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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삶의 주체성 찾는 과정
삶에 기반한 대안기술…친환경 절전상품 구매 넘어 선택의 자유 누리다


첫 직장으로 텔레비전 만드는 회사를 다니면서, 10개가 넘는 생산 라인에서 매 초당 3~4대의 텔레비전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 엄청난 규모의 설비, 천문학적 투자 금액, 투입되는 막대한 양의 자원, (근로자가 아닌) 무결점 제품을 위해 맞춰진 생산 환경, 24시간 교대로 돌아가는 작업 패턴 등의 광경을 매일같이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쓰는 노트북이나 휴대폰 같은 전자제품은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발달된 시공간에 살면서도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문제는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스위치만 켜면 들어오는 전기, 레버만 누르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변기의 똥오줌, 사이버공간에서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집으로 배송되는 물건들…. 오늘날 소비되는 상품, 서비스는 점점 더 우리 몸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몸을 소외시키는 것, 몸으로 겪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편리함,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문명은 우리 몸을 삶의 기본적 요소들로부터 떼어놓고 있습니다.

내 손과 발로 할 수 있는 게 적어지는 시대


우리 의식은 우리 몸의 경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삶과 맺는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홍천 밝은누리움터에서는 닭을 여러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알이 부화되어 어느 정도 자라면 암수 비율을 맞추고자 수탉의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때 많은 학생들이 수탉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학교 터전에서 매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봐온 닭과, 전화 한통이면 배달되어 오는 음식 상품으로서의 닭은 같은 닭이 아닐 겁니다. 랩으로 포장된 마트 진열대 위의 생닭과, 직접 잡고 물 끓여서 털 뽑고 손질한 생닭은, 실존적 경험 속에서 다른 닭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옆에 살아있는 닭을 잡아서 먹어야 한다면 오늘날처럼 그렇게 많은 닭을 먹지는 못하겠죠.

한때는 기술을 가지고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품었습니다. 에너지문제나 환경문제 등에 대해 주목하면서 대안기술의 여러 사례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오늘날 에너지문제와 환경문제의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계속 소비해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소비를 멈추면 붕괴하는 시스템) 자체였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근원적 대안이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기술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이 중심을 놓치면 한 순간에 우리는 대안의 형태는 띠었으나 자본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우리의 자유란 상품 선택의 자유일 때가 많습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 무엇을 구매할지를 선택하는 것 이상의 자유는 제한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마트에서 친환경 절전상품을 구매하는 것 이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시도와 노력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이상의 시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지식은 그 어느 때보다 넘쳐나고 기술 수준도 뛰어나지만 인간은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시대가 오늘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기 손과 자기 발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적어지는 시대, 주어진 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 이런 시대 속에서 만들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갈증이 생겨났습니다.

생활의 문제에 반응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오늘날 인간에게 있어서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뭔가를 만드는 게 즐거워 이것저것 해보면서 지내왔는데, 그러면서 깨달은 건, 인간은 본래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만들고 창조하는 존재로, 그 순간에 자유를 경험하고 그 순간에 인간성의 고양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뭔가를 만드는 행위는 재료가 되는 자연(나무, 돌, 흙…)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만들기와 관련된, 긴 세월 축적되어온 그 땅의 전통과도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이해나 태도, 인간 삶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행위가 가진 힘을, 저는 만들기를 하면서 자주 느끼곤 합니다.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 살다보면 자기 삶에 대한 만족감과 긍지가 커집니다.

