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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온병 같은 집에 산다면?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그동안 연구해온 대안적 주거양식과 건축공법을 총망라하여 들을 수 있었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지난 4월 6일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에서 '생태적 집짓기와 노동' 강좌를 열었다. 흙손은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현 시대 건축양상을 거슬러 대안적 주거양식과 건축기술을 연구하며 집을 짓고 있다. 흙집 짓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청년, 가족과 살 집을 직접 짓고 싶다는 부부, 땀 흘리며 일하려고 친구 따라 온 사람들, 20대 대학생부터 30~40대 직장인까지 서른 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먼 길 마다 않고 모였다.

외벽 미장을 하기 전 흙부대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생태건축연구소 장재원 님.


흙손은 지난 4년 간 홍천에서 흙, 나무, 돌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재료들로 집과 가구를 하나씩 만들어왔다. 폐가 리모델링을 시작으로, 생태뒷간, 너와구들집, 태양열 구멍가게, 한옥, 흙부대집 등 효제곡마을에는 '흙손의 손'을 거쳐 간 건축물이 많다. 처음엔 정교하지 못한 설계도로 겁 없이 공사를 시작하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지만, 매번 새로운 공법을 공부하여 도입하는 모험심과 창조력으로 생태적 집짓기의 진보를 이뤄가고 있었다.

홍천은 겨울철 단열을 신경 써야 한다. 벽 단열재로는 흙벽돌, 왕겨숯, 흙부대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난방을 위한 기본은 바로 '구들'이다. 지금은 가정용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가 보급된 뒤로 일순간에 사라진 아궁이와 구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

가장 최근 건축한 흙부대집의 주 건축 자재는 바로 흙이다. 집터를 파낸 흙을 건축 자재로 즉시 사용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흙을 35m 양파망에 담아 길쭉한 흙부대를 만들고, 양파망을 동그랗게 둘러 층층이 쌓아 올리는 건축방식이다. 흙부대끼리 지탱해주는 무게가 상당하기에 지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실제로 만져 봐도 단단했다. 이 흙부대집은 생동중학교 서당공간으로 지어졌다. 원형 흙부대집 두 채가 나란히 선 느낌은, 보통 딱딱한 학교 건물과 달리 창조적인 배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원형집을 따라 자연스레 둥그렇게 자리해서 놀이처럼 흙벽을 치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이날 강좌에서는 흙부대집 외벽을 점성이 강한 흙으로 미장하는 작업을 두 시간 정도 했다. 아무 건축기술이 없는 수강생들도 재미를 느끼며 흙미장을 했다. 반죽이 된 흙을 삽으로 떠 옮기고 일일이 손으로 벽에 바르는 일이었다. 그리 넓어 보이지 않은 집인데도, 우리 몸을 써서 완성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집짓는 일은 어려운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태건축으로 등장하는 여러 집들 중 '에너지제로하우스'라는 게 있다고 한다. 고밀도 신소재 단열재를 사용하여 보온병처럼 밀폐된 집을 짓는 것이다. 제로 하우스에 들어가는 SIP (Structural Insulated Panels) 단열재는 놀라운 단열효과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석유화학 제품이다.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화석연료를 덜 쓰겠다고 석유화학 제품에 둘러싸인 집을 짓고,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별도의 환기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하는 집에서 사는 것을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집을 지을 때 어떤 건축자재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공법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만큼 에너지라는 주제도 흙손의 치열한 연구주제였다. 전구 하나 밝히는 데도 에너지가 들고, 집을 따뜻하게 하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과정에도 에너지가 드는 것은 물론이다. 대안에너지로 방구들을 놓는다던지, 태양광 전지로 조명이나 노트북 전원 같은 소량 소비전력을 해결한다던지, 태양열을 이용한 온풍기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병행하고 있지만 흙손의 지향점은 무척 단순하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일상, 그것이 최선이다.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안에너지를 쓰나 원자력에너지를 쓰나 변별력이 없게 된다.

마음만큼 완성하진 못했지만, 뿌듯하다. 점심밥이 꿀맛이겠다.


'어떤 집을 짓고 살 것인가'라는 대안적 주거양식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떤 삶을 지향하며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 된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끊임없이 실천하는 모든 과정에서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한 기준점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연에 죄를 덜 짓기 위해, 에너지를 덜 써서 조금 불편한 삶이더라도 자연과 대지와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유쾌하게 택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조용한 혁명이 아름다운 노동의 손길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김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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