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다시 돌아와 마을을 환하게 비추리
70년 역사 항곡초등학교 마지막 졸업식을 다녀오며
"산 높고 물도 맑은 우리 고장은 새 울고 꽃이 피어 평화스럽다. 새 마을 개척하고 땀을 흘리면 고생한 큰 보람과 기쁨이 온다. 매봉산 솟은 아래 항곡 어린이 정답고 사이좋게 앞으로 가자!"
2016년 2월 11일, 홍천 서석면 수하리에 있는 항곡초등학교 졸업식 날이다. 학부모님이 직접 부는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교가가 울려 퍼졌다. 학생 수가 해마다 줄어든 항곡초등학교는 올해 졸업식과 동시에 문을 닫는다. 지난해 2학년 한 명, 4학년 두 명, 6학년 세 명, 모두 여섯 학생이 학교에 다녔다. 내년에는 한 명밖에 남지 않게 되어, 아쉽게도 폐교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재학생 둘은 춘천으로, 한 명은 면내에 있는 서석초등학교로 간다.
항곡초등학교는, 1941년 3월 31일 수하2리에 항곡간이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그해 6월 7일 임시건물을 지어 수업을 시작했다. 올해까지 졸업생 1,270명을 배출하고 2016년 졸업식을 끝으로 이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 지역 인사들도 자리했다. 항곡 1회 졸업생이며 평생 수하리에서 살아온 노승오 님(80세), 10회 졸업생인 노승락 현 홍천군수(66세)도 왔다. 식장을 메운 이들 마음 한 구석이 시리다. 진행하는 선생님 목소리가 떨렸다. 지역방송국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학교를 떠나는 게 실감 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도 있었다.
전교생 여섯 명과 두 선생님이 들려주는 리코더 합주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높낮이가 다른 리코더들로 다양한 화음을 이루어냈다. 강원도학생예능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실력이다. 함께 연습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항곡 학생들은 지난해 학예 발표회에서도 다양한 배역을 나눠 맡아 '오즈의 마법사' 연극을 선보였다. 여러 학년생들이, 한 명 한 명 자기 수준에 맞게, 그리고 서로 호흡을 맞추며 멋지게 어우러졌다.
잠시 사진기록들을 보며 항곡초등학교가 지나온 걸음을 회고하는 시간이 있었다. 1941년 임시건물을 세우고 개교한 흑백사진부터, 해마다 교실을 늘려 지어 1985년 교실 6개, 관리실 2개를 갖춘 지금 모습이 이어졌다. 올해 마지막 졸업생인 세 학생이 1학년으로 입학하던 날 앳된 얼굴과 체구로 교문 앞에서 나란히 찍은 사진이 나오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6년 동안 어느새 몰라보게 자란 모습에 마을사람 누구나 대견한 마음이 들었으리라.
김수림 교장은 "이제껏 배워온 길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개척해가길 바랍니다.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만 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잘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좋은 꿈을 일구고, 꿈을 넘어서 그 일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비록 학교가 폐교되어도, 그동안 이루어온 긴 역사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이 계속 마을의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마을 발전에 기여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할아버지부터 3대가 모교
졸업식 마치고 나오는 길, 교실 복도에 연도별로 걸려 있는, 개교 이래 학교를 거쳐 간 얼굴들이 담긴 흑백사진들에 눈길들이 머물렀다. 노승오 님은 1949년 첫 졸업식에서 18명이 같이 졸업했다며, 날짜를 단기 연도로 표기하고 커다란 도장이 찍힌 60년 전 졸업장을 보여줬다. 해마다 졸업식이면,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운동장에 의자를 놓고 줄지어 찍었다. 점점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서 20~30회 졸업식에는 졸업생 50~60명이 사진을 꽉 채웠으나, 20년여 전부터 졸업생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항곡초등학교 변천사에는 마을사람들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다닌 집들도 많았다. 전후 마을을 개척하며 맞물려, 교정에 나무도 심고, 운동장 돌멩이도 삼태기에 나르며, 마을사람들이 함께 가꾸어온 값진 곳이다. 때마다 찾아오는 운동회, 학예회는 마을잔치였다. '아장아장 걷던 누구네 집 몇 째가 벌써 저렇게 뛰어다니네!' 하며 서로 뿌듯해하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곳이다. 농촌마을 학교는 그렇게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며, 마을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근간이었다. 안타까운 건, 이런 작은 학교가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20년 전부터 폐교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 때마다 꿋꿋이 학교를 지켜온 마을주민들이었다. 할아버지와 자녀들까지 삼대 째 이 학교가 모교인 나수호 님(50, 수하2리)은, 막둥이 아들이 항곡을 계속 다닐지 서석으로 옮길 지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그는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 300~400명에다, 한 반에 60명씩 학생들이 넘쳐났는데…, 항곡에서 유치원을 했다면 달랐을까?" 하며 마을 어린이들이 줄어든 걸 안타까워했다.
