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향한 고뇌의 여정에서 길벗을 만나다
한몸살이를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잔치, 공동체지도력훈련원 겨울연수회
2월 9~10일 이틀 동안 강원도 홍천에서 2015년 공동체지도력훈련원 겨울연수회가 진행됐다. 칠곡, 충주, 청도, 부천, 강원 등지에서 자생적으로 움튼 공동체들, 그리고 공동체를 소망하는 이들이, 처음 그러나 낯설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 믿고 따르는 관계에 대한 절망, 공동체에 대한 절망을 느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더불어 사는 삶을 마음먹으면서 마주치게 되는 숱한 질문과 고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 어느새 든든하게 연대하는 길벗이 된 서로의 이야기들은 밤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이번 연수회에서는 일 년 과정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을 통해 공부해온 이들이 자신들이 터한 장에서 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전환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었고, 평생 바른 농사를 추구하며 총체적인 생명체계 속에 공동운명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농부, 대학시절 꿈과 삶을 나눈 관계를 토대로 졸업 이후에도 어우러져 사는 삶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이들, 뜻을 모은 친구들과 함께 담대히 도시를 떠나 귀촌한 이들 등 다채로운 모습들 속에서 지금 각자의 형편을 비춰보며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주희재 님(서울평안교회)
"제가 올해 60세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현재의 안정된 목회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미래 우리 교회의 모습이 예측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담대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몸담은 서울평안교회에서 이제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하는 자족 속에 목회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연배가 된 주희재 님은, 오래전부터 머리로만 원했던 공동체를 교회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모여서는 삶을 공유하기에 한계가 있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 삶의 가치를 온전히 전수하기 힘들 것 같다는 각성에서, 현재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보다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변화를 결단한 것이다. "지금은 흩어져 살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꼭 가까이에서 같이 사는 삶을 지향하며 공동체 씨앗모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준희 님(씨알생명공동체)
경산 씨알생명공동체 이준희 님은, 2004년 대구 칠곡에서 개척한 뒤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성공한 교회로 유명해지던 중, 그동안 복음을 상품화해왔다는 성찰을 하고 성서에서 말하는 교회란 뭘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가 줄어드는 것에 개의치 않으며 자기 잘못을 서로 고백하고, 돈에 대해 분명한 결단을 한 적은 무리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고물상을 차려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면서 은총을 깨닫기도 했고, 급식업체를 운영하다가 몸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 중단하기도 했다. 왜 공동체로 살고 있는가 공부하며, 필요한 재정을 발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소신을 갖고 직장생활 하는 게 왜 어려울까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강광원 님(섬기는교회)
강광원 님은, 자신이 오기 전부터 공동체 비전을 구상해놓은 섬기는교회 사례를 전했다. 1대 지도력이 있던 시절, 서울 상계동에 있는 교회가 전원(포천)과 도시로 나눠 순환·연대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둘 다 동시에 할 여력이 되지 않아 무리가 되고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환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있더라도 지금은 교회 본질을 찾아가면서 구성원들 마음을 모아질 때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광원 님은 교회 본질을 회복하는 데 중요하다고 정리한 내용들을 들려줬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열 없이 동등한 소명을 따른다는 존중을 바탕으로 그에 맞게 서로에 대한 존칭을 부르는 것, 개인주의, 기복주의, 물질주의 등 믿는 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힘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문명을 통찰하는 역사·사회·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가 세상을 보는 가치가 자기만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다른 이의 관점을 통해 객관화하는 것, 자기 내면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인격적 사귐을 하는 것, 서로에 대한 권면을 정직하게 말하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삶에서 소유를 공유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더 어렵고 중요한 건, 서로 돌보면서 개개인에게 나타나는 잘못의 책임을 함께 나눠지는 것이다."
