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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림의 가치를 몸으로 살아내기
비로소 조금 알 듯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물여섯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돈을 좇아 회사를 옮겨 다녔는데, 그 바람에 생활은 규율이 없었습니다. 첫 직장은 직원이 열 명 정도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회사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실적을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몇 번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나중에는 나이가 들고 실적을 못 내면 나가겠구나'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와 중장비기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굴삭기, 레미콘, 지게차 운전을 4년 했는데, 비가 오면 쉬고 날씨가 좋으면 주말도 없이 일을 해서 생활에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른한 살에 한살림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은 생명 살림이라는 가치를 토대로 농촌과 도시가 공생하는 관계를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곳이었습니다. 전 취지를 이해해서라기보다는 출퇴근시간이 정확하고, 휴무도 많아 이 직장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지금은 한살림 10년차입니다. 어느덧 한살림운동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살림운동을 지지하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중 2~3회 정도 진행하는 생산지 방문은 농촌현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결혼하여 인수동에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었는데, 토요일마다 축구도 하고, 아이가 다니는 마을어린이집에서 인사하며 차츰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소개로 공부를 시작하고 일상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일상에 조금씩 질문을 품게 된 것입니다. '직장에서 나는 왜 맹목적으로 위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한살림 본부에서 더 높은 직급에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내 욕망-명예욕, 물질욕 때문이었습니다. 본부에서 매장개설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일은 한살림운동의 본래 방향과는 다르게 매장을 많이 개설하는 것, 신규사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추진력과 성과가 매우 중요했으며, 저란 사람의 기질 또한 그 방향으로 조금씩 강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본부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함께 지내는 선·후배들 또한 출세나 구조조정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아온 터라 삶의 다른 방향을 선택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급팀에 발령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올 4월 한살림 북동지역 공급팀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발령이 났는데 아내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며 핀잔을 준 기억이 납니다. 주변에 동료들이 위로해주는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발령에 총 열 다섯 명이 이동했는데 그 중 저와 같이 공급팀장으로 발령을 받은 동료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본부로 가면 인정받는 것이고 지역으로 가면 좌천되었다고 여기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북동 공급팀에서 일한지 이제 두 달이 되었습니다. 어렵지 않을 것 같던 공급팀장 일은 업무가 너무 많아 보통 7시가 되어야 퇴근합니다. 공급팀은 저를 포함해서 한살림 소속 실무자 세 명과 강북자활 소속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실무자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공급받을 조합원들에게 몇 시쯤 도착할 것 같다고 연락하고, 부재 중 어디에 물품을 맡겨달라는 등 특별한 부탁사항이 있는지 검토합니다. 그리고 다 같이 체조를 합니다. 체조를 마치고나면 각자 공급해야 하는 물품을 차에 싣습니다. 차량별로 각자의 경험에 맞게 물품을 정돈하는데, 공급차 가득 물품이 실리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가호호 공급을 하는데 마지막 조합원 댁까지 공급을 마쳤는데 차에 물품이 하나라도 남으면 다시 전 집부터 물품공급을 추적해가야 합니다. 누락한 집을 찾아내어 다시 갖다줍니다. 하지만 마지막 집이 끝났는데 공급차 안이 텅 비어 있으며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공급팀장이 되고 첫 공급 날 한 조합원 댁에 물품을 빠뜨려서 세 번이나 찾아간 일이 기억납니다.

여름철에는 과일도 많고 매실 공급도 있어 공급량이 많습니다. 공급은 전적으로 몸을 많이 사용하는 일이라 다들 날카로워지기 쉽기에, 서로 잘 챙겨주고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모르게 무심코 바빠지고 열심히 일하게 될 때는 '내가 왜 본부를 떠나 지역에 공급 일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하려 합니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와 일상에서 하는 농생활로 한살림운동을 하려 합니다. 작은 시작으로 공급센터 한쪽 구석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상추, 아욱, 방울토마토, 감자를 심었고, 며칠 전 상추와 아욱을 따다가 먹었는데 사서 먹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심고 수확해 먹어봤습니다. 조만간 방울토마토와 고추도 수확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박준석 | 한살림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마을공동체로 살아가며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계속 자라는 마흔 한 살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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