올해 6학년 졸업생까지 네 자녀가 항곡에서 졸업하는 모습을 지켜본 학부모 오정록 님(54, 수하2리)은, 이날 졸업식에서 연주한 하모니카 실력이 항곡초등학교 시절 배운 것이라며, 자신과 동기인 26회 졸업생들은 여전히 정기적으로 동창모임을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쌀값이 떨어지니, 점점 논이 없어지고 하우스 재배만 늘고, 너도나도 밖으로 도시로 떠나게 돼요. 그러니 젊은이도 없고, 애들도 없어서 폐교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이런 삶을 찾아서 귀농귀촌하는 젊은 사람들이 생길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고 말했다.
9년째 이곳에서 항곡초등학교 밥상을 책임져온, 이명원 조리사님도 아쉬운 마음을 나타내셨다. "아무렴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지요. 어린애들 보낼 학교가 없으면 누가 여기 들어와서 살려고 할까요? 마을이 활성화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하셨다.
마을이 함께 지켜온 학교
서석에는 1926년 서석초등학교(풍암리), 1941년 삼생초등학교(생곡리), 1941년 항곡초등학교가(수하리), 1946년 청량초등학교(청량리), 1950년 송촌초등학교(어론2리) 1954년 서광분교(생곡리) 1968년 가구분교(수하리)가 문을 열어, 모두 일곱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들어, 1994년 서광분교와 송촌초등학교, 1995년 가구분교가 폐교되고, 1999년 항곡초등학교와 청량초등학교가 서석초등학교 분교장으로 편입되었다. 올해 항곡분교가 서석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면서, 이제 서석면에는 서석, 삼생, 청량, 세 학교가 남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교육 행정 및 재정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농산어촌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놓이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는 교육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통보한 권고기준을 적용하면, 60명 이하 면지역 초등학교, 120명 이하 읍지역 초등학교(중등은 180명), 240명 이하 도시지역 초등학교(중등은 300명)가 통폐합 대상에 해당한다. 인구수가 많지 않은 농산어촌에는 학생 수에 따라 문 닫을 위기에 놓인 학교가 많다. 강원도 내 전체 학교 673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5.5%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은 "지방교육 황폐화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본교 15명 이하, 분교 5명 이하'라는 자체 기준을 내놓기도 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작은 학교는 학생들의 큰 꿈이 자라는 배움터이고, 교직원들에겐 생존권이 달린 소중한 일터이며, 주민과 동문들에겐 마음의 고향이다. 지역주민들 동의가 없는 한 일방적인 학교 통폐합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폐교 기준인 학교라도 학부모가 희망하면 계속 다닐 수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집에서 학교가 멀어지더라도 면에 있는 큰 학교에 모여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통폐합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작은 학교이기에 전 학년이 어울려 지내고, 선생님들이 학생들 하나하나 이해하고 관계 맺을 수 있어 교육여건이 더 좋다는 의견도 있다.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를 살려야 마을공동체성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맑은 웃음소리 다시 환하게 비추길
학교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소리, 오가는 길에 마주치곤 쑥쑥 커가는 모습 알아보고 인사 나누는 정겨움, 운동회 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아가까지 나와 돗자리 깔고 둘러앉아 풍성하게 도시락 나누는 즐거움, 작더라도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생기 있고 활력 넘친다는 걸, 농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잦아드니, 고단한 일상에서 힘내게 해주는 밝은 기운과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해'이고, '웃음'이고, '기쁨'이기 때문이다.
1994년까지 관내에 82개 초등학교가 있던 홍천에는, 지금 초등학교가 31개로 줄어들었다. 분명한 것은 농촌에서 청년과 아이들이 사라져가고, 마을공동체는 점차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석땅에 터를 닦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고자 귀촌하여 작은 학교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다.
1941년 희망과 설렘으로 항곡초등학교를 세우고, 씨앗을 뿌리던 그 날처럼, 이 땅 농촌마을 곳곳에 새로운 소망을 품은 젊은이들이 돌아와 열정적인 결단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일구고, 새 생명 어린이들이 배우고 자라가며 해맑은 웃음으로 마을을 환하게 비추는 '부활'이 분명히 있으리라 믿으며, 항곡초등학교 교문을 나선다.
고영준 | 홍천 서석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소식들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웃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