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선언 외치며 '백성의 나라' 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우리 역사 바로 알기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한 33인 민족지도자는 재판장에서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우려 한다’고 했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황제권이 소멸된 자리에, 백성의 나라(민국)가 뿌리내려 ‘대한민국’ 연호가 된 것이다.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기 어렵다. 평생 청년들에게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일깨워온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와 건국절 논란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정리해주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3월 21일 청년아카데미에서 이만열 교수가 강연한 내용을 요약발췌하여 싣는다. - [편집자 주]
교과서 발행체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정제입니다. 역사 해석을 국가가 재단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통하는 겁니다. 지금 국정제는 북한과 일부 몇 나라(중국은 해제되었습니다)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검·인정제입니다. 정부가 먼저 이야기하면 그에 맞추어서 여러 학자가 씁니다. 기준에 합격하면 정부가 심의합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역사란,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다, 알아서 써라, 교과서라는 이름도 필요 없다고 해서, 각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하는 것이 세 번째, 자유발행제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부터 6·25 때도 검정제를 했습니다. 유신 때 1974년부터 국정제를 시행합니다.
정부가 심의하는 교과서 검·인정제
그런데 역사학계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해서, 2003년부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새롭게 나옵니다. 선택과목이고 검·인정제였습니다. 2012년부터 국사교과서와 근현대사교과서가 합쳐져서 국정을 검·인정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원하는 교과서를 하나쯤 만들어야겠다 해서 교학사교과서가 만들어집니다.
뉴라이트 계통,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쪽입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근대화를 시켜주어 대한민국이 발전되었다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현재 일본에 대해서도 호의적입니다. 이 교과서가 고대·중세 부분에도 오류가 많았습니다. 학계에서 그런 비판을 받고 시장에 내놓으니, 한 학교만 채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국정화를 만들어겠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이라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학사관’은 일본에서 처음 나온 말입니다. 1993년 고노 담화가 있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2년 후 사회당인 무라야마 수상이 한국에 대해 가장 진솔한 반성을 했습니다. 지금 정권을 쥔 자민당이 해방 이후 주욱 정권을 잡았다가 그때 사회당에게 뺏겼거든요. 고노, 무라야마 담화 뒤에 교과서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한국, 만주 침략이 잘못되었다, 위안부는 강제동원이라는 것을 인정하니까, 자민당 내에서 부글부글해서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쓰니까 자학사관이라고 한 겁니다.
역사는 긍정적인 것, 반성적인 것 다 얘기해야 합니다. 역사교과서 검정제가 문제가 있다면 국정화로 갈 게 아니라 검인정 자체를 보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국정화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교과서 발행 추세와 맞지 않습니다. 교과서 특히 역사를 국정화 할 때 사상 통제가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을 다 둠으로써 포용적 역사이론이 나올 수 있는데, 국정화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2015년에 일본과 합의한 것 때문에 빠져버렸습니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위안부 이야기가 빠져버렸습니다.
긍정과 반성 다 포용하는 역사
국정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려면 지침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지침이 발표되지 않았고, 근현대사 부분을 쓰겠다고 수락한 학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부에서 발표했습니다. 종전에는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이라고 했는데, 국정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1948년 9월 9일에 북한에서 인민공화국을 건국했는데, 우리는 정부 수립으로 되어 있으니, 격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시작이 언제냐를 오해한 데서 나온 겁니다.
1948년 5월 10일에 제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고 5월 30일 국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의장으로 이승만이 당선됩니다. 이승만 의장은 연설과 헌법 초안소위원회를 통해, 대한민국은 1948년이 아니라, 1919년 3·1운동을 통해 건국되었고 그때는 임시정부 형태였다가 지금은 정식정부를 세우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이루어졌고 한반도를 일제가 강점하고 있으니까 임시정부가 크게 세 군데 있었습니다.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서울(한성정부)입니다. 상해임시정부 내무장관 안창호 선생이 앞장서서 세 곳을 합칩니다. 통합임시정부는 1919년 9월 11일에 탄생합니다. 해방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을 했습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서도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연호를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대한민국’입니다.
1919년 건국, 헌법전문에 명시돼
‘대한’은 고유명사 같은 것이고, ‘민국’은 제국이 아니라 백성의 나라입니다. 3·1운동 주도했던 33인이 재판받을 때, 재판장이 ‘독립을 선언했으니 어떤 나라를 세우려 하냐?’고 묻자, 이승훈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우려 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 1년이 1919년입니다.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에요. 정부문서에도 대한민국 30년 몇 월 몇 일이라고 이승만이 사인하고, 정부 수립했던 사람들은 다 합의한 것입니다.
제헌헌법 후 네 번 개헌이 되는 동안에도 헌법전문에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세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5·16쿠데타 이후 1963년 개헌한 헌법은 전문이 달라졌습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세웠다는 내용이 빠지고,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되었지요. 87년 6월 민중의 힘이 솟구쳐서 신군부도 청산한다며 만든 것이 지금이 헌법입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혁명의 정신”, 이렇게 부활시켰습니다. 새 국정교과서를 통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건국 60주년 기념식을 하겠다 발표를 했습니다. 대통령 취임하는 해에 60주년 되고 솔깃하거든요. 광복회를 비롯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광복 63주년이다, 우리가 정부로부터 받은 모든 훈장을 반납하겠다, 훈장을 준 대한민국은 191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오.’ 그러자 얼버무린 게 ‘광복 63주년 및 건국 60주년’ 이렇게 했습니다. 이후에는 그런 말 하지 않다가 지난해 광복절 행사를 하고 기념사를 하는데, ‘광복 70주년 및 건국 67주년’이라고 했습니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겠다는 겁니다.
친일행적, 반공으로 가려져선 안 돼
2008년 8월 15일을 건국 60주년이라고 하면서, 2008년 당시에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3년 사이에 대한민국 건국에 공헌한 사람들을 예우하자는 겁니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어요. 일제시대에 친일했던 사람들이 해방 뒤에 친일행적이 드러나게 되니까, 친일행적을 가릴 요량으로 반공투사로 행세를 많이 했습니다.
1945년 이전에는 친일하고, 1945년 이후에는 반공투사가 된 사람들이 건국공로자로 둔갑할 우려가 있습니다. 파출소에 총 쏘고 시골 다니며 행패 부리던 서북청년단, 그 후신이 지금 재건되고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한다면 국가적 표창을 받게 될 단체입니다.
건국유공자 예우는 법안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국회 전문위원들이 반려시켜서 2012년에 자동 폐기됐습니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에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못 박으면, 그 법이 살아납니다. 역사전쟁이 벌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이것만이 올바르다, 역사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료가 발굴되면 사실 자체가 수정 가능성이 있거든요. 해방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했어야 할 일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2008년에 국사편찬위원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60권을 쓴 게 있어요. 저자가 60명 이상 됩니다.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알겠다 하면 그걸 보면 됩니다.
정리 김준표 | 마을신문에 글을 쓰고 꼴을 잡는 일을 합니다.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며 마을의 벗들과 재미나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