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세제민 구현하려 불평등문제 파고들다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 삼일학림 공개특강

삼일학림(고등·대학 통합과정 대안학교) 주최로 4월 23일 홍천 밝은누리움터에서 이정우 교수(경북대, 경제학) 초청 공개 강연이 열렸다. 이정우 교수는 평생 불평등문제를 연구하고, 분배와 성장을 동반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경제학자다. ‘분배와 복지는 결국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투자이다’와 같은 그의 학문적 신념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활동했고, 다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돌아가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삼일학림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은, 오전과 오후 강연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오전에는 이정우 교수가 살아온 인생에서 학문과 실천여정을 들려줬고, 오후에는 ‘약자를 위한 경제학’이란 관점에서 현대사 속에서 세계 경제체제를 비교하여 강의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덴마크 등 북유럽 같은 복지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이미 경제위기나 노인대국과 같은 난관에 봉착한 미국과 일본을 혼재해서 뒤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 현 상태를 객관화하여 점검해볼 수 있었다. 강연을 요약 발췌해서 싣는다<편집자 주>.



저는 원래 법관이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반사회 선생님이 ‘경세제민’이라고 칠판에 적는 거예요. ‘경세’는 세상을 다스린다,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줄여서 ‘경제’라 한다 해요. 그래서 경제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 ‘경세제민’과 거리가 멀어요. 3년 동안 방황하다가, 경제학 고전인 아담 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 케인즈, 마셜을 원서로 읽었습니다. 눈이 뜨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하고 싶다고 솟아오르는 에너지가 있으면 그건 아무도 못 말리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별로 방황하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1977년부터 경북대 교수로 세 학기 가르치다가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 가서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은 많이들 하니까 남들 안 하는 걸 하자 해서 불평등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1978년에 갔다가 1983년에 돌아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불평등 문제가 중요해져요. 외환위기 이후에는 특히.

저는 대학시절, 데모는 열심히 했는데 주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면 일간신문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요. 이승만, 박정희 사진을 다 가위로 오리신 거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독재권력을 싫어하셨습니다. ‘가위질’ 가르침을 받아서 저도 독재권력을 싫어했는데, 데모 주동은 안 섰습니다. 데모를 따라다니기만 해서 제적도 안 당하고 지금까지 평탄하게 살아남은 자입니다. 민주화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엄청나게 빚을 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제가 이 빚을 갚는 방법은, 약자들이 인간 대접 받고 업신여김 받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실패한 통제경제, 시장자유

이제 세계 비교 정치경제 모델을 보겠습니다. 분배를 강조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모델로 사회주의가 있었습니다. 보통 스탈린 모델이라 합니다. 한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이 체제에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성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 체제에서 고성장은 오래 가지 않고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결국 망하게 됩니다. 독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관치경제 모델입니다. 성장을 중시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모델입니다. 이건 우익독재,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1930년대 일본, 독일, 이태리 세 나라에서 추진했습니다. 통제경제도 고성장합니다. 대공황이 왔을 때 독일, 이태리, 일본은 공황에서 빨리 벗어납니다. 그러나 결국은 오래 못 갑니다. 독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통제경제 실험을 했습니다. 그때 박정희는 일본 육군소위로 만주국 관동군이 되었습니다. 관동군 사령관 도조 히데키는, 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대동아전쟁을 일으켜서 2차대전 후 A급전범으로 사형집행 된 사람입니다. 도조 히데키와 더불어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 경제정책을 총괄했는데, 전범재판 받고 풀려나서 일본 자민당을 창당했습니다. 만주국은 14년 정도 지속됐는데, 당시 통제경제로 고속성장하는 걸 박정희가 젊은 시절 목격했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서는, 만주국을 경제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통제경제식 고성장은 오래 못 갑니다. 지금 일본은 저성장 늪에 빠져 있습니다.

민주주의하면서 경제성장하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시장경제, 영미형 모델입니다. 신자유주의라고 흔히 부르는데 저는 시장만능주의라고 부릅니다. 통제경제와 정반대이지요. 정부 규모가 작습니다. 인구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얼마를 가져가느냐 하면, 1917년에는 40퍼센트에서 시작했는데 50퍼센트까지 올라간 해가 1929년입니다. 대공황이 일어난 해입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져서입니다. 부자는 돈 쓸 데가 없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 삽니다.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노조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 10%의 소득 몫이 50퍼센트에서 33퍼센트까지 내려갑니다. 분배가 잘 되니까 경제가 잘 돌아가고, 이때가 미국 역사상 경제성장률도 제일 높았습니다. 1980년부터는 부자들이 많이 가져갑니다. 사회 지출 수준이 낮고, 본인 부담이 높고, 선별주의로 인해 소외집단이 많은 양극화가 고착되었습니다.