20대 후반 회사 다니면서 수세적으로 지낼 때가 많았고 전전긍긍하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30대 초반에 귀촌을 결심하고 필요한 기술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기 기술도 배우고 목공 공부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 보내고 나서 다른 회사에 들어가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익힌 기술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밝은누리움터에서 학생들과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3~4년 배운 학생들은 생활의 문제에 반응하는 모습들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뒷간 전등이 고장 나면 “고쳐주세요” 하지 않고 “선생님, 드라이버 빌려주세요”라고 합니다. 가구의 문짝이 떨어지거나 서랍 손잡이가 부서지면 드릴을 빌려갑니다. 그 정도는 학생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실제로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선생님이 고치고 있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고 원리나 구조를 파악해보려고 합니다. 집짓기도 해봤기 때문에, 하수구가 역류하면 어디를 손봐야 하는지 알고, 벽에 결로가 생기면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 짐작합니다. 그래서 우왕좌왕하거나 막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때로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맹목적으로 의존하거나 휩쓸려가지 않고 자기중심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삶에 필요한 기술


아주 원시적인 기술부터 치우친(첨단) 기술까지 기술의 범위는 굉장히 넓어졌는데, 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오늘날 ‘기술’을 떠올리면 ‘전문가’와 연결시키고, 나와는 동떨어진 어떤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잘못된 이해입니다. 집짓기를 예로 들면, 오늘날 인류가 지은 현존하는 건물 중에 직업건축가가 지은 건물은 5%도 안 된다고 합니다. 기술은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필요로 하며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속한 것입니다.

적절한 기술에 대한 질문은 나는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하는가와 관련되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참 다양한 대답들이 있었습니다. 기술이란 삶을 운용하는 방식에 들어가는 모든 예술 또는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인위적 활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삶의 필요와 닿으며 의미를 얻습니다. 기술은 삶을 떠나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정한 기술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우리가 살고 싶은 삶에서 답을 얻어야 마땅합니다. 앞서의 다양한 대답들은 그런 삶의 다양함에서 귀결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갈고닦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개체적 삶에서는 답을 얻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의 속담에 ‘친구가 하나 더 생기면 길이 하나 더 열린다’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제가 해가는 공부의 방향, 삶의 방향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통해서 생명을 대하는 삶의 자세, 오늘날 문명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벗들의 삶이 제 의식을 구성하고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만들기의 방향은 이렇게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방향이 잡아가고 있습니다.

관심 갖고 연구하는 주제들


① 우리나라 농촌의 에너지 사용량은 OECD 평균의 37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논농사는 90% 이상 기계화가 된 실정입니다. 사실상 석유가 농사를 짓고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막대한 에너지에 의존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기계에 의존한 대규모 농업은 그에 따른 우리나라 농업구조 전반을 그만한 규모에 맞게 구성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규모의 농업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규모에 맞는 적당한 도구들, 기술이 필요합니다.
: 가족농/자족농(보통 소농이라 부르는)의 규모에서 잡곡농사 전체 공정에 필요한 도구들(기본 농기구, 씨앗/종자 보관 기술, 곡식 보관 기술, 곡식 가공 도구, 거름간 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농사 과정에 필요한 기술들

② 삶에 필요한 소박한 도구들, 대안적인 도구/기술들
 : 나무 깎아 생활도구 만들기 -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해결하는 기술과 관계가 있습니다. - 특별하거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박하고 간단한 기술이지만 일상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물건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비전력 생활도구 연구 - 대안적 삶의 양식과 관계하는데 도구가 바뀌면 삶의 형식이 달라지고 이는 우리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물, 에너지문제 해결하는 기술 연구 -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인데 불안정한 토대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례로 물 공급은 전기에너지에 의존하는데 정전이 되면 물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 기본 건축기술 - 삶에 집을 맞추려면 적어도 집을 수리/개조할 수 있는 능력은 꼭 필요합니다.
 : 아름답고 적당한 가구 만들기 - 아름다운 물건, 아름다운 환경은 우리에게 조화와 균형에 대한 감각을 길러줍니다. 곁에 어떤 물건을 두고 사느냐, 어떤 것을 자주 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적 감각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멘트 건물이나 아스팔트, 차가운 금속성의 물건들이 우리에게 어떤 정신을 각인시키고 있는지 우려가 많이 됩니다.)

박영호 | 홍천 밝은누리움터(중등 대안학교 생동중학교+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에서 삼일학림 학생으로 공부하고, 교사로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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