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숨쉬는 흙집
오늘날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흙집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이 질문을 하면 "10명 중 1~2명 살 것 같다" 등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흙집과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실상 도시 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흙집은 그리 많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여전히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흙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시멘트가 보급되기 전에는 흙집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흙을 구하기 쉽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보통 집을 땅 위에 짓는데, 땅에는 흙이 깔려 있지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집을 지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흙에서는 생명이 자라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햇빛이 들면서 생명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물을 정화시키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상처 난 곳에 흙을 발라 낫게 하기도 하고, 직접 먹기도 하는 약재로 썼다고 합니다. 생명을 품고 치유하는 흙은 집으로 지어졌을 때도 많은 유익을 줍니다.
흙은 입자 사이에 공극이 있습니다. 그 공극으로 인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환기도 시켜줍니다. 열을 오래 머금는 특성이 있어서 낮의 태양열을 받아들였다가 저녁에 내뿜어줍니다. 이걸 계절로 보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줍니다. 습도가 50%를 넘으면 습기를 흡수하고, 건조해지면 다시 습기를 배출하여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줍니다.
흙으로 지은 집은 나중에 허물면 그 흙으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흙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흙집에서 지낼 때는 손이 많이 가게 됩니다. 흙가루가 떨어지고, 나무와 만나는 부분은 갈라지기도 하고, 물에 닿는 부분은 보수도 해줘야 합니다. 덕분에 집에서 흙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도 들게 합니다.
흙으로 집을 짓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흙을 바닥에 깔거나 벽에 쌓으려면 흙을 옮겨야 하지요. 그러려면 흙은 가루가 되어 힘이 없어집니다. 흙을 다시 단단하게 해주기 위해서 발이나 절구로 다지기도 합니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는 주로 흙을 물에 개어서 질게 만들었다가 말려서 굳히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흙과 모래를 섞고, 물을 넣고 비빈 뒤 마르면 굳어져서 집이 되는 것, 할 때마다 신기해보입니다.
흙으로 집짓기는 참 쉬운 일입니다. 동시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흙을 쌓는 것은 어렵지 않아서 처음 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더라도 덧붙이거나 다시 하기가 쉬워서 별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흙의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하다보면 상당히 힘이 들어갑니다. 특히 흙을 물에 비비고, 옮기는 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흙손은 홍천마을에서 '계란판 공법'으로 흙집을 짓고 있습니다. 흙과 계란판을 층층이 쌓는 것입니다. 전통건축물의 담벼락 중에 기왓장이 벽 사이사이에 꽂힌 흙담이 있습니다. 그걸 응용하여 기왓장 대신 계란판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흙만 쌓으면 처질 수 있지만 계란판을 넣어주면 그릇 역할을 하여 더 안정적으로 높게 쌓을 수 있습니다.
계란판을 구하니까 가게에서 어디에 쓸 거냐고 묻습니다. 집 짓는 데 쓴다고 하니까 방음벽으로 쓰는 것이냐고 하셨어요. 흙집을 짓는데 계란 쌓듯이 흙을 쌓아 올릴 것이라고 하니 그렇게 집을 짓기도 하냐면서, 계란판이 튼튼하니 이해된다고 하셨습니다.
계란판 공법의 방법은 먼저 기초 바닥면 위에 2~3cm 정도 흙을 올립니다. 계란판을 얹고 그 위에 흙을 7~8cm 가량 놓습니다. 7~8cm가 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보다 얇으면 계란판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흙이 적게 사용됩니다. 그보다 두껍게 쌓으면 흙 무게에 의해 벽이 흘러내리거나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또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하루에 너무 많이 쌓으면 역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60~70cm 정도만 쌓는 게 적당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흙집 짓는 방식 중에서, 또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방식입니다. 흙은 그저 올리기만 하면 되고, 계란판은 종이로 만들어져서 가벼운데다 원하는 대로 쉽게 찢을 수 있어 편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건 '비벼진 흙이 있다'는 것입니다. 흙을 물과 섞는 작업이 힘들기 때문에 이 공법은 널리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도 진작에 계란판 공법을 알았지만 반죽하는 작업이 어려워서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10톤 분량의 흙도 2~3시간이면 홀로 다 비벼주는 홍실이(굴착기)의 등장으로 도전해보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적절한 공법을 연구하고 시도해보려 합니다.
장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