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 이후, 함께라면 문제없어
88만 원 세대 청춘들에게 희망을 증언하다
"졸업 이후 홀로가 아니라 동지들을 만나 같이 사회에 진출하세요. 직장이나 주거문제를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함께 풀어갈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졸업장·스펙·영어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지 관계입니다."
청년아카데미 공개강좌에서 한 대학생의 질문에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최철호 원장이 응답한 얘기다. 학생은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나갈 것을 생각하니, ‘직장을 다니면 잘 버틸 수 있을까’, ‘자본의 힘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이 앞선단다. 전공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아리 활동도 꾸준히 해왔지만, 졸업 이후는 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학생은 현장에서 대안을 일구는 이들에게 희망을 찾고 싶었다.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강좌는 3월 24일 서울 성균관대 학생회관에서 열렸다. 22일에는 고려대에서 장회익 전 서울대 교수의 ‘현대 과학이 던지는 세계관 전환’과 이정우 경북대 교수의 ‘청년의 신음 위에 선 한국경제, 생명을 살리는 경제 희망’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23일 한양대에서는 ‘증언: 강도 만난 이웃들’이라는 주제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인 박은희 씨, 정태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생존자복지위원장, 조금득 무중력지대 센터장의 강의가 있었다. 3월 24일에는 ‘대화: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박종운 변호사, 김종희 <뉴스앤조이> 대표, 최철호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원장(한국공동체교회협의회 공동대표)의 대담이 진행됐다.
최철호 원장은, 대학생 시절 배우고 꿈꾸는 대로 일관되게 살려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일관된 삶은 옆에서 서로 지켜주는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현재 최 원장은 서울 인수와 강원 홍천에서 마을공동체를 함께 일구며 공동체로 살고자 하는 청년들을 교육하고 돕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청년들은 '88만 원 세대'를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힘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저항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편, 적게 벌어도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저항하다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후자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청년들이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면하는 자본의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 소위 갖춰야 하는 혼수에 허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로 살면 결혼하면서 양문형 냉장고나 김치냉장고를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용량이더라도 일반 냉장고 하나면 충분합니다. 마을밥상을 이용하면 부엌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듭니다. 책들도 개별 집에 쌓아두지 않고, 한데 모아 마을도서관을 만들어요. 자본의 힘에 불안해하지 않고 살려면 마을을 회복해야 합니다." (최철호 원장)
박종운 변호사는 1990년대 중반 사법고시생 시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를 꿈꿨다. 다른 변호사보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법무법인 소명에서 일하면서 기독법률가회 활동가로 뛰어다녔다. 박 변호사는 2000년대 중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지금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세월호 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 대책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함께할 동지를 찾아다녔습니다. 한 시민단체 법률가모임에 함께하게 되었고, 이게 발판이 되어 기독법률가회를 꾸리게 됐습니다. 변호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는데, 동지들이 있어 그 뜻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법조인 후배들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강남 아파트에 살고,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들을 볼 때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고, 흔들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해서 얘기합니다. '강북에 살고, 자녀 사교육 하지 말아라.' 떳떳하게 뜻한 바대로 활동하려면 새로운 모델로 사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박종운 변호사)
김종희 대표는 교권이나 금권에 흔들리지 않는 언론인이 되고자 했다. 교단이나 대형교회의 큰손에 휘둘리지 말고 정직하게 글을 쓰자는 일념으로 2000년 인터넷 언론 <뉴스앤조이>를 시작했다. 진실을 보도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어느새 교회 개혁의 길로 들어섰다. 목회자 세습과 권력화, 교회의 불투명한 재정 운용 등을 고발하며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렸다. 지금은 목회멘토링사역원 활동을 병행하며 목회자·신학생들을 훈련하는 등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희망을 일구는 이들의 증언을 들은 청년들은 이제 자신이 가진 고민을 일상에서 풀어가는 과제가 남았다. 대담자들은 동지들과 함께 꿈을 현실로 이뤄왔다. 강좌에 함께한 이들도 동지를 찾아 나서서 체념하지 않고 희망을 일구는 길로 힘차게 나아가리라 기대한다.
임안섭 | 서울 인수마을과 강원 홍천마을을 오가며 마을신문을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청년아카데미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더불어 잘 사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