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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리는 '삶이 있는 저녁'

‘저녁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권인데도 우리 시대에 그 마땅한 것이 드문 것이 되어 사람들이 대책을 이리저리 찾고 있다. 인수마을에서 직장 다니며 생활하는 이들이 이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은 2월 2일 열렸고, 명보, 호연, 명연, 신영 님이 함께했다. <편집자 주>



명보: 얼마 전 육아휴직 했다가 복직한 지 일주일 만에 공무원이 과로사한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데, 대선 주자들이 ‘저녁 있는 삶’을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것을 봤어요. 저는 그중에서 전체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세우자는 것에 동감이 됐고요.

명연: 소식을 듣고 속상했어요. 많은 직장인이 놓인 현실이니까요.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장된 것인데, 남녀 모두 의무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일하던 부서 팀장님이 기다리던 늦둥이를 낳으셨는데, 부서가 몇 달간 늦은 밤까지 야근했던 적이 있어요. 아이가 많이 보고 싶은 상황인데도 팀장님이 “야근은 공동체 의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며 놀랐습니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눈치 보면서 야근하는 상황인데도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행동 하게 하는 힘이 뭘까 곰곰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호연: 저도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직장인이 과로사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분은 안정된 공무원인데도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더 이슈가 된 것이지요. 몸 상태를 보면서 일이 너무 많으면 조정할 수 있는 조직 문화로 함께 바꿔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영: 일하는 엄마가 고단하게 사는 문제도 많이 이야기되었지요. 일하는 엄마에게 참 열악한 상황인데도 저는 임신, 출산, 육아에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는 비혼이지만, 마을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데 집중하며 생명 감수성을 키우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아요. 눈으로 보면서 배우니까 제가 가진 생각에 더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어요.

‘저녁 있는 삶’을 나타내는 물건을 하나씩 가져왔다. 명연 님의 나무수저, 호연 님의 장구채, 신영 님의 그림공책, 명보 님의 태평소.


호연: 직장 4년차 때 선배 일동이 강제퇴직 당하는 것을 봤어요. 이 회사는 오래 다니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지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쳤는데, 몸값을 올려서 이직하는 것은 싫었어요. 수입이 적어지더라도 ‘하기 싫은 것을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9급 공무원이 되었어요. 합격하고 아주 기뻤어요. 조금 있으니까 나이 어린 친구들이 7급, 5급으로 들어오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극복했습니다. 지난 2년간 육아휴직을 하면서 저녁이 아니라 낮까지 있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주어져도 뭘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쉬거나 등산하거나 책 읽으며 시간 보내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마을에서 함께 사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절로 채워진 것이 많았습니다. 공동육아, 장구 배우기, 혼인잔치 준비, 마을도서관 만들기를 했어요.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서 ‘삶이 있는 저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친구들이 꼭 있어야 합니다. 이제 복직하는데, 휴직 기간에 누렸던 것을 이어가려고 해요.

명연: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사실 기본 권리인데, 그렇게 돌아와서 어떤 삶을 살아야 참된 쉼을 누릴 수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예전에 혼자 살 때는, 몸은 회사를 떠나 집에 돌아와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어요. 머리로는 출세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하진 않았는데도, 제 삶이란 게 없이 몸에 안 좋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영화 한편 틀어놓고 보다가 지쳐 곯아떨어지는 일상이었지요. 주말이 끝나갈 땐 특히 괴로웠습니다. 쉬긴 쉬었는데 개운치 않은 몸과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인수마을에서 동생들과 함께 사는데, 살림하는 것도 전과 다르게 재미있고 산에 가기도 하고 마을 울력을 함께하기도 해요.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에 함께 저항하는 동지들이 있어서 제 삶을 돌보는 힘이 많이 생겼어요.

도토리공동육아어린이집 아이들과 북한산 해맞이바위에 오른 명보 님.


