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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문화 앞에서 겉도는 느낌을 넘어


나는 공무원이다. 공무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략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다. 나도 처음부터 공무원은 아니었다. 경쟁사회에서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껴서 그랬는지, 그 즈음 뉴스에 오르던 ‘다운쉬프트'라는 단어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무튼 난 4년간 잘 다니던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고 평범한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세무서는 국민들이 세금을 잘 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세법에 맞게 잘 신고하고 납부하는지 점검하는 곳이다. 내 공식적인 명칭은 국세조사관이지만, 아직 조사는 해보지 못했고 그 비슷한 일들은 하고 있다. 작년에는 개인사업자들을 담당했고 올해는 법인사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일을 8년째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셈이지만, 해마다 담당하는 업무와 세금 종류가 다르다보니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다.

회사에서는 주로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곳에 연락해서 세금을 내도록 하거나 직접 찾아오는 고객들을 상담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상담하러 오는 고객들은 가족에게도 숨기는 재산상황을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은밀한 경제적 정보를 복잡한 가정사와 적당히 버무려서 내어놓는 이유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내기 위해서이다. 업무로 출장도 자주 다니는데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회사에서 나의 관심은 '친절'이다. 정말 친절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우리도 친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친절공무원 상도 준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친절은 괜한 일이나 겉치레가 되기 쉽다. 그래서 친절은 갑자기 문제가 되어 찾아온다. 그리고는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을 한방에 결정해버리곤 한다. 그동안 진행되던 업무의 전후관계나 규정은 뒤로 밀려나버리고 친절했냐 아니냐만 남는다. 더군다나 세금을 받으면서 친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압류를 해도 친절하게 해야 한다. 말하면서 눈을 보지 않았다고,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등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불친절거리는 늘 넘친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친절, 피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친절하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저마다 주어지지만 사실 업무에서 차이는 별로 없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그 사람의 일과 삶에 대한 태도는 친절이라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절한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잘하려고 하니 얼굴에 미소만 짓는다고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찾아오는 분들의 선입견도 많았고 나부터 지치기도 했다. 어떤 분은 한참동안 성질내고 소리 지르다가 결과적으로 세금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니까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고 가셨다. 또 마음을 가다듬고 성심껏 설명하다보면 고객님은 어느새 모든 걸 다 해결해달라는 식으로 달라붙고 있었다.

친절은 자세도 겸손해야 하지만 내 일에 대한 자긍심과 그에 걸맞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했다. 이제는 고객의 말은 일단 끝까지 듣고 이야기한 내용은 메모했다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전화도 내 일이 아니라고 바로 돌리지 않는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깨끗이 인정한다. 대화를 할 때도 쉽고 공손하게 바꿔야 할 표현들에 신경 쓴다. 친절은 나에게 겉모양이 아닌 총체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나는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회사는 2년마다 근무처를 옮긴다. 아마도 고객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짐작은 하고 있다. 인사이동은 직원마다 그 시기가 다르다보니 매년 직원의 절반이 바뀐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좋은 사람과는 금방 헤어지니 아쉽지만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일이년만 참으면 된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매년 인사이동 시절이 되면 저마다 원하는 곳에서 업무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또 자기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고 결정한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평들이 내 귀에도 잠시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떻게 회사생활을 했고 앞으로 해갈지, 또 회사는 어떤 사람을 원하고 있는지 상기하고 확인하게 된다.

해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지는 주된 감정은 외로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문화나 기운이 여전히 낯설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적응하는 데 성격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양심상 께름칙한 부분도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러나' 당황했지만 이제 놀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흐름에 몸을 담그고 호흡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형성된 기운은 더욱 견고한 힘과 논리로 재무장하면서 우리 앞에 다시 선다.

나는 '고독'한 세리

화이트헤드라는 학자는 <진화하는 종교>라는 책에서 종교란 고독이고, 또 고독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화창한 주말 오전에 대학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강의실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강의실이 고독하게 느껴졌다. 그때 고독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솟아올랐고, 외로움은 고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언가 찜찜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으로 지내왔다면 이제는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세리이다. 내가 보기에 세리는 속물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불렀을 때 곧장 따라나섰던 세리는 고독한 속물이었다. 고독한 사람이 고독한 사람을 알아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가 고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따라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와 직업이 같아서 그런지 나는 그게 참 와 닿는다. 자기에게 공기와도 같던 문화를 낯설게 보게 되면 그 사람은 고독해진다. 객관적인 관점이나 용어로 자기를 설명하려고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내 신앙을 종교라는 단어로 접근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회사에서 하는 일과 일어나는 상황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주위와 단절되는 듯한 약간의 충격이 가시고 나니 맑고 분명한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돈의 흐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을 추적하고 이익과 손해를 치열하게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되기 쉽다. 다르다는 건 의외로 아주 조그만 것에서 드러난다. 처음에는 나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 사람들의 절세를 상담하면서 기부금도 전혀 없이 악착같이 아끼려만 드는 그들의 태도가 못내 싫었지만, 이제 마음을 지키면서 내 일로 성심껏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연봉이나 세금계산서의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연약하고 외로운 한 사람을 만나려고 애쓴다.

언젠가부터 동료들이 차츰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왜 초과근무를 달지 않는지, 왜 부탁을 하거나 받지 않는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무사 준비를 왜 하지 않는지 걱정하며 묻는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아둔다. 궁금한 게 많은가보다. 한 때는 회사에서 궁금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결국 나는 세리이다. 속물이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요즘은 고독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호연 |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한 마을생활 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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