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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조절하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먼저 자랑부터 할께요. 제 나이 서른에 키가 컸어요, 2센티 가량. 탈모 증세도 완화되었어요.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어요. 피부가 정말 매끈해졌다는 걸 세수할 때마다 느끼지요. 똥도 잘 나와요. 16년간 고생했던 변비와 이별을 했지요. 몸도 탄탄해졌어요.

대학원을 휴학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홍천마을로 갔습니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생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규칙적인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었지요. 생명밥상에서 서로를 살리는 눈빛, 표정, 대화를 마주하기에 대충대충 흐느적거리며 살 수는 없었어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함께하는 노동으로 우리의 미래를 건축하며 희로애락을 나누었지요.

흙손에서 서너 명 형들과 하루 24시간 중 떨어져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붙어 지냈습니다.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 그리고 참을 나누고, 일과 중에는 더불어 노동하고 잠도 같이 자고 주말의 쉼도 함께 했지요. 이렇게 긴밀하게 생활하며 제가 서른 해 사는 동안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보고 싶지 않았던 저의 모습을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삽질을 팍팍 해댔어요. 저로서는 열심히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동작이 너무 크다보니 정확도가 떨어져 흙을 이리 흘리고 저리 흘리게 되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렇다는 것을 옆에서 말해주는데, 잘 들리지가 않았어요. 아니 듣고 싶지가 않았죠. 방어하며 밀어내는 기운을 품었지요.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작업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듣지 않으려고 했죠. 일하면서 나를 변화시켜보겠다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여전히 혼자 하겠다고, 너와 나를 구분 지으며 내 중심적으로 '다른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죠.

건축 일을 하다보면 옮기는 일이 많아요. 흙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나르기도 하고 3미터가 넘는 목재를 주고받기도 하지요. 이때 조금이라도 덜 힘들겠다고 발을 뺀다든가, 손을 덜 내민다든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그러면서 '나는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멋진 놈이야'라는 생각으로 제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요. 다른 이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었죠. 이것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인정하니까 편해졌고 어려웠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죠. '높은 상', '자기만의 기준'으로 인한 착각 속에 되풀이되는 반복과 실수들을 그만두고 점진적 변화의 걸음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넓은 강당 옆에 붙어 지은 여덟 개 방 흙미장을 하나하나 마치고 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방 미장을 마쳤습니다. 예전에는 대충 붙이고 막 끝내버리는 것에 익숙한 저였습니다. 열 가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하며 해야 하는 섬세한 일도, 저는 앞에 있는 한 가지만 보고 해버렸죠.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기질이었는데, 섬세한 형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는 달리는 성격이었어요. 흔히 열정적이라고 그러죠. 기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듯했어요. 그러려면 연료가 필요한데, 저는 연료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어요. 너무 초반에 달리다보면 연료가 소진되어 마지막까지 달릴 힘이 없는 것을 확인하지요. 흙손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힘 조절하는 요령을 깨달았어요. 오늘 할 수 있는 분량을 파악하고 천천히 부드럽게 일하는 법을 익혀갔지요. 오늘 무리하면 내일 노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오늘 푹 쉬게 되었지요. 그러면 다시 힘이 충전되어서 내일 일하기에 무리가 없어요.

함께 일하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는데, 제가 피곤하고 지치면 더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 말이 엇나가기도 해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늘 에너지의 여유분을 보충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열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돼요. 지속가능하려면 힘을 잘 분배하는 것이 필요하죠. 서로를 위해 힘을 아껴둬야 정작 필요할 때 풍성하게 누리며 성숙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삶의 비결을 노동의 시간, 더불어 사는 시간을 통해 배웠답니다.

홍천마을에서 1년 4개월을 보냈어요. 저는 서른 해 가까이 경상도 그리고 부산 도시에서 살아왔어요.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농촌에서 함께 땀 흘려 일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을 이후 삶의 지혜로 간직하고 살아가렵니다. 함께한 모든 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김두영 | 1년 4개월 홍천 피정을 마무리하고 강북 인수마을에서 살아가며 학교에 복학하여 청년대학생들을 만날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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