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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건설 저지 대회에서 본 희망 

 

2016년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때 김영자 님을 뵈었습니다. 낮고 차분하면서도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 평생 농사만 짓고 사셨다는 밀양 송전탑 피해 마을 여성 농민이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옆집 아줌마 같던 그 분은 제가 만난 누구보다도 마음을 울리던 연사였고 활동가였습니다. 강연 뒤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정적이 흘렀습니다. “뭐 궁금한 거 없어예? 밀양엔 관심도 없슴니꺼?” 그런 것이 아니었지 만 그래도 쉽게 묻지는 못했습니다. 온몸으로 싸우실 동안 밀양 문제에 무심했던 게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3년이 흘렀습니다.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향하던 때, 새벽 안개 속으로 검은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죽음의 송전탑 건설! 결사반대! ― 청량1리 주민 일동〉 ‘송전탑? 밀양 그 송전탑?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맞았습니다. 초고압 송전탑이 우리 마을을 지나갈 거라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7월, 경찰은 밀양에서 벌인 국가 폭력을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습니다. 밀양엔 이미 송전탑이 세워졌고, 우리 마을과 가까운 홍천 남면에도 들어섰으니까요. 그때까지도 몰랐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잘 해결되겠지 그저 생각했어요.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만으로는 도시 전기 씀씀이를 채울 수 없어서 이곳, 홍천 서석면에 들어선다는 송전탑은 동해안(신한울)-신가평 송전선입니다. 한국전력(한전)은 울진 신한울 원전 1, 2호기와 강릉 안인 및 삼척 포스파워 석탄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나른다며 2021년까지 이 송전선로를 지을 거래요. 총 220킬 로미터에 약 440기 송전탑이 세워지는, 한전 창사 이래 최장·최대 고압직류전송 송전선로 사업이라고 하네 요. 하지만 경기환경연합, 환경운동연합 강원협의회 등은 “그동안 동해안~수도권(4기가와트 용량 2개 노선) 선로의 필요성 중 하나였던 신한울 원전 3, 4호기(용량 2.8기가와트) 건설이 취소된 만큼 송전선로 계획 도 변경되는 것이 마땅하다”라면서 “기존 선로를 이용하기로 돼 있던 삼척포스파워, 강릉안인 화력발전소가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에 포함된 까닭도 이해할 수 없다”고 논평을 내기도 했지요.

 

밀양 어르신들 덕분에 765킬로볼트 송전탑은 말도 못 꺼내게 되었으니 한전은 500킬로볼트 직류방식 으로 하겠다 하고 있어요. 더 안전하고 전자파가 적게 나온다나? 그런데 참말일까요? 765킬로볼트나 500킬로 볼트나 80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송전탑이 500미터마다 하나씩 설치되는데 어떻게 전자파를 피해갈 수 있 을까요? 거기에 직류방식은 고장이 잦고, 변압기도 지어야 해서 돈도 많이 든다고 해요. 더군다나 핵심기술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들여와야 하고,여태 해본 적도 없어어떤 문제가 있을지 알 수 없어요.

 

이른바 탈핵정부인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는 송전탑 대신, 지하로 묻는 방식(지중화방식)을 쓰겠다 했 는데 지중화방식이 비싸다는 이유로 송전탑으로 돌아왔어요. 정말 지중화방식이 비싼 걸까요? 이미 뚫린 도 로망,터널을이용하면되는데헬기와여러장비들여짓는송전탑보다정말돈이더드는걸까요?송전탑건 설 사업자는 한국전력이고 산업자원통상부가 집행합니다. 그 밑에는 이런 사업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는 여 러 업체들이 있고요. 이 신한울-신가평 송전선로 사업에는 우리가 낸 세금 10조 원이 걸려 있어요. 2031년까 지 짓는다는 8차 송변전계획을 보면 1만 2794c-km(서킷킬로미터=회선×연장)의 송전선 길이 생기고 270개 변전소가 더 생긴대요. 송전탑은 과연 몇 개나 더 생길는지....... 여기에는 재생에너지도 포함되어 있어요. 태양광발전소나 이른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때문에 땅을 뺏긴 농민의 호소를 들으면 정말 애가 타곤 해요. 어쩌면 이제 송전탑 없는 산은 찾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말이죠.

 

어떤 활동가는 국가권력과 자본이 합친 이 큰 힘과 맞붙어 이기기는 어려울 거라고도 해요. 차라리 지 자체로 막는 게 더 가능성 있지 않겠냐 하면서요. 송전탑을 만들려면 국유림을 지나치는데, 이를 위해 산지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개인 땅이라면 토지강제수용 절차를 진행해야 하죠. 이때 지자체의 승낙이 있어 야 하는데, 그래서 일이 더 진행되기 전에 지자체에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 생각들은 우리를 홍천 군청으로 모이게 했지요.

