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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먹여 살리는 사이, 서로 지켜주자

생명살림 밥상운동의 만남, 무안 선숙 님네 다녀오다

 

 

 

하루 일상을 마감하고, 장장 여섯 시간의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전라남도 무안으로 내려갔다. 인수마을밥상에서 일하며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매일같이 먹는 된장을 비롯하여 남새들은 누구의 손길, 어떤 땅과 공기 속에서 담그고 키워져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걸까? 장을 담그는 선숙 님을 만나러 무안으로 갔다.

 

쇠날 늦은 밤, 무안의 밤하늘엔 별이 수놓아져 있었고, 귀한 손님 길 헤매지 마시라고 전봇대마다 붙여둔 색색 풍선은 풍선을 불고 거기에 붙인 손을 생각하게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반갑게, 스스럼없이 맞아주시는 선숙 님. 이날은 밤이 늦어 긴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날 있을 잔치 때 먹을 김밥 마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사실 나는 태어나 그때까지 김밥을 말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김밥을 말았고 맛있게 김밥을 나눠 먹었다.

 

잔치의 핵심은 농민권리선언문 낭독이었다. 농장 잔치에 웬 선언문 낭독인가 싶었지만 선숙 님의 여는 말씀에 이내 이해가 되었다. 농민권리선언문은 2018년 유엔에서 채택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여타 사람들에 대한 권리선언인데 이것을 처음 읽었을 때 선숙 님은 엉엉 우셨다고 한다. 선언문이 담아 내는 농민의 권리가 법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선언문이 채택되는 것만으로 농민의 어려움이 인정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정리되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한다.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꼭 이 자리에서 함께 읽고 싶었다 하신다.

 

자리에 모인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마지막 28조까지 읽으니 무려 50분이 지났다. 농민, 농촌 노동자의 안전, 건강, 가정, 먹거리, 알 권리 등이 세세히 정리된 것이 마치 경전처럼 느껴졌다. ‘국가가 여기 적힌 많은 권리들을 하나라도 제대로 보장해 주고 있을까?’라는 질문도 들었지만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겪는 상황을 불합리하다고 정리할 수 있는 기준이 채택된 것만으로 의미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무엇보다 선숙 님이 농사지은 먹거리와 직접 담근 장을 먹고 있는 우리가 농민의 권리를 함께 선언하고 있는 이 시간이 감동적이었다. 서로 먹여 살리는 사이인 만큼 서로의 삶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선언문을 모두 읽고 만세 삼창 제안이 있었다. 세 번째 만세 때는 온 마음을 담아 외쳤다.

 

농업 만세! 농촌 만세!! 농민 만세!!!”

 

 

잔치를 열며 말씀하시는 선숙 님
선숙 님네 붉은 황토 밭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선숙 님 밭에서 마늘종을 뽑았다. 자연과 어울리는 농사지으며 토종 씨앗 거두고, 정성껏 장 담그며 사시는 선숙 님은 본인은 별로 바라는 거 없고, 이렇게 좋아하는 농사지으면서 자식들에게 가난으로 걸림돌 되는 상황만 면하며 살면 좋겠다고 하셨다. 매일 생명이 자라는 것, 사계절이 흐르는 걸 볼 수 있어 농사가 좋다고 하시는 나눔이 참 소박했다.

 

돌아가는 길에 먹으라고 싸주신 간식을 받아 들고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무안을 떠났다. 무안의 땅은 붉은색 황토 땅이다. 밥상에서 매일 먹는 장, 제철마다 보내주시는 남새가 이 땅에서 난다고 떠올리니 먼 곳이지만 이 땅이 우리 몸을 이루고 있었다. 새삼스레 온 세상이 이어져 보인다.

 

밥상에 돌아와, 선숙 님 밭에서 뽑은 마늘종 넣어 멸치볶음 차려내며 무안의 하늘과 땅, 선숙 님의 소박한 마음과 노동 떠올린다. 우리 땅 곳곳에서 온 귀한 것들로 밥상 차리면서 이 귀한 것들 거둔 손길들과 잘 만나가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늘밭에서 나눈 평화로운 시간과 선숙 님(선숙 언니!)의 소박하고 멋진 삶, 부디 잊지 않기를!

 

이보경 | 밥짓고, 산책하고, 세 평 밭 매만지는 게 좋은 요즘을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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