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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대응현장을 다녀와서

10월 9일 한글날 이른 아침 부산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한국전력의 765kv 고압 송전탑 건설 강행을 막으려 온 몸으로 산을 지키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빚진 마음을 안고 찾아갔다. 난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는 서울과 경기도에 집과 일터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버튼 하나로 편리하게 전기가 on/off 되는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는 이 전기가 누구의 삶과 어느 농촌마을을 짓밟고 오는지 망각해간다. 도시사람들이 과하게 쓰는 전기를 대주려 끊임없이 산을 파헤쳐 송전탑을 줄 세워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다섯 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밀양 옆의 청도군 금곡리 마을. 송전탑이 세워질 산 중턱에 할머니들은 움막을 짓고 당번을 정해 지내시며 마을을 찾는 이들 밥을 짓기도 하고,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대기하고 계셨다.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의지해 산중턱을 오르내리고 계셨다. 그날은 전날부터 내린 비로 인해 경찰과 용역이 빠져서 소강상태라고 했다.

정성껏 대접해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할머니들이 평상에 앉아 논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굽어진 허리와 축 쳐진 어깨에서 8년 넘게 싸워온 고된 시간을 느끼며 어깨와 등을 주물러드리고 마디마디 굳어지고 휘어진 손을 만져드렸다. 할머니는, 전에는 마을이 단합도 잘 되었는데 송전탑 공사로 인해 마음이 갈리게 되어 안타깝다고 하셨다. 이분들이 허리 펼 날 없이 정직히 농사짓고 평생을 자신의 생명같이 여기며 살아온 이 땅을 어찌 이리 한순간에 잔인하게 빼앗을 수 있는지, 화도 나고 마음이 답답했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 오르니, 포크레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마을어르신들이 파놓은 큰 구덩이들이 보였다. 헬기를 동원하고 몇 백, 몇 천의 경찰인력을 동원하는 공권력에 비해 이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아보였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사람들이 둘러서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이분들의 눈물과 아픔을 씻어주시길, 농촌을 수탈하며 질주하는 도시문명이 멈춰서기를,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국가권력과의 싸움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체념하지 않고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일구는 이들이 생겨나기를….

돌아오는 길, 한순간 쏠린 관심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일상에 파묻혀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농도상생 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삶의 의미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에너지 소비를 조장하는 이 도시에서 관성적으로 써온 문명의 이기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몸의 습을 바꾸어가고 있는 마을공동체에서 잘 배우고 또 적극적으로 실천해가야겠다.

움막을 지키며 바쁜 와중에 따주신, 가을볕을 가득 머금은 감에는 그 땅의 눈물이 담겨있는 듯하다. 할매, 할배의 정성어린 그 고운 맛을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감사히 맛보고 싶다.

이선아 | 일상에 있는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려 하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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