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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덩실, 가슴 뭉클
골목길 어르신들 잔치로 초대…배움과 삶이 어우러지는 향연

고향땅에서 한 자락 하셨던 할머니, 학생들이 벌려놓은 잔치판에서 신나셨다.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동에 있는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4~5학년 학생들은 여러 해 동안 풍물을 배우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동지잔치, 혼인잔치 등 다양한 자리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기도 하면서, 풍물에 깃든 멋과 재미를 맛보고 있지요. 올 한가위에는 풍물에 깃들어 있는 ‘대동’의 의미를 살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잔치를 열었습니다.

풍물 수업은 한신대 가는 길에 있는 ‘마을예술창작소’라는 곳에서 합니다. 학교에서 약 15분 정도 마을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풍물을 배우며 오가는 골목길에서 만나게 되는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예닐곱 분이 담소를 나누며 앉아계시지요. 이분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한가위잔치를 열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초대장을 만들어 할머니들께 드렸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시간과 장소를 잘 알 수 있도록 글씨를 크게 쓰고 약도를 그려 넣었지요. 혹시 잊어버리지 않을까, 오가는 길에 인사를 하면서 시간과 장소를 반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당일 날 잔치를 준비하려고 마을예술창작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마침 할머니들이 나와 계셔서 “오늘 잔치 있는 거 아시지요?” 하고 여쭈었는데, 수줍게 웃으시면서 “그럼, 그럼, 알고 있지!” 하고 대답하십니다. 꼬깃꼬깃해진 초대장을 한 손에 들고 계신 것을 보아 잔칫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점심밥을 먹고 잔치 준비를 하는데, 할머니들이 일찍부터 들어오십니다. 곱게 차려입고 오신 분들도 눈에 띕니다. 기다리시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할머니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살갑게 이야기를 건네는 학생 덕분에 분위기가 환해집니다. 할머니들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모두 고향이 달랐고,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자녀분들이 서울에 살면서 이곳으로 와서 지내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오늘 걸음은 가볍구나!” 

학생들이 부르는 ‘흥부가’ 판소리를 따라 흥얼흥얼 따라 부르시기도 하고, 풍물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시기도 합니다. 할머니 춤사위가 잔치의 흥을 더욱 크게 돋웁니다. 흥에 겨워 학생도 함께 춤을 춥니다. 구경하던 2~3학년 동생들도 즉석에서 민요 한 자락을 뽐냈지요.

한 시간 가량 풍물놀이와, 판소리, 우리춤 공연이 끝나고 함께 둘러앉아 소박하게 차린 명절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잘 하냐며 연신 칭찬을 하십니다. 계속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신 할머님은 전라도 남원 분이시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마을에서 많이 듣고 불렀다고 하십니다.

“내가 없으면 우리 마을에서 잔치를 못했어! 내가 시집 장가 가는 아이들 옷도 다 해 입히고, 잔칫날 음식도 다 했지!” 

마치 그 시절이 떠오르듯이 밝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할머니 덕분에, 잔치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더욱 즐거웠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풍물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과, 함께하는 이들의 생명의 기운을 서로 밝아지게 하고, 잔치판을 더욱 흥겹게 해주지요. 학생들도 여러 번 했던 공연이지만 또 다른 특별함을 느꼈습니다.


"오늘 잔치의 의도는 단순히 실력 뽐내기가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이 항상 심심하게 있으셔서 한가위니까 풍물치고 판소리하고 놀자는 것이었다.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뻐졌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면 좋겠다."
- 학생의 글

"아~ 진짜 뿌듯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니 왠지 뭉클했다. 신나고 즐겁게 박수 치시고, 춤추셨던 게 정말 뿌듯했다. 내 12살 인생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충청도에서 오신 할머니 한 분은 되게 익숙했다. 암튼 나도 정말 즐겁고 뿌듯했다."
-학생의 글

한 주에 한 번 이상은 할머니들이 계신 골목을 지나가며 인사를 나눕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인사를 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묻는 관계로 변했습니다. 정겨운 눈빛과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골목길이 좀 더 따뜻해진 느낌입니다. 학생들과는 ‘정월대보름’에 한 번 더 모셔서 부럼도 까먹으며 또 재미있는 잔치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때는 할머니들의 숨겨진 노래솜씨를 들어볼 심산입니다. 벌써 그날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됩니다.

이주원 | 인수마을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에서 배움과 삶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길 바라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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