 이의 중심, 마음을 바로 세워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 배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내 몸으로 세상을 만나는 법을 익히다


생존기술을 익히고 험한 산을 오르며 결국 배우게 되는 것은, 내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어떤 자세로 만나야 하는가이다. 자신의 한계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는지, 그 과정을 함께하는 이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며 힘을 모아갈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물론 마냥 진지하고 힘겹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울려 놀고 잔치하듯 배워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그런 날들이 쌓여 결국은 자기 앞의 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줄 것이다.


들살이 일정의 첫 이틀은 밝은누리움터에서 생존기술을 배우며 보냈다. 첫날에는 불 피우고, 나무 타고, 밧줄 매듭법 배우고, 움집 짓고, 물 구하고, 방위 찾는 법 등을 배웠다. 둘째 날에는 그렇게 배운 기술들을 특정 상황에서 실제로 적용해보는 과제 해결을 했다. 배운 매듭법 이용해서 안전밧줄을 만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점심 재료를 구해 온다. 그리고 산에서 잔가지 모아서 내려와 직접 불 피워 냄비에 밥을 했다. 모둠 사람 중에 한 명이 부상당했을 때를 가정해 응급조치를 해보고 산에 임시 대피할 수 있는 움집도 지었다. 그렇게 모둠별로 배운 것들을 가상의 상황에 적용해보고 조금 더 깊게 몸에 기억시키며 이틀을 보냈다.

험한 산 끝내 오르며 마음의 힘 길러

셋째 날에는 원주 치악산 아래 야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는데 빗속에서 모둠별로 텐트치고 저녁밥상 준비해서 각자가 만든 음식 서로 나누었다. 밤늦게까지 비가 오면서 텐트에 물이 들어오고 이불이 젖기도 했지만, 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늦게까지 이야기하고 놀며 잊지 못할 추억 만들었다.


넷째 날에는 치악산을 올랐다. 험하기로 유명한(?) 산이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했지만, 시작부터 만난 급한 경사는 정상에 오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학생들은 중간에 잠깐씩 쉬면서 금방금방 다시 힘을 내곤 했지만 함께한 선생님들은 애를 많이 먹었다. 그렇게 오른 정상에서 먹는 볶음밥 도시락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환상의 맛을 보여주었다.

험한 산을 끝내 올랐다는 성취감과 산 정상이 선물한 멋진 광경, 한줄기 시원한 바람, 내내 함께 산을 오르며 곁에서 격려해준 친구들…. 그 순간 그대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이 훗날 학생들의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했다.

생동중학교에서 보낸 이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다른 생명과 세상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줄 것이다. 건강하고 밝게 봄 들살이 보낸 그 힘으로 다시 일상 힘있게 살아간다.

박영호 │삼일학림에서 학생으로 공부하고, 교사로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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