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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 열었대? 머리도 만대?"
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미용실

미용 일도, 사람 만나기도 좋아서 날마다 문을 열어놓으시는 태양미용실 이종금 아주머니.


서석면에는 30~40년씩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같은 이발소, 미용실, 전파사, 방앗간 등을 찾기 쉽다. 특히 전통장터 옆 태양미용실은, 할머니들 청춘시절부터 같이 나이 들어온 미용실, 머리 하러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익숙한 미용실, 머리 하러 가지 않더라도 언제든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이웃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마을 사랑방 같은 곳이다. 젊은 남성이 불쑥 미용실로 들어가니, 다소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미용실로 마실 나온 사람들 사이에 끼었다.

올해 일흔다섯, 아주머님이라 부르기로

머리 하는 의자에는 할머니 손님이 앉아계셨고, 다른 두 분도 자리 잡고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안을 둘러보았다. 미용실들에 흔하게 있는 소파도 없다. 의자 몇 개와 평상에 장판을 깔아놓은 게 전부였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머쓱했지만 바꿔 생각하면, 아무데나 자리 차지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손님 머리 감는 곳은 고개를 앞으로 숙여 대야에 담그는 식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시골 미용실이지만 이래서 장사가 잘 될까 싶다. 하지만 그건 도시에서 기계적으로 해주는 서비스 제공에 길들여진 사람의 편견이다.

태양미용실에서 머리 한 번 할라치면 아침 일찍부터 와야 많이 안 기다리고 할 수 있다고들 입소문이 나 있다. 옆에 앉아계신 손님들에게도 어떤지 조심스레 여쭤봤다. "성격이 원체 찬찬해가지고, 맨지고 또 맨지고 하면서, 머리를 아주 잘해요." 태양미용실에서 '불파마'할 때부터 봐왔다는 풍암리 할머니, 다른 손님들도 주인아주머니 솜씨가 좋다며 칭찬일색이다. 40년간 거의 쉼 없이 일을 해온 장인의 손, 미용 솜씨야 두말할 것도 없겠다.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종금 아주머님 연세가 올해로 일흔다섯, 뱀띠라고 하셨다. 듣는 순간 "네?" 하며 깜짝 놀랐다. 종일 선 채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여기 앉으라고 이거 드셔보라고 대접하고, 안부 묻고 말벗해주며,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셔서 한 50~60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20대 때 강릉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70년대부터 남편과 함께 서석면에 터 잡고, 풍암리에서만 40년간 일해왔다고 하신다. 할머니라 불러야 할지, 아주머니라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도 미용실 일에 적합하게 아주머님이라 불러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주머님 손이 좀 이상하다. 쭉 펴보기도 하다가 팔부터 내려오면서 계속 주무르기도 하시고, 어딘지 모르게 편찮아 보였다. 일흔 넘도록 쌩쌩하게 할머니들 머리를 해오셨는데, 벌써 40년간 이 일을 해온 터라 손이 고장 났다고 하셨다. 파마를 하려면 왼손에 힘을 주어 머리를 말아야 하는데, 오래하다 보니 이제 왼손을 무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올 봄 3개월 정도 치료에 집중하면서 일을 쉬셨다. 태양미용실 문이 닫혀 있는 동안 못내 아쉬워하시던 할머니들은 "다시 문 열었어? 머리도 말어?" 하며 미용실이 전처럼 돌아가는 것에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셨다. 이제 파마는 못하나보다 했는데, 파마해달라고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지금도 미용 일을 하는 틈틈이 치료를 계속 하신단다.


이 일 그만두고 싶단 생각? 전혀

"저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 미용실 나와서 일하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찾아오고 저도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좋으니까 계속 이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그런 것 같아요. 이 일 말고 다른 일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 지금까지 그런 생각, 이 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할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40년 동안 한결같이 자기 일이 좋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머릿결을 고정하는 왼손, 가위질하는 오른손, 이 손으로 40년간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졌을 것이다. 그뿐이랴! 이곳을 찾은 한 사람 한 사람 속내에 있는 고민이나, 가정, 일터, 자녀 키우는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서석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내촌면에서도 태양미용실을 찾아 머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러 오신다.