명보: 저는 업무 때문에 야근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내와 마을 친구들과 상의하며 고민하던 중, 작년 3월 자유롭게 출퇴근하는 실적제로 과감히 전환을 했습니다. 예전 제 성격이라면,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어떻게든 버텼을 거예요. 그러나 저한테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냈습니다. 실적제로 전환하면서는 출근은 9시에 맞추려고 했고, 하루는 오후에 일찍 퇴근해서 태평소를 배웠어요. 또 이왕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하루는 집에서 보내며 오전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산책 선생님을 하고, 오후에는 마을서원에서 이런저런 할 일도 하며 보냈지요.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요. 제가 설정한 목표를 맞추기 위해 필요하면 야근도 했습니다. 작년 9월까지 그렇게 보냈는데, 돌아보니 여러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철인삼종경기에도 나갔고, 태평소도 지금까지 꾸준히 배우고 있고, 마을초등학교 가을들살이에 자원교사로 갈 수 있었거든요. 10월부터는 회사 인원이 변동되어 충원되기까지 야근을 하게 됐지만, 새로운 사람이 자리 잡고 나서는 조정해볼 생각이에요.

인수 마을서원 여는 잔치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는 신영 님.


신영: 첫 직장인데 입사하기 전 야근이 많을까 봐 걱정했어요. 다행히 상사들이 야근을 강제하지 않아요.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도 있게 일했고 상사도 퇴근하라고 했는데, 머뭇거리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정시 퇴근해서 저녁을 잘 보내려 노력합니다. 작년에는 그림을 배웠어요. 주에 한 번 배워서 실력 쌓기란 무리이기도 했지만, 틈틈이 완성하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해요. 회사에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때가 많은데, 마을에서 제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종종 생겨요. 이번에도 혼인잔치 장소를 꾸미는 일을 맡았지요. 직장에 제 인생을 전부 걸고 싶진 않아요. 가능한 한 일찍 퇴근해서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마을밥상에서 도란도란 사는 얘기도 나누고, 공동생활방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과 희노애락을 나누며 삶의 기쁨을 찾아가고 싶어요.

인수 마을서원 여는 잔치에 함께한 명연 님.


명연: 직장생활 하면서 먹는 게 제 삶에 큰 영향 미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서 먹는 것을 훈련으로 삼은 적도 있었습니다. 또 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난 이들과 ‘꿈꾸는 일터’라는 자율 공부모임을 하고 있어요. 직장인이나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이 만나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확인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 기르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도시를 넘어서는 삶을 꿈꾸고 있어요. 도심에서 더 도심으로 회사가 이사한 지 두 달 됐어요. 새로 지은 건물이고, 꼭대기 층에서 지내며 땅에 발 디디고 사는 삶을 간절히 바라게 됐거든요. 살아 숨 쉬는 온 생명을 자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면 제 숨통도 많이 트일 거라 기대해요.

마을 어린이들과 홍천 마을에 다녀온 호연 님.


호연: 저는 아이가 셋 있어요. 아이들이 크다 보면 물어보거나 재미있어 하는 게 변해요. 한동안은 그것이 제 손바닥 안에 있는 주제이거나 이미 해본 것이었는데 점점 그것을 넘어서더라고요. 바둑, 뜨개질, 장구, 기타가 제 범위를 넘는 것이었지요.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장구를 배워 즐겁게 쳐서, 저도 배워서 함께 어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휴직 기간에 배우기 시작했지요. 장구는 치는 사람도 흥이 나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흥이 나게 도와줘요. 다른 사람의 흥을 돋운다는 게 제겐 어려웠어요. 그런데 장구는 그런 자리로 계속 가게 하는 악기예요. 2월에 열리는 혼인잔치에서 아이들과 함께 장구를 연주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신 때 공연도 했어요. 정말 기분 좋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직장에서도 후배가 많아지는데 재미있게 산다는 이야기 듣고 싶어요.

명보: 마을에 와서 풍물 연주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태평소를 떠올렸습니다. 태평소는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는 같이할 때 흥을 돋워줘요. 조만간 함께 연주하고 싶어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후배들에게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고민하며 살라고 조언해준 적이 몇 번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돈의 힘에 압도되어 그것만을 따라 살게 된다고요. 한 번뿐인 인생, 힘찬 태평소 가락처럼 신명나게 살고 싶습니다.

좌담 정리 | 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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