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숙면하기, 마을수도원
마을수도원은 삶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일상을 닦는 장이다. 서울 북한산 아랫마을 인수동에는 형제수도원과 자매수도원 두 곳의 마을수도원이 있다. 올 1월부터 형제수도원 지기로 지내고 있는 조윤하 님(37)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자신이 밤에 숙면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수도원의 침묵 수련 때문이라고 했다. 자매수도원 지기 황지영 님(30)은, 오랫동안 밤샘 작업이 습관이 된 자신이 요즘에는 여유롭게 아침 운동을 하며 봄기운을 한껏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만나 마을수도원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영 하루 일과를 소개하면,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깨우는 운동을 합니다. 5~10분 함께 중보기도를 하고 간소하게 아침밥상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 일터로 나갔다가 밤 9시 전에 들어와 걸레질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피정하러 온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삶과 분리되지 않는 수도원이지요. 그러면서 지내온 생활을 돌아보며 정리해야 할 부분을 찾고 정리합니다. 피정의 여운으로 일상에서도 수도하듯 살아갈 수 있게 돼요.
윤하 보통 ‘피정’ 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수도원을 떠올려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수도원은 삶에 균형을 잡아줍니다.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신발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는데, 잘 지키다가 어느 순간 자기 관성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과제가 무엇인지 직면하기도 하지요.
지영 수도원지기를 하면서 얻는 유익이 참 큽니다. 저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도 공동생활을 했는데요. '야작'을 많이 하던 미대생이라 동이 트면 자는 일이 많았는데, 함께 살면서도 규율 없이 지내며 저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못했지요. 시간이 지나 몸이 아프고 힘있게 하루를 지내질 못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됐어요. 하지만 십여년 간 몸에 베인 습관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의 정황을 잘 알고 있는 지체들의 지지를 받으며 수도원지기를 시작했지요. 사람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기운을 모으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수도원에서의 삶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어요.
윤하 저도 예전에는 밤 10시면 말똥말똥한 초저녁이었는데, 마을수도원에서는 10시부터 소등하고 자율적으로 취침합니다. 잠자는 방과 떨어진 공간에서 불 켜놓고 책을 볼 수 있지만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도 꺼놓습니다. 12시 안에는 전부 소등하는데, 보통 10시 반이면 잠듭니다. 그렇게 자서 새벽동이 트는 걸 볼 기회가 많아졌어요.
지영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이 천지의 기운에 조화를 이루며 사는 거라면, 밤을 사는 사람은 전적으로 전기불에 의존하는 것이지요. 전기불이 없으면 저녁형 인간이 나올 수 없었겠죠. 한때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이란 말이 유행했는데요, 아침형 인간, 즉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 해도 도시에서는 늘 분주하고 정신없이 달리게 됩니다. 아침을 여는 시간, 저녁을 마무리하는 시간, 참된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요. 마을수도원에 살면서 그렇게 산만하던 삶이 단순해지고 밤에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도 줄어들었어요.
윤하 밤에 잘 자고, 잘 죽어야,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겠죠. 밤늦도록 엔진을 지펴놓고서 자려고 하니 잡생각이나 망상 때문에 선잠이 드는 거예요. 수도원에서 자는 사람들이 숙면할 수 있는 이유는, 주변이 고요하고 깜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묵 때문입니다. 형제수도원은 밤 10시부터 소침묵을 시작합니다. 속삭여서 얘기하는 것이지요.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는 대침묵입니다. 침묵 시간이 있기에 깊이 잠들 수 있는 겁니다.
지영 수도원 침묵 시간에는 말뿐 아니라 물소리나 다른 소리들도 들리지 않게 합니다. 침묵 수련을 하면서, 평소 침묵을 어려워하고 쉽고 가볍게 말하던 습관이 달라진 것 같아요. 수도원에서도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면 잘 하다가도 홀로 있을 때는 풀어지는 때가 있어요. 규율이 타율적으로 교조화되면 그렇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하 수도원에서 밤 9시 반부터 1, 2층 바닥을 전부 걸레질하는 데 30분 정도 걸려서 제대로 ‘노동’이 됩니다. 스팀청소기를 쓰지 않고 걸레질을 하면 구석구석 먼지가 잘 보이고 잘 닦여요. 그리고 손빨래로 걸레에 낀 때를 빼지요. 날마다 단순하고 똑같은 사이클이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어느 순간 매일 하는 걸레질이 지루하고 하찮게 여겨지고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 그럴 때가 있어요. 남들이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일관성있게 규율을 지키는 것, 어떤 의미부여 없이도 내 몸이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몸에 배어가는 게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최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