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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향한 마음가짐을 배우다


'생명'이라는 말만큼 일상에서 널리 쓰이면서 깊고 풍부한 뜻을 가진 것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생명이 없는 곳, 생명이 생명답지 못한 때에야 비로소 깨닫고 돌아보게 된다. 마치 공기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생명현상은 무한히 신비롭고, 인과적 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구성성분을 다 알았다고 해서 전체를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다. '포유류의 세포 하나하나를 생명으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 '나무가 생명인가, 나뭇잎도 생명인가?' 하는 질문들은 모두 생명을 단일개체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나온다.

그동안 인류는 물질세계의 원리를 밝혀내고자 애썼고 조금씩 가깝게 가고 있다. 모든 물질은 열역학 제2법칙을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일상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가장 있음직한 상태'가 된다. 물은 가만히 놔두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아무리 뜨거운 물체라도 어느덧 식어서 주변 온도와 같은 표면 온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원리를 거스르는 존재가 있다. 바로 생명이다. 우리의 몸이 언제나 36.5도인 것도, 일반 대기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훨씬 높은 날숨을 뱉는 것도 생명활동의 한 예이다.

하지만 생명이 주변의 아무 도움 없이 제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자 교만이다. 생명은 끊임없이 주위와 물질·에너지를 주고받는다. 한 개체인 낱생명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연구가 심화되는데도, 사회적으로 볼 때 생명에 대한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나를 생명되게 해주는 다른 존재에까지 관심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낱생명을 온전하게 해주는 보(補)생명들로 말미암아 내가 살 수 있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함께 온생명을 이루어갈 수 있다.

온생명 개념을 주창하며 생명과 물질의 통섭적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 장회익 교수는 생명 현상의 핵심으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를 들었다. 물질세계의 원리는 일반적 이론들인 1차질서(바탕질서)와 좁은 세계에서 적용되는 2차질서(국소질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연히 1차질서를 거스르는 2차질서가 생길 수 있지만 연달아 나올 수는 없다. 낮은 확률이지만 동전을 던졌을 때 열 번 연거푸 앞면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원숭이가 키보드 위에서 뛰어 노는데 나중에 봤더니 책 한 권을 똑같이 타자 쳤다면 그것은 확률이 아니라 활동 주체의 자기인식과 의지가 들어간(즉 생명현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명현상의 첫 단추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각주:1]이다. 바탕질서 안에서 한 존재가 수명을 다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과 대등한 국소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면 소멸하지 않는다. 한번 촉발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는 점점 그 주기를 줄이면서 질서를 집중시키고 마침내 집약된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다.

137억년의 긴 세월 동안 우주는 인간과 관계없이 자체 변화를 이루어 왔다. 이제야 인류는 집단이성을 가지고 우주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온생명의 주체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근대 이후 추구해 온 문명의 결과로 온생명의 암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문명을 선택할 것인지의 심각한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명이란 부엔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하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만물을 지배할 권리가 주어졌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나를 생명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많은 보생명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보생명이 된다. 이렇게 역할을 바꾸면서 서로를 살려간다. 물론,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바탕질서도 중요하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기존의 질서와 정상 사고체계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각종 모순들로 인하여 이전의 지식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이에 걸맞은 양식의 변화를 만들어간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처참한 사태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생명보다 다른 가치들, 특히 자본을 우선시해왔고, 생명을 가벼이 여겨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매뉴얼을 강화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없다.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문명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화석연료와 핵 발전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발달시킨 도시·성장 중심 문명에서 벗어나 지구 온생명의 근원인 태양에너지 중심의 온생명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정재우 | 14년차 직장인, 일하는 방법보다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나누며 지냅니다.

* 이 기사는 4월 15일 기청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장회익 전 서울대 물리학 교수의 '현대 과학의 흐름과 문명의 성찰'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 1차질서를 거스르는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생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요동에 따른 준안정 상태로의 전이, 복잡계도 예이다. 하지만 생명의 초기 생성 과정에서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자체생성성(auto-poiesis)라는 용어가 있지만, 장회익 교수의 표현이 본질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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