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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투성이 남성, 감수성을 깨우다

남성으로 경험한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남성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드러내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영역이라고 단정 짓고 게으르게, 때로는 회피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애는 여자가 키워야 한다, 바깥일이 살림과 육아보다 더 가치 있다는 착각, 아이를 돌보고 싶어도 남성이 태생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 또한 부끄러운 점이 많지만 그동안 배우고 변화된 삶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결혼 즈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몰라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남성으로서 몸에 배어 있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배움이 더 많습니다. 먼저 결혼하여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거친 선배들과, 비슷하게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친구, 그리고 아내와의 소통 속에서 나에게 드러나는 문제를 비로소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것을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삶과 삶이 만나는 것이고 그 삶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이 서로 차별되지 않도록 소통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제가 긴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아내가 첫 아이를 잉태한 때부터입니다. 출산 전까지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내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공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기본적으로는 아내의 필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긴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게으름과 무관심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더 해야 했고,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시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출산 때까지의 과정을 가능한 모두 함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보건소에 가는 일, 조산원에서 검사를 받고 출산법에 대해 배우는 일 등, 제가 여건이 되는 한 그 과정이 아내의 일인 것처럼 협력자 또는 조력자로 있기보다는 그것이 바로 내 몸과 마음의 일인 것을 의식하며 지내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홀로인 채로 감당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아이를 잉태한 몸의 변화에 공감하려는 노력

덧붙이자면 임신은 병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한 개인에게 임신은 두렵고 막막한, 그리고 뭔가 의지해야 하는 '문제 상황'이 됩니다. 주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 역시 병원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을 스스럼없이 선택합니다. '임산부=환자'의 공식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임신 확인과 동시에 출산 때까지 수많은 검사와 확인 그리고 수술까지도 염두에 둔, 임신한 여성의 몸과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볼모로 병원은 협박 아닌 협박을 거듭합니다.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한다,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둥 말이지요.

인간의 몸에는 지난 수백만 년 간 축적된 생명의 지혜가 있습니다. 자연치유능력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임신은 생명이 생명을 잉태한 기쁘고 경이로운 일입니다. 결코 겁먹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료는 치료행위로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양의학이 되었건, 한의학이 되었건 말입니다. 문제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쉽게 병원을 찾고 한의원을 찾고, 그곳에 의지하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믿지 않고 병원이 주는, 의사가 주는 처방과 약에 자기 자신을 가볍고 쉽게 맡기는 것이지요.

저희는 첫째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았습니다. 물론 둘째 아이도 그러했습니다. 초기에 임신 확인만 병원에서 하고 이후 과정은 필요에 따라 보건소를 이용했습니다.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서는 조산원에서의 기본적인 진료와 아이의 발달과정을 지켜보고 때에 맞는 보살핌을 할 수 있도록 먹거리와 운동, 생활패턴 등을 조율하며 아내와 함께 아이가 나올 때를 기다렸습니다. 필수적으로 먹는 엽산이나 철분 등 기타 보충제는 평소 먹는 먹거리로 해결되어 섭취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아이가 나오려는 때에 맞게 의료적인 개입 없이 고요히 방에서 아이를 맞이했습니다. 물론 조산사님이 따뜻하게 그 과정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첫째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저의 반응은 '신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이 나오는 그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진통을 겪고 출산의 기쁨을 누리는 아내를 보며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온 몸으로 경험한 여성이 자식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빠인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가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3년 뒤 둘째를 맞이할 때에는 첫째도 함께 했습니다. 임신 과정은 큰 아이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에서 둘째가 태어나는 과정을 첫째와 함께 지켜보았고 첫째는 진통으로 신음하는 엄마를 응원하고 위로했습니다. 조산사님은 첫째에게 출산의 과정과 지금 엄마 몸의 상태를 아주 쉽게 천천히 그리고 친절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 저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왜 울컥했는지 한동안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 그 생명 안에 모든 이의 수고와 사랑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간 아이를 키우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생명, 이젠 그 안에 담긴 수고와 사랑을 알기에

