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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먼저 터득한 사람은 다르다
흙집 자연스레 보며 자란 아이들, 집짓기 기획


생태건축을 하기 전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교육 실습을 가기도 하고, 다양한 공법의 건축현장을 방문해서 집짓는 모습들을 지켜봤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한 세상이었습니다. 그 신기함 속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홍천터전에 정착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4년 동안 몸으로 익혀가는 가운데 불안감은 점차 해소되었습니다. 30대 중반에서야 망치질, 톱질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의 몫으로만 생각했던 집짓는 일이 제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몰론 언제나 곁에 있는 든든한 친구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정착하기 전의 제 눈빛을 가끔씩 이곳에서도 보게 됩니다. 홍천 서석면 청량리로 귀농하신 부부는 가끔씩 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얼마 전에는 홍천 내면에 집지을 계획이 있는 분이 흙부대로 짓고 싶다면서 많이 물어볼테니 잘 가르쳐달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분들 눈빛은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희망, 불안감 등, 홍천터전에 정착하기 전 저의 눈빛과 다르지 않은 맑은 눈빛이었습니다.


홍천터전 생동중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자란 학생들이 이제 삼일학림이라는 더 넓은 장에서 더욱 깊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생태건축' 수업은 건축의 전 과정을 학생들 스스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저는 옆에서 돕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학생들은 30대 중반 때 저의 눈빛이나, 가끔씩 이곳을 찾아오는 노년기 어른들의 눈빛과는 많이 다릅니다. 반성적 차원에서 도시를 떠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흙집을 지어온 광경을 목격하며 자란 학생들이기에, 적어도 저에게 초기에 있었던, 집짓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없습니다. 함께 일하기도 했고 생태건축이 일하는 모습을 터전을 오가며 보아왔기 때문에, 어른들의 질문처럼, "단열은 어떤 방법이 더 좋은가요?", "구들은 어떻게 놔야 하는가요?", "흙부대로 하면 힘들지 않나요?"같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흙집 교육을 받았을 때 선생님이 설명을 하긴 하시는데, 집짓는 실제가 저에겐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무슨 설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실습을 통해서야 '아! 그때 설명한 게 이거였구나' 했는데, 학림 학생들에게는 이론 설명을 하면 그 내용에 대한 영상이 이미 학생들 머릿속엔 들어있습니다.


중학교 때 해봤던 왕겨숯 벽단열, 경량목구조 벽체 세우기, 수평의 중요성, 흙미장, 흙부대에 흙을 넣는 일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음을 수업을 통해 확인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제법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답을 찾아가는 학생들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집짓고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설계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처마가 없기도 하고, 창문이나 출입문의 크기가 조화롭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일에 참여했기 때문에, 공정의 기승전결, 건물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 등 입체적인 건축감각은 이제 막 채워가야 할 과제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함께 집을 짓게 될 때에도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돈이 중심이 되어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아니고, 더구나 분업화된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실수 앞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럴 때 '관계의 힘'을 키우는 훈련이 된다는 것도 나눕니다. 갈등으로 기운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없다고 여겼던 능력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집이 완성될 즈음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함께 집짓는 기쁨을 만끽하자고 나누었습니다. 학생들이 책임있게 지어갈 건축물이 어떤 형태로 이곳에 자리할지 많이 기대되는 2014년 봄입니다.

구자욱 | 홍천 '생태건축 흙손'에서 집짓는 일을 하고, 삼일학림에서 생태건축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흙미장 놀이'로 함께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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