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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을 지키는 이유

첫 제자인 강이(가명)는 매년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올 봄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밥 먹었어요?" "응, 강이도 잘 지내니? 어디야?" "집에서 TV 보고 있어요." "요즘 뭐하니?" "그냥 집에 있어요." 졸업 후 복지관에 다닌다고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다니지 않나 봅니다. 장애인복지관은 보통 4년 다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강이는 지적장애가 있는 28세 청년입니다. 졸업 후 무료한 생활을 하는 강이가 제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저를 아주 무서워했는데, 다른 담임들에게 전화를 하다 모두 번호가 바뀌어 통화가 안 되니 저에게까지 전화를 한 것입니다. 긴 대화는 어렵지만 짧은 질문과 대답에서 강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이 어머니와도 통화가 되어 아픈 마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송미영 선생님, 추석 잘 보내세요." 올 추석에도 산이(가명)는 저에게 어김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개천절, 한글날에도 저에게 문자가 올 것입니다. 국경일, 기념일 그리고 서울 버스·지하철 노선이 바뀌었거나, 차량에 변화가 있으면 어김없이 변화된 상황을 문자로 알려줍니다. 산이는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24세 청년입니다. 문자 내용을 보고 엉뚱한 내용이면 굳이 답장을 하지 않고 때에 맞는 내용이면 답장을 보냅니다. 가끔 받는 답장이 즐거운지, 7년째 문자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산이는 졸업 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보호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작업장 일도 강이처럼 계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강이는 첫 학교인 특수학교에서, 산이는 두 번째 학교인 중학교 특수학급에서 담임을 했던 제자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가르침은 어디로

저는 15년차 중등 특수교사입니다. 가르치는 학생들은 지적장애, 정서장애, 발달장애, 언어장애, 지체장애, 학습장애, 틱장애 등 다양한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학생만 있는 특수학교에 근무하기도 하고, 일반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근무하기도 합니다. 특수교육의 큰 목표는 사회생활 적응과 독립입니다. 장애학생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물건 사기, 버스 타기 등)과 지식(시계 보기, 화폐 계산 등)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장애로 인해 생긴 행동과 지식 부족은,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독립된 주체로 서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 기능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10년 동안 장애학생에게는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동시에 사회도 장애를 이해하고 장애인을 생명으로 존중하며 살아갈 환경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장애 학생들에게도 장애의식 개선 교육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사회는 장애를 경계 짓고 소외시킵니다.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이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생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강이와 산이는 10년에서 3년씩 저와 함께했던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학생 때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으로 구분되어 공부한 것처럼 청년이 된 지금도 장애인복지관에서 구분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수교육과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인생을 걸고 달려온 저는 막막하고 억울했습니다. 정해진 구조와 소진된 개인이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계를 경험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사고와 관념을 벗고 내 삶을 설명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기만하지 않는 삶, 분별하고 철학하는 방법, 식·의·주와 살림, 살리는 관계와 서로를 지키는 공동체, 생명과 평화를 향하는 삶, 농(農)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2009년 3월 공부의 시작과 함께 세 번째 학교로 옮겼습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교육현장으로

그동안에는 관계가 없이 늘 혼자서 고군분투했습니다. 옮긴 학교에서 관계를 만들어갔습니다. 첫 해는 학생과 나의 관계를 성찰하고 새롭게 맺어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고유한 생명의 기운을 잘 구별하고 생명과 생명으로 평화롭게 관계 맺으려 했습니다. 경력이 쌓이니 교생지도 교사가 되었습니다. 동지가 될 교생 선생님 또한 정성껏 만났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저의 모습을 보고 특수교사가 어떤 것인지 알았고 공부할 이유를 찾았다며 그해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 이후 힘들 때면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두 번째 해부터 부장교사를 하면서 학교 전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공격성이 심한 힘든 학생이 있다고 기피하는 반을 자원해서 담임을 했습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교원평가를 전면시행했습니다. 수업공개를 하고 학부모, 동료교원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칫 경쟁적으로 성과위주의 수업, 학생지도를 할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동학년 선생님들을 모아 협의를 했습니다. 평가로 위축되지 말고 서로 수업을 지켜봐주는 관계가 되자고 제안을 했고, 연구공동체로 1년간 동학년 선생님들과 만났습니다. 장애학생만 있는 특수학교는 특수성으로 인해 비민주적이고 억압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획일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교원평가와 차등성과급으로 인해 교사들은 더 위축되었습니다. 평가와 성과급 자문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교육 현장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정을 만들어갔습니다. 2년간 소통한 관계가 힘이 되었습니다.

관리자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시는 교감, 교장선생님을 존중해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 저의 현장을 새롭게 보게 된 공부 덕분이었습니다. 1년 반 동안 함께 근무한 교장선생님은 늘 부장회의에서 저와 의견대립을 보이고 회의시간에 충돌했지만, 막상 떠나실 때는 저를 격려해주셨고 올 초 제가 강릉으로 발령이 났을 때에도 선생임을 잊지 말라 하셨습니다.

번호를 바꾸지 않고 기다립니다

특수학교에서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을 잘 만나면서 장애를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떠나온 학교 분위기가 많이 좋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러나 다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위축되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한 공격행동이 있는 제자가 작년까지는 좋았는데, 더 나빠져 아주 힘들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희망과 절망을 함께 경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체념하거나 억울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후배 선생님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선생님처럼 할 수 있는지요? 책을 추천해주세요." 웃으면서 공부의 내용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말해주었습니다. 공부한 대로 최선을 다했고 맺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올 3월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왔습니다. 학교현장 뿐 아니라 함께 가는 공동체와 만들어갈 마을에서 장애를 새롭게 해석하고 살아갈 삶의 양식을 공부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15년간 맺었던 관계에서 저의 모습을 기억하는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들이 가끔 전화가 옵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송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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