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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써서 일하는 삶의 가치
불로소득이 판치는 세상 바꿔가기

대학생 때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방학 때 지하철에서 신문 파는 일을 했었다.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신문 파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일한 곳은 지하철 4호선 사당역과 이촌역 구간이었다. 여러 종류 신문을 들고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사람들에게 팔았다. 이촌역에서 내려 다시 사당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파는 방식이었다. 사당역에서 이촌역 방향은 도심을 향해 가는 길이라 아침에 출근하는 이들이 많고, 이촌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차는 한산했다. 난 처음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촌역에서 내리지 않고 상계역까지 갔다가 그 구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출근 시간에는 인파 때문에 움직이기도 어렵지만 열심히 비집고 다니며 팔아야 했다. 문 닫히기 직전까지 팔고 아슬아슬하게 내리기를 반복했다. 손놀림과 순간 판단에 재빠르지 못하면 못 내리고 갇힌다. 이촌역 이후는 사람이 너무 많아 팔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팔고 다녔는지 신기하다.

이촌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밤새 일하고 집으로 가는 이들이 눈 감고 쉬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문 파는 이들도 이때는 앉아 쉬었다. 나는 그때도 쉬지 않고 신문을 팔았다. 일 마치면 동대문역에 있는 배급소에서 정산을 하는데, 많이 팔았다고 자주 칭찬을 받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을 나름 재미있게 즐기던 때였다. 부지런히 일한 만큼 필요한 돈을 버는 것도 일하는 재미였다. 그런데 그 재미를 반감시킨 것은 일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이 학교에서 가까워 아는 이들을 간혹 만났다. 처음에는 왠지 부끄러웠다. 일하는 구역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는 게 더 구차해서 그냥 했다.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 때 한 친구를 만났는데, 얼마 전 교수님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주는 장학금이 아니라 교수님들이 어딘가에서 후원 받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주로 친분관계에 따라 주어졌다. 학생 입장에서는 일종의 불로소득이었다. 나도 그런 게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일해서 벌려고 신문팔이를 하는데, 순간 유혹이 되었다.

그런 유혹이 주는 더 큰 문제는 노동의욕을 잃는 거였다. 새벽부터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걸, 어떤 이들은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다는 현실이 괜한 억울함, 상실감을 일으켰다. 즐겁게 열심히 일하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마음은 곧 잡을 수 있었지만, 생각은 계속 맴돌았다.

평생 힘든 노동환경에서도 즐겁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분들에게, 온갖 불로소득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보다 인간적인 삶과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열악한 노동현실뿐 아니라, 땀 흘린 대가가 정당하게 교환되지 않고 온갖 불로소득이 판치는 사회구조가 노동자들 팔다리 힘을 풀리게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최철호 | 밝은누리 대표

(이 글은 <한겨레>에 연재되는 기사로, 본지에도 같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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