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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육아 그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현실,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간 나들이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오다, 내년 1월 태어날 아기와 함께 육아휴직을 보냅니다. 아기가 무척 기다려지고, 육아로 새롭게 만들어갈 일상의 배치가 기대됩니다.

개별 가정 단위를 넘어서자


그동안 함께 일했던 직장 선배·동료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특히 결혼·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친 대부분 여성 직장인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어요. 나름 이름을 붙여봤는데 첫 번째는, ‘직장 몰두형’, 두 번째는 ‘직장 포기형’입니다.

‘직장 몰두형’은 직장에 투신하여 독신으로 살아가거나 혹은 가정을 꾸리더라도 부모 또는 보모에게 집안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맡깁니다. ‘직장 포기형’은 회사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장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사회적 역할을 맡깁니다. 두 유형에 해당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살림과 직장생활의 팽팽한 양쪽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아쉬움의 토로를 종종 들었습니다.

두 유형은 언뜻 보면 상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일과 살림·육아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활의 큰 틀에서 일과 살림·육아는 나누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일과 살림·육아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삼지 않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토대로 때에 맞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가정 단위로 일과 살림·육아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때에는 두 유형 사이에서 택일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함께 아이를 키우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든든한 관계망이 있다면 새로운 꿈을 꾸고, 대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흔히 직장에서 지내는 일상이라면, 성과를 위해 화장실 갈 시간도 잊은 채 일에 열중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우선가치로 여길 때 기존에 주목되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조명됩니다. 한 예로 점심시간은 하루 일상에서 일에 쏠려 있는 마음을 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빌딩 숲을 벗어난 잠깐의 산책, 정성스럽게 싸온 도시락, 동료들과 삶의 고민을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일에 파묻힌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줍니다.

일터의 고민 풀어갈 관계로

어느 겨울 마을 친구들과 북한산에 올라.


저는 다양한 직업의 청년들, 그리고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모임인 ‘꿈꾸는 일터’에서 격주에 한 번씩 저녁밥상을 마주하며 각자가 처한 현장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경제·역사·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공부합니다. 이뿐 아니라 해외여행, 회식을 대체하는 모꼬지나 산행, 직장탐방 등 대안적 놀이문화를 만듭니다. 당장 일터에서 써먹을 수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장을 넘어 큰 틀에서 자기를 객관화하고 성과와 승진의 압박에서 잊었던 가치를 떠올리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만남인 것이죠. 일터의 승부에서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점심시간, 또래 청년들의 모임 등은 오히려 일터 안팎을 가로질러 생명력 넘치게 일상을 배치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힘을 키우는 모판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북한산 아랫자락 인수마을에서는 여러 가정들과 이모, 삼촌,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명의 가치를 배우고 몸에 들입니다. 일과 살림·육아를 포함한 다양한 삶의 영역의 지혜를 모으고, 깨달은 바 각자의 몫을 책임 있게 하면서 대안문화를 만들어갑니다.

저희 가정 역시 일과 살림·육아의 조화를 고민해왔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이후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고려하여 바빴던 기존 영업직에서의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때에 필요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삼았습니다. 임금이나 복지처우, 고용안정성과 같은 조건이 아니라,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시간의 활용성에 우선순위를 두었죠.

이직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지금 제가 1년 육아휴직을, 복직을 염두에 둔 이후 1년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계획입니다. 첫 출산을 앞두고 남들 다 사는 것에 마음 쓰지 않고, 마을의 선배들로부터 아낌없이 물려받았습니다. 돈이나 친정어머니에게 산후조리를 맡기는 문화에서 부부가 주체가 되어 남편과 함께 산후조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 한 가정을 넘어 서로의 삶을 살피는 마을의 관계 속에서 배운바 힘입어 가능한 선택입니다. 뜻과 생활을 나누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체념 어린 현실에서 우리의 희망은 커져갑니다.

심지연 | 살림과 일터를 가로지르는 씩씩한 예비 엄마이자 10년차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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