허일(두레공동체)
지금 홍천에서 살고 있는 두레공동체는 기존 틀 안에서 마음이 모아진 청년들이 모임을 시작한 경우다. 새롭게 살고자 공동귀촌을 결정한 이 청년들의 발걸음을 계기로, 교회가 함께 몇 년 뒤에 두레마을을 만들어가자는 꿈이 촉발되었다. 허일 님은 "처음에는 우리 바깥에 있는 문제들이 보였지만, 점차 우리 안으로 방향이 바뀌어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고민하게 됐다. 서로 고백하고 결단했는데 각자 문제를 반복하면서 달라진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질문하며 서울을 떠나기로 하고 세 가정이 홍천으로 오고, 한 사람은 속초로 발령 받아 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떠나왔지만 여전히 머물러 있구나 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그래서 지금은 보다 우리 삶을 갱신해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 얻다
부천에서 청년 다섯이 꾸려가고 있는 새삶공동체. 김겸손 님은 "학생 때 참다운 생명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졸업한 사람들에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체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선배들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공부모임부터 시작했다. 한 예비부부가 결혼하려고 모았던 돈을 내놓아 그걸 기반으로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여러 가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한 몸 됨의 관계를 잘 이루면서 그걸 토대로 함께 넘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서삼열 님
청도에서 온 서삼열 님은 공동체를 이루게 된 과정을 들려줬다. 대학시절 함께 지낸 경험이 좋아서 이 사람들과 평생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을 품고 졸업한 뒤 자취방 근처에 모여 살기 시작했고, 오래 가려면 신앙을 나누는 모임이 되어야겠다고 판단, 자신이 신학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난해 청도로 가서 일곱 가정과 비혼 청년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서로 집앞에 슬쩍 반찬을 놓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주중에는 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같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8살, 6살, 4살 10명인데, 가까운 분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에 대한 고민도 든다."
충주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65세 연세이신 강대윤 님은 농촌과 도시 간에 더불어 사는 꿈을 뜨겁게 키우고 있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말하는 분들 그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아닌 것 같아서 난 공동체란 말 안 쓰다가 2년 전부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마음속에 모신 그걸 중심으로 해서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을 승화할 수 있는 길이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논밭에서 작물이 자라서 열매 하나를 맺기까지 많은 생명이 협력하는 모습, 유기농사 초기에 병충해문제가 발생했을 때 명상으로 벌레가 없어지는 기적 같은 일을 보면서 피조생명세계가 하나로 되어있단 걸 느꼈다. 자기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이웃생명에게 주는 총체적인 생명체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인생은 공동운명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도시와 농촌마을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대윤 님(평택, 농부)
이 땅 구석구석 병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라.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지난해 내내 울면서 지냈다. 생명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없다. 우리 생명세계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이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게 문제다. 도시마을과 농촌마을이 잘 어울리고 코리아공동체, 동남아시아 공동체가 합력해서 카길, 몬산토같은 다국적기업 거대자본과 맞설 수 있는 실천을 해보다가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에는 기쁘고 행복하게 이뤄낼 수 있도록 도시소비자 되시는 분들이 기대해주면 좋겠다."
미국에서 살다가 연길에 이어 OO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는 한 부부도 이 자리에 참여해서,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동체 삶을 배워가고 있다고 나눴다. 거주가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기에 외국인들이 모여살 수밖에 없는데, 나라와 민족을 뛰어넘어 함께 살며 서로 섬기는 모습을 통해 북녘동포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초기 단계에서 씨름하고 있는 질문들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들도 각자 정황에서 씨름하고 있던 질문들을 풀어놨다. "4년 가까이 모여 살면서 서로 잘 알게 되고,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서로 챙겨주고 참아주곤 했지만,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소통이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민주성을 빌미로 서로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분명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또 "청년모임의 지도력을 맡고 있는데, 반발이 있을 때, 내가 틀렸다고 수정해야 할지 밀고 가야 할지 분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에 "지도력이 열 번 잘 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공동체 전체가 어려워진다. 자기 잘못을 빨리 시인하고, 구성원들은 같이 책임을 져주어야 한다. 최종 결정은 리더가 하지만 반드시 전체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권면도 나왔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최철호 님은, 지금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또한 여러 기초공동체별로 분화되어 있고, 각 기초공동체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보다 독립된 주체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개척의 어려움도 겪고 있다고 했다.
각자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파고들고 모험해온 만큼, 나눔과 깨달음도 구체적이고 풍성했다. 전혀 다른 색깔, 전혀 다른 표현이었어도 그 뜻은 통했을 것이다. 나를 넘어 다른 생명과 섞이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듯, 공동체란 또다시 '우리'를 넘어 이웃과 접속하고 더 큰 관계로 확장해가는 힘인 것 같다. 초기이기에 미숙할지언정,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끊임없기에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 걸어가야 할 것 같다.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다.공동체지도력훈련원 겨울연수회 첫째날 풍경.
최소란 | 지난 가을 강원 홍천마을로 귀촌하여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