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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만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살피는 마음 씀씀이를 느낄 때

"꼬끼오" 동이 텄다고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깹니다. 따끈한 온돌 방바닥에 등허리를 붙이고 있으면 이불에서 나오기가 싫지만, 간밤에 참았던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하얗게 서리가 내린 길을 따라 밥상으로 향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콩죽 두 그릇을 말끔히 비웠습니다. 밥상에서는 지난 밤 꿈속에서 겪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있는 연말 졸업식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올해 10월 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홍천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휴가를 내어서 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정확한 치수로 나무를 자르고 건물을 하나씩 지어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도 자연과 호흡하며 삶의 터전에 적합한 아름다운 건축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흙손이 집을 지을 때 용접이 필요할 때도 있어서 직장 다니는 틈틈이 용접기술도 배워두었습니다.

지금은 큰 톱날과 날카로운 소리를 가진, 그래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했던 각도톱도 익숙해지고 긴 나무를 밀리미터(mm) 단위로 정확하게 자르는 것도 익혀가고 있습니다. 또 집 지을 때 기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무로 벽체를 세울 때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지 일하면서 배우니 즐겁습니다. 기초를 놓을 때는 삽질과 곡괭이질 등으로 몸이 조금 피곤했는데, 나무로 하는 일은 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힘이 덜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저의 손으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집도 짓고 싶다는 마음도 생깁니다.

때론 몸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땅을 파거나 무거운 흙을 옮기는 일을 하는 날에는 저녁 여덟 시만 되면 바로 잠이 들고 싶어집니다.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입니다. 저만 힘든 것은 아니겠죠. 그래서 흙손 동료들은 서로를 살피며 무리가 되지 않고 한 사람이 계속 힘든 일만 하지 않도록 합니다. 곡괭이질을 열 번씩 순서대로 돌아가며 놀이처럼 일하기도 하고, 삽질을 하던 사람이 지쳐 보이면 서로서로 삽을 나누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 씀씀이가 일할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그렇게 일하다가 다 같이 쉬고 싶다 싶으면 어느새 참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참은 요일별로 돌아가며 준비하는데, 한숨 돌리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다시 힘을 모아 일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다보면 점심식사, 또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 마무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을 녹이는 시간입니다. 피로와 추위도 모두 하수관으로 흐르는 물과 함께 흘러가는 것 같은 그 순간이 참 행복합니다.

▲ 홍천마을 친구들과 밭을 개간하고 밀을 심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내밀어준 잎사귀를 보면 저도 푸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농촌에서의 일상은 도시의 삶보다는 훨씬 단순합니다. 특별히 다른 것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길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저는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느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광고로 인해 불필요한 물건에 소비욕구를 느끼며 갈등을 하기도 했고, 자극적인 인터넷 영상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제겐 짐이었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 생명을 생각하며 몸 써서 일하는 지금이 참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익숙한 삶과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즐겁게 꿈꾸며 설렘과 기대 속에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해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홍천마을 친구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제겐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고 생각하고 공부한 대로 사는 당당함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지내는 친구들에게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12월 추위에 땀 흘리기보다는 흐르는 콧물을 장갑의 손등으로 훔치며 일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갑니다. 아직은 엉뚱한 곳에 못을 박아 없던 일도 크게 만들고 나무를 잘못 잘라 다시 자르기도 하지만, 오순도순 밥상을 마주하고,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하늘이 있는 곳에서 잠드는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구슬땀 흘리며 노동하는 삶을 응원한다." 서울 인수마을에서 함께 살던 친구에게 엽서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맙고 즐거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제게 해준 격려가 허망하지 않게 말 한대로 잘 지내야겠다는 책임으로 마음 한 곳을 여미게 됩니다.

조원호 | 살아가는 이야기를 직접 노래로 지어서 부르는 것과 자전거 수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서울에서 NGO에서 일하다가 올해 10월 홍천마을로 이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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