출산은 열 달 임신기간이 끝나는 맺음의 사건이자 앞으로 변화될 삶의 출발신호이기도 합니다. 가정에 아이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삶이 아기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육아에 주체적인 부모로 서가는 것은 고난의 훈련이었습니다. 종이기저귀 대신 천기저귀를 쓰고 아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아플 때는 죽염수로 이를 닦이고 겨자찜질과 죽염, 감잎차, 매실효소 등으로 몸을 다스리며 아이가 세상과 자연스럽게 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때에 따라 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고요.

저는 몸 자체가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익숙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서투르고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엄마와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남성은 수동적인 자세와 태도로 육아에 비주체적으로 지내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육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소통은 주로 남편인 제가 하도록 역할을 정했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 때 그 일을 지내오던 맥락대로 아내에게 넘기지 않도록 한 것이지요.

아이를 키우며 병원과 약에 의지하지 않는 삶에는 대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걸맞은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몸의 생명력을 믿으며 그것을 돕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내 아이라는, 가족, 특히 부모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마을의 이모와 삼촌 모두가 육아의 주체가 되어 부모로부터 강하게 이어받는 기질과 운명의 관성을 아이가 이어받지 않도록 함께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생활 자체가 좀 더 육아에 치중되었습니다. 아이가 하나 있을 때는 한 사람이 돌보면 나머지 한 사람이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둘이 되면서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면서,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날이 많아지면서, 생활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치열해졌습니다.

둘째가 태어날 무렵부터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반년 동안 아이들과 아내와 붙어 지냈는데 그 시간이 저에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24시간 같이 있으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은 서로 지치게 하기도 했고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남성인 제가 지니는 한계를 일상 가운데 치열하게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했던 육아휴직, 부모로 서는 고난의 훈련

아내인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은 실수투성이에 깜박 잊어먹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이의 면면을 잘 보살피지 못해 늘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육아를 잘하는 남성이 있다 하더라도 여성이 볼 땐 빈틈투성이입니다. 남성인 저의 관점에서 여성은 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여성과는 다른 감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임신·출산·육아에 맞는 몸의 변화를 직접 겪으며 아이를 만나는 맥락 속에 빠질 수 있는 여성에게, 그 이외의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보완하며 돕는 존재로 있습니다. 서로의 한계를 직면하되 그 다른 차이를 존중하는 보완적인 관계로 살아갑니다.


올해 3월 다시 복직을 하면서 치열했던 육아휴직 6개월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학교로 출근하는 저는 육아로부터 배려를 받고 있으며,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는 각오가 생겼습니다. 아내는 제가 없는 동안 육아의 주체로 아이들을 돌봅니다. 제가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런 가정의 수고와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직장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선을 긋지요. ‘바깥일은 힘들다, 당신이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아느냐? 육아와 살림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는 선을요.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은 남성도 똑같이 육아의 주체이며 아이를 돌보는 것에 100%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50:50이 아니라 100:100입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해야 할 당연한 몫에 대한 수고를 아내가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아품앗이, 마을어린이집, 마을초등학교, 중학교, 고등대학과정 등 다양한 형태로 육아와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일상 가운데 그 수고를 기꺼이 아끼지 않는 마을의 친구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임신·출산·육아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늘 우리 삶의 근간이 되어왔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이것은 신께서 인간을 축복해주시기 위해 주신 것이지 여성을, 남성을 괴롭게 하려고 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주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 살아온 대로 결정하지 않고, 서로 돕는 관계를 이루어 그동안 살아온 삶의 관성을 끊고 새로운 삶의 계기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새로운 존재로 남성이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강재관 | 인수동마을에서 비혼공동체방에 살다가 지금의 아내와 만나 가정공동체를 꾸리고, 다섯 살, 두 살 된 아이 둘을 키우며 지내고 있는 중학교 체육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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