 

8월 26일. ‘죽음의 송전탑 결사 저지’ 궐기대회.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서석면, 남면, 동면에서 온 마을 분들이 빨간 띠와 문구를 들고 홍천군청 앞에 서 있었어요. 마을 어르신들은 선조 대대로 가꿔온 땅에 송전 탑이 생긴다니 창자가 뒤끓는다 호소했어요. 새벽차 타고 오셨다는 밀양의 두 분도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절대 한전에 속지 마시라예. 숨 쉬는 것 빼고 전부 거짓말이라예.”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어요. 끝까지 포기 하지 말라고.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홍천군청 앞에 모여든 마을분들

허필홍 홍천군수와 홍천군의회의 김재근 의장, 신영재, 신도현 도의원과 군의원도 함께 했어요. 연설 도 했지요. 군수 직을 걸고 이 일을 막겠다 하더군요. 이미 이렇게 진행되기까지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막겠다는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더군요. 허필홍 군수는 환호하는 군중에게 단호한 뜻을 보이며 머리에 빨간 띠까지 둘렀는데 집회 진행자가 말했어요. 군수님 뜻이 정말 그렇다면 말로만 끝내지 말고 서 명을 하라고, 그것도 공문을 만들어 서명해 달라고요. 군수는 난감해하며 책임지고 막겠다는 말만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집행부는 끈질겼어요. 계속 공문서명을 요청했습니다. 군청으로 들어간 군수를 대책위원회 분들이 쫓았죠.

 

 

그 뒤 노래 공연이 있었고 다른 연설도 이어졌지만 감감무소식이었어요. 기다려도 오지 않자 무리는 군청으로 향했지만 군청 문은 굳게 잠기고 공문이란 게 오래 걸린다는 궁색한 변명만 들어야 했죠. 그때 누 군가 말했습니다. “군청은 우리 거여. 군수 게 아녀. 여기 있는 책상 하나 볼펜 하나 다 우리 돈으로 산 거여! 우리 뜻대로 해야 되는 게 군수여.” “허필홍! 나와라! 서명해! 문 열어!” 군청 앞에 모인 주민들은 질서 정연하게, 포기 하지 않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외쳤을까요? 드디어 군수가 나왔 습니다. 공문을 가지고. 그런데 집행부에 서 공문 하나하나 살피며 문구를 고치더 군요. 결국 홍천군은 주민 협의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송전탑 추진을 강력반 대하며 지금까지 추진된 상황에서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고, 앞으로도 한전에서 지금과 같이 홍천 군민의 뜻에 반하는 절 차를 계속한다면 모든 절차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군수 서명이 담긴 공문을 받아냈어요.

 

 

이날 집회는 무기력하고 허무하게 구호만 외치는 집회는 아니었어요. 분명한 전략과 성과가 있는 집 회였어요. 집회 뒤 만난 활동가분은 송전탑건설은 100퍼센트 확정이었지만 오늘로 70퍼센트로 내려간 것 같다 했어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 했어요. 한전, 한수원을 만만히 보지 말라고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거라며. 밀양도 처음에 이랬다고. 오늘 집회에 참여한 여러 어르신들 마을에서 대절한 버스 타고 오셨는데 싸움이 길게 가면 몇 명이나 남겠느냐, 아무리 반대하려 해도 벌금 날아오고 재산압류 들어오면 얼마나 버티겠느냐고요.

 

그러면서 아무래도 전면 백지화는 무리지 않겠냐, 지중화방식으로 압박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겠느냐 해요. 그럼 과연 지중화방식은 괜찮을까요? 송전탑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면 좀 나은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지자체를 믿고 지켜볼 수 있을지, 정말 이것이 국가와 자본권력만의 문제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집회 마치고 돌아오며 여러 마음 오갔어요. 절망? 패배감? 두려움? 그런 건 아니었어요. 농촌에 살면 누구나 겪을 고통을 우리도 겪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생명평화를 구하는 우리의 소망 가운데 있다 는 생각, 또 여태껏 그랬듯 행복하고 지혜롭게 이 과제도 넘어가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공문 승인을 내린 군수님, 투쟁길 나선 대책위원회분들, 자기 삶 바쳐 부단히 애쓰시는 여러 활동가님들, 묵묵히 이 농촌 지켜내 신 마을 어르신들의 안녕을 구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전기와 석유 안 쓰겠다며 호미로 밭 일구고, 낫으로 풀 뽑으며 하늘땅살이(농사)하고, 세탁기, 냉장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여러 벗들 덕에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불편을 거스르는 우리 삶이 송전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이에게 복된 소식과 희망이 되길 바라며 지금 제 삶에서부터 진정한 평화 이루기를 다시 한 번 마음먹습니다.

 

오승화| 강원도 홍천에서 호미로 꿈 일구는 여성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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