분배 잘 되면 행복지수 높아져

영미형 외에 유럽대륙형, 북구사민주의가 있습니다. 덴마크, 스웨덴은 국민소득의 50퍼센트를 세금으로 거둡니다. 분배, 재분배가 잘됩니다. 한국의 세금 비중은 20퍼센트입니다. OECD 중 최하위입니다. 미국은 30, 프랑스, 독일은 40, 스웨덴, 덴마크는 50을 냅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가 덴마크입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도 10위 안에 듭니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8~10퍼센트 사이입니다. OECD 평균이 20퍼센트이고 북유럽은 그보다 높지요.

지금 한국경제는 ‘복지 기피 국가’ 미국의 시장만능주의와 ‘토건 국가’ 일본의 관치경제가 혼재된 분열적 체제입니다. 한국경제는 국가 독재와 시장 독재를 청산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82조 원을 부자감세 했는데, 지금 정부에서 부자감세는 더 안 하지만 규제 완화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규제 중에 필요한 규제가 많습니다. 세월호도 규제 완화가 비극의 출발입니다. 여객선은 20년 이상 되면 운행 못 한다는 규제가 있었는데 정부에서 2009년에 선령 규제를 풉니다. 30년으로 올렸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 18년 묵은 배였던 세월호를 12년은 더 운행할 수 있겠구나 해서 수입된 거지요. 배의 증축을 규제해야 되는데 손님을 많이 실으려고 객실을 더 늘렸어요. 위쪽이 더 무겁게 구조가 바뀐 겁니다.


순간의 판단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미로 넘어가겠습니다. 1970년 칠레에서 아옌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미 최초로 선거를 통해 좌파정권이 수립됩니다. 임기 6년에서 3년이 지났는데 경제가 너무 나쁜 거예요. 칠레의 주 수출품인 구리 가격이 미국 개입으로 폭락했습니다. CIA가 운수노조를 조종해서 파업시킵니다.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육군참모총장 피노체트가 일으킨 겁니다.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저들이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더라도 역사의 진보를 향한 발걸음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라는 명연설을 남깁니다. 쿠데타세력에게 비행기로 탈출하게 해주겠다 제의를 받는데, 아옌데가 거절하고 끝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습니다. 만일 비행기 탔다면 공중에서 폭발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면 도망치다가 비굴하게 죽게 되었겠지요. 사람이 판단을 참 잘해야 하는데, 그런 순간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력은 평소의 역사와 철학 공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도덕경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라 했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서 엉성하지만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쿠데타 일으키고 양민 학살한 독재자가 하늘에서라도 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현재 칠레에서 압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아옌데입니다. 공군장성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쿠데타 반대하다가 고문사했습니다. 반면 공군장성 페르난도 마테이는 쿠데타 찬성하고 국방장관을 지냈습니다. 2013년 말 대선에서 바첼레트의 딸과 마테이의 딸이 대결해 바첼레트의 딸이 압승했습니다.



공부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언론에서 붙인 제 별명이 ‘폴리페서’, 정치 교수였습니다. 폴리페서를 한자로 하면 士大夫예요. ‘사’(선비)와 ‘대부’(벼슬)는 둘이 한몸이란 뜻입니다. ‘사’를 하다가 ‘대부’ 하고, ‘대부’ 하다가 사표 올리고 또 ‘사’를 해요. 퇴계, 율곡 등 대부분의 선비는 사대부였습니다. 그게 폴리페서예요. 임금이 불러도 안 간 사람은 남명 조식 정도입니다. 미국 대학은 장관 하고 돌아오면 우대해줍니다. 한국은 들어오는 것도 반대해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혁진보세력이 약합니다. 지난 100년의 역사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진보세력이 늘어나서 보수와 진보의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열등생이었고, 꼴찌였고, 이단아였기도 했고, 양순한 학생이었어요. 공부의 원동력은 호기심입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호기심이 사라지면 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퇴직했지만 아직도 호기심이 많고 모르면 바로바로 찾아보고 물어봅니다. 질문 안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 하고 가만있는 것 그건 빵점입니다. <논어>에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라,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정신연령이 여러분하고 똑같습니다. 늘 찾아보고 질문하고 합니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고 농촌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이 저의 치명적 약점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보물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잘 생각해서 친구와 자연과 벗 하고 호기심을 갖고 자꾸 찾아보고 질문하고 그러다 보면 틀림없이 훌륭한 인물이 될 겁니다.

김준표(녹취 및 요약 정리) |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며 아내와 아이와 마을의 좋은 벗들과 함께 오늘도 새로움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