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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 없이 군침 나게


비우고 나누는 삶(空과 共) 이야기 세 번째 소재는 전자레인지[각주:1]다. 허기를 달래려 편의점으로 달려가 냉동식품 포장지를 뜯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던 젊은 시절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낼 때는 내 손까지 얼려버릴 것 같은 먹을거리가 3~5분만 그 녀석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입 안이 델 정도로 뜨거워진다. 음식은 뜨끈뜨끈한데 접시는 맨손으로 만져도 괜찮은, 사람 마음을 쏙 빼놓는 요술램프가 따로 없다.

음식을 얼려서 오래 보관했다 먹는 게 익숙한 현대인에게 얼린 음식을 바로 데워주는 전자레인지는 점점 필수품이 되어간다. 아예 간편한 전자레인지 조리를 전제로 제조해서 파는 패스트푸드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전자레인지 설명서에는 음식을 데우는 건 기본이요, 각종 요리들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음식해주는 엄마'가 없는 신혼집이나 자취집도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군침 나는 요리를 다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하다. 이번 호 마을신문은 우리 주변에서 전자레인지를 안 쓰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결혼 선물로 받은 전자레인지를 떠나보낸 소란 님, 3분 요리의 절친이었다가 이제는 요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주원 님, 과거 전자레인지 계란찜을 좋아했던 상원 님,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는 찻집지기 종성 님이 3월 23일 저녁 마을찻집 마주이야기에 둘러앉았다.

우리에게 자리를 내준 마을찻집은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는다. 한때는 쓰기도 했지만 플러그를 뽑아놓은 지 오래됐다. 전자레인지에 문제의식을 품은 단골의 조언을 듣고 과감하게 주방에서 치워버렸다. 이 소식을 듣고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바로 데워서 나가야 하는 라떼류를 어떻게 만들 생각이냐고, 카페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단다. 종성 님은 냄비에 중탕을 하거나 직접 끓여서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설거지거리가 늘지만, 더 정성들여 대접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젖병도 중탕을 해서 데웠고, 미음도 매번 끓였다.

전자레인지와 가깝게 지낸 시절 이야기부터 꺼냈다. 주원 님은 늦은 밤까지 일하는 직장에 다닐 때 11시쯤 일을 끝내고 출출한 속을 채우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들을 즐긴 적 있다. 상원 님은 어머니가 전자레인지에 요리해주신 계란찜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그 맛을 내보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 난다고 했다. 요리 도구나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손맛 차이라는 걸 알지만. 소란 님은 가끔 부모님이 얼려서 보내주신 음식을 해동하거나 밖에서 사온 음식을 데울 때 썼다.

하지만 이들은 과감히 헤어졌다. 몸에 나쁘다 나쁘지 않다는 논란이 일면 일단 안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고, 먹을거리를 마치 실험실 대상물 다루듯이 고주파로 가열하는 방식에 거부감이 들었다는 이도 있다. 보기 좋은 가공식품이나 매식에 의존하기보다 음식을 직접 해먹는 게 즐거워져서, 쓸데없는 살림살이를 갖추지 않게 되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불편함이 따른다. 전자레인지로는 뚝딱 계란찜을 만들 수 있지만, 찜기를 쓰면 불 조절하느라 정신이 없다. 얼린 음식을 먹으려면 몇 시간 전에 미리 내놓아야 한다. 닥치는 대로 먹지 않고 다음, 그다음 식사 때 어떤 음식을 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삐~' 하는 소리로 이제 다 되었다고,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는 전자제품이 없으니, 요리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편리함을 버리니 정성을 얻었다. 전자레인지 대신 가스불을 조절해가며 음식을 조리하고,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그만큼 마음을 쓰고, 조금 더 늘어난 그릇 설거지하는 걸 즐기면 된다. 상원 님은 진공청소기 대신 빗자루 들고 걸레질할 때 들었던 마음과 같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수고를 소비와 기계에 떠맡기기보다 마음을 들여 수련하는 자세로 살면 된다고.


  1. 전자레인지(電子range); 일본에서 한자와 영어를 조합해 만든 말. 직역하자면 전자로 취사하는 도구쯤 되겠음. 일본식 발음 때문에 우린 레인지 대신 렌지라고 부르는 게 편함. 만땅(滿tank)처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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