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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조차 외롭게 맞이하는 고단한 생명들
 
 

죽음조차 외롭게 맞이하는 고단한 생명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조문을 받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장은 삼촌이 마련해 두신 상태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보내드렸다. 삼촌도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셔서 다른 친척들 조문도 받지 않았다. 삼촌은 어릴 때부터, 늘 나를 아끼고 존중해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난처하고 어려운 부탁이지만, 동의해 주셨다. 삼촌도 장례식장 관련된 일만 도와주고 자리를 피해 주셨다. 번잡하고 정신없는 장례식을 피하고, 삶과 죽음을 조용하게 묵상하며 기도하고 싶었다. 죽음을 특별한 슬픔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으로 담담히 내 삶에 들이고자 했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온전히 아버님의 삶과 죽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버님은 자수성가해서 젊을 때 나름 큰 성공을 거뒀지만, 곧 여러 면에서 실패하셨다. 가부장시대 많은 아버지들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계셨다. 밖에서는 정의롭고 친절했지만, 집에서는 무섭고 거친 분이셨다. 동네 분들을 잘 챙기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일처럼 도우셨지만, 어머니에게는 무자비하셨고, 평생 힘들게 하셨다. 누나와 동생도 거칠게 대하셨다. 나에게도 무섭고 두려운 분이었지만, 아들인 나에게는 잘 해주려 하셨다.
 
가부장 지배문화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이중적으로 작동하는지, 그 속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이 얼마나 큰 착각에 빠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잘난 체만 한다.” 어릴 때, 누나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인데,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커서야, 아니 결혼 이후에야, ‘가부장문화의 수혜자’인 내 모습을 아내가 깨우쳐 줄 때마다, 그 의미를 다시 제대로 깨우쳐 간다.
 
장례식장에 있는 다른 상주들, 조문객들이 자꾸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조문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예기치 않은 이상한 눈길을 받으며 순간 깨달았다. 아! 죽음까지도 비교당하고, 침묵조차 멸시당할 수 있구나! 나는 원해서 선택한 상황이지만, 조문객 별로 없이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어려움에 시달리겠구나! 다른 조문 호실들은 장례예배와 예불로 북적거렸다. 유가족들이 위로를 받았겠지만, 한켠에서는 그로 인해 더 큰 소외와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 깨달았다.
 
얼마 전, 화장장에 갔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주검을 지키는 이들을 보았다. 주변은 예배와 예불, 큰 울음소리로 북적거렸지만, 이주외국인 노동자 네 명은 화장을 앞둔 동료 앞에서 말없이, 눈물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없는 동료가 되어 화로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했다. 돌아보면 이 땅에는 죽음조차 외롭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생명들이 많다. 조용히 기도했다. 신음하고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죽은 자가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은혜가 있기를!
 
최철호 | 밝은누리 대표
 
이 글은 〈한겨레〉에 연재되는 기사로 본지에도 같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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