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병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게는 2012년 6월이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6월 초부터 배가 점점 불러와서 바닥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복부비만이라고 하기에는 배가 너무 빵빵했고, 배꼽은 밖으로 튀어나와서 옷이 닿기만 해도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터질 것 같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졌을 때 병원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6월 21일, 가까운 내과에 가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행된 난소암 때문에 복수가 찬 것 같다고요. 대학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야 왔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틀 뒤 8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난소 양쪽에 14센티미터의 종양이 있었고, 자궁과 충수돌기와 배꼽 밑에도 종양이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병기는 난소암 3b기였고, 수술로 난소와 자궁, 맹장, 림프절, 장간막, 횡격막, 배꼽을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1, 2차 항암치료와 봉합수술을 받느라 한 달을 입원했고 퇴원 뒤 6차 항암치료까지 받고 병원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평소 유기농 먹거리를 먹었고 감기에 걸려도 약 한 번 먹지 않고 나았는데, 암을 진단받은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니 병이 올 만했습니다. 한 달 중 절반 이상 밤에 잠을 1~2시간 자면서 일했고, 외식을 즐겼으며, 커피는 2잔 이상씩 마셨고, 생협 제품이라고 빵, 우유, 계란, 햄 등 가공식품을 마음 놓고 먹었으며, 새벽에 운동하는 시간을 빼고는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 일, 일만 했으니까요. 제 생활을 정직하게 돌아본 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친 몸을 살리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잘 자고 잘 쉬면서, 현미와 뿌리채소를 먹고, 약을 최소한으로 먹기 위해 예를 들면 가래 잦아드는 약을 먹는 대신 온 종일 말을 삼간 채 가래를 끊임없이 뱉어내는 식으로 노력했어요.

제가 아프고 나서 안팎에서 받은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을 위해 노력하더니 그게 소용없던 거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였어요. 저는 대답했지요. "그렇게 노력했기에 그나마 이만한 거예요. 더 철저히 하지 못해 병이 생긴 거고요." 아무리 위기상황이라 하더라도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걸음을 부정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수술 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며 제 대장 안쪽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그 예쁜 분홍색의 대장을 잊지 못할 겁니다. 난소에 생긴 암세포가 복강 안으로 분무기처럼 암세포를 뿜어내고 복막에 암세포가 퍼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위, 폐, 간, 신장, 소장, 대장, 방광 등은 약해지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기 전보다 더 자연치유의 힘을 신뢰하며, 지금껏 제가 실천하던 것을 더 철저히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보험을 괜히 해약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5년 전 보험 2개를 해약했습니다. 그 돈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설사 병이 난다 해도 제 생명력을 키워서 무력하게 병원만 의존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물론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지만, 만약 계속 보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면, 아마 제 몸을 스스로 돌보는 노력을 게을리했을 거예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라는 성서 말씀이 맞습니다. 또 돈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저를 지켜주고 살려준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되어주고, 손과 발과 허리가 되어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난 8개월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저는 신실한 친구들의 사랑 속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셋째, "병원 치료를 종료한 시점에서 채식 외에 특별히 하는 게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유명인이 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고, 지인들 중에도 암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현미채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숯가마에 가서 땀을 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일상을 사는 것이 최고의 치유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을 계기로 과거의 어리석은 삶을 청산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몸에 좋다는 비싼 약 달여 먹느라 간에 무리를 주고, 일관성 없이 채식과 육식을 병행하며, '나'의 '병'만을 24시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쉼 없이 달려오다가 암이라는 '큰 손님'을 맞이하며 드디어 쉬게 되었습니다. 더 잘 사는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에 힘을 내어 병든 몸을 다시 살릴 수 있었습니다. 병원 치료의 도움을 받았지만 함께하는 친구들 덕분에 이 과정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친구들과 뜨개질을 하고, 아이들과 눈 맞추며 놀고, 마을밥상에서 정성이 담긴 밥을 먹으며 행복하게, 별 일 없이, 잘 지냅니다.

서유경


뉴스편지 구독하기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밝은누리>신문은 마을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이야기,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