"서석 사람들 변화를 다 보셨겠네요" 하니, "내가 신부 화장 해준 사람들, 애 낳고 지금 손주까지 봤어!" 하신다. 이래 뵈도 태양미용실이 신부 화장도 했다. 지금은 결혼식 하러 다들 홍천읍이나 큰 도시로 나가지만, 예전에는 서석 사람들도 서석에서 신부 화장과 결혼예식들을 많이 했다. 태양미용실 맞은편에 있는 지금 현대철물점이 예전에는 사진관 겸 결혼식장을 운영했던 ‘현대칼라’였다고 한다. 마을 안에서 모든 필요가 해결되었다. 그렇게 결혼한 이들이 애 낳고 손주까지 봤으니, 정말 서석과 함께해온 미용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 없어도 우리가 주인이여"

"태양미용실 문이 닫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 서석면 상가 이웃들 중엔 이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으시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이종금 아주머니는 미용 일을 하지 않는 날도 그냥 미용실 문을 열어놓으신다. 오고 싶을 때 편하게 들러서 이야기 나누다 가시라는 배려다. 마을 분들에겐 이곳이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구나! 새삼 다시 보게 된다.

어느 날은 미용실에 들어서니, 주인아주머니 없이 다른 분들만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검산2리 서봉사 절에 다니시는 이종금 아주머님이, 오늘 서봉사에 일이 있어 다녀오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용실 문을 열어두신 것이다.

"아주머니 어디 가셨어요?" 했더니, 편하게 앉아계시던 한 할머니께서 "어서 들어와. 주인 없어도 우리가 주인이여" 하며 앉으라고 하신다. 머리 하려고 들어서려는 손님들에게도, 주인 지금 볼일 있어 나갔다고 얘기해주신다. 이어 청량리 사시는 한 할머니가 들어오시며, "면에서 일 다보고, 어디 가서 쉴 데가 없어 일루 왔어" 하신다. 주인이 가게를 비워놔도 이렇게 찾아와 자리 지켜주는 이웃들이 많다. 서석소방서, 서석의원 등에 출근해서 밥 차리시는 아주머니들도 여기가 편히 쉬는 곳이고 꼭 거쳐 가는 정거장이다. 드디어 아주머니께서 돌아오셨다. 절에서 떡과 과일을 싸주셨다고, 오시자마자 그대로 풀어서 앉아계신 분들에게 내놓는다.

인정 많은 이종금 아주머님 드시라고 농사지은 오이며 브로콜리 한 꾸러미를 슬그머니 주고 가시는 이웃들도 있다. 아주머니께서 '봉사'도 많이 하셔서 좋은 분이라고들 하시는데, 대체 어떤 봉사를 하시나 궁금해, "혹시 어떤 분들께는 머리 하는 비용도 깎아주시나요?" 여쭸더니, "어이구, 여기 다른 미용실과도 다 좋게 지내는데, 제 맘대로 깎아주고 그러지 않아요. 비용은 다 똑같이 받아요" 하신다. 그럼 대체 무슨 봉사일까?

태양미용실과 함께해온 아주머니들이 세월 속에서 하나둘 노인이 되어가신다. 연세 많이 드시고 거동 불편한 분들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고, 수발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카락 관리해주는 것도 일이다. 누워있는 분 머리카락 자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쪽으로 돌리고 저쪽으로 돌려가면서 자르고, 다른 사람에게 기댄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한단다. 얘기를 듣던 손님 한 분이 말씀하신다. "남자들은 또 수염이 왜 그렇게 잘 자라는지, 내가 수염 깎아주면서 이 수염이 다 돈이면 좋겠다고 그랬어!" 하신다. 그런 사연을 전해 들으면 이종금 아주머님이 사양치 않고 날 잡아서 그 집에 가셔서 머리카락을 잘라주신다.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 찾아가 미용 봉사

마을에서 숱한 세월을 함께해오셨기에 노인분들 사정을 잘 이해하고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마을에서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고, 하얗게 센 머리카락 가리는 염색도 하고 싶고, 꼬불꼬불 말고 싶기도 한 건 마찬가지다. 마을 어르신 사이에서 면에 있는 태양미용실 아주머님이 편찮으신지, 태양미용실이 다시 문을 열었는지가 화제가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최첨단 유행을 자랑하는 세련된 미용세계에서 정해진 의자에 앉아 고객과 종업원으로 차가운 계산이 오가는 거래관계가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풍경 속에서 편하게 앉아 맛난 것 있으면 나누어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 필요한 얘기도 해주며 그렇게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공간, 가을 해처럼 따뜻함이 묻어나는 공간이 바로 이곳 '태양미용실'인 듯하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말도 많은 곳이라 자칫하면 남의 험담이나 엉뚱한 소문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태양미용실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얼마나 관계를 잘 만들어가느냐, 관계에 정성을 쏟느냐, 이런 것이 좋은 이웃들과 오래 사귈 수 있는 관건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따뜻한 사랑방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웃들 품에서 농촌마을이 더욱 따뜻해지기를 소망하게 된다.

고영준 | 서석면 청량리에 살며 서석